귀납과 서양철학사, 잡념

귀납은 사실 일상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연역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며 쉽게 납득
가능하다.

독특하게도 서양 철학사 상에선 연역이
발달하고 나서야 귀납을 정교화하고자 하
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게 무엇이 독특하냐고 생각할 수 도 있
겠지만 가장 일상적인 추론이 가장 일상적
이지 않은 추론이 발달한 이후에야 주목
받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특이하지 않은가?

다른 문화권(유럽권 전통이 아닌)에서도 이와
같을지 궁금해진다. 어딘가에선 귀납이 먼저
기초적인 추론으로 발달하고 그것으로 연역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을까? 나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귀납의 문제’가 아닌 ‘연역의 문제’가
그곳에선 발생하는 것이다.

귀납이 연역보다 나중에 다뤄진 것은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툴이 나중에 개발됐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귀납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데이비드 흄인데, 확률론이 제창되고 나서 태어난 사람이죠.
연역논리적 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언논리가 개발되고 나서야 시작되었고요.
이 두 툴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수에서 시작한 수학과 언어에서 시작한 논리학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3개의 좋아요

(1)

귀납과 연역 모두 추론(reasoning)의 한 영역들인데, 추론이 모든 문화권의, 인간이라면 가진 보편적인 능력 중 하나이지만 생각외로 (연역) 논리학이나 (귀납적) 확률론 (혹은 이 이외의 수사학 등의) 구체적인 학문으로 확립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2)

그 중 다른 문화권 중 학문으로 정립될 만한 메타적 논의들만 다루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social 님이 언급하셨듯, 다른 문화권의 (유사)논리학적 시도들은 오늘날로 보면 (언어학의) 의미론/구문론과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동북아의 묵가 같은 경우 특히 그러하죠.

예컨대, 이들의 탐구방식은 이러합니다.
백마, 마야. (백마는 말이다.) 우마, 비마야. (소와 말은 말이 아니다.)

이 둘은 구문론적으로, 한문상에서는 유사합니다. 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다르죠. 이 차이를 숙고하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형이상학적 논의들로 진화합니다.
(예컨대, 백 역시 우처럼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로 취급해야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백마비마를 주장할 수도 있습나다. [공손룡이 그러하죠.] 한편 우마-마 사이의 [중국어로는 영원히 표현되지 않을 be 동사를] 동일성이 아닌 포함관계로 본다면, 우마-마야 같은 뜻도 성립하겠죠.)

(3)

한편 인도의 논리학은 굉장히 고대 그리스의 삼단논법과 유사합니다. (다만 예시라는 논항이 있는 것이 다르죠.)

그리고 귀납적 사고가 있었냐 하면...없었다고 해야겠죠? 다만 경험론적 사고방식 (즉 베이컨처럼, 권위적 지식일지라도 실제 현상과 맞는지 검증해야한다)은 있었습니다. 케릴라의 천문학파가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베다의 우주론을 반박했었죠.

(4)

한편 중국에서는 경험론적 사고가 없었냐...하면 있었죠. 오히려 굉장히 경험론적인 사고가 강합니다. (당장 주자만 해도 그렇고..의외로 중국에서 권위를 인정 받는 경전들이 현실 세계에 대해서 뭐라 특정한 주장을 안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현실 세계의 논의는 알아서 흘러가되, 형이상학적 틀은 여전히 유지되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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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그냥 일기장 같은 글에 이렇게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특정 추론이 오로지 방법론적이고 형식적으로 탐구되는 현상은 그리스 전통의 서양철학에서만 보이는 굉장히 특이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선 오로지 형식적이거나 방법론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탐구보다 내용적인 것(말씀해 주신 명가적 논의에서 보이듯) 등이 섞여서 탐구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어찌보면 사실 논리학, 형이상학, 미학, 윤리학, 인식론 등등의 철학의 세분화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특이한 현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미천한 지식이지만 제가 배웠던 동양철학적 사유나 그 이외 문화권의 사유에선 그와 같은 세분화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득 마치 sf소설 처럼 지구 어딘가에 있는 어느 부족이 귀납적 논리를 먼저 전문화하고 그 이후 그를 바탕으로 연역 논리를 정당화하려 하는 시도를 상상하면 과연 그곳의 사유는 어떠할까 하며 혼자 재미있어하는 약간 변태(?)같은 생각이 들어 적은 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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