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아카데미 추계 강좌] 철학의 길, 제3강: 영미철학

1.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모순이란 무엇인가?

이승종: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데?” 지금 제가 한 푸념, 이게 철학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갖게 되는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모순에 봉착했을 때 저런 식으로 말을 하죠. “이게 뭔 소리지?”하고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인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저 사람 지금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거야?’ 혹은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뭘까? 뭐가 잘못되었기에 저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하지?’ 등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되죠. 이것이 우리가 모순에 봉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와 연애를 하는데, 배우자가 “나는 당신이 좋아. 그런데 싫어.”라고 하면, 거기서부터 여러분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싫어한다는 거야? 뭐가 문제지?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즉, 모순적인 말에서부터 사유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거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2. 모순의 문제에 주목한 철학자들

이승종: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이 비트겐슈타인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 같은 경우에는 철학적 사유가 ‘불안(Angst)’이라는 근본 분위기에서 유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불안이라는 게 모순의 상태와 닮았다고 봐요.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가령, “나는 당신이 좋아. 그런데 싫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저는 당연히 불안 속에서 방황하겠죠. ‘이게 무슨 이야기지?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미래는? 저 여성하고 결혼하고 싶은데…’하고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보면 이율배반 논증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아주 유명한 섹션이 있죠.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이 모순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칸트 식의 아주 아름다운 논증이 펼쳐지는 부분인데요.

그 다음에, 모순의 문제를 아주 극대화해서 큰 영향력을 부과한 헤겔의 변증법도 있죠.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정치·사회철학에서 모순의 문제로 인간의 역사와 계급 간의 투쟁을 논의한 마르크스도 있고요. 다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모순을 주목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입니다.

3. 다 가시는 것 아닐까?

이승종: 여러분,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라는 작품이 있지 않습니까? 성천문화재단에서도 제 학교 선배 교수님께서 강의를 베풀어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영국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이라는 굉장히 유서 깊은 강연에서 화이트헤드가 『과정과 실재』의 책 내용을 발표했는데, 성천문화재단의 강좌처럼 시리즈로 한 학기동안 강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철학 강의를 한 다음에, 그 다음 주에 가 보니까 청중이 반으로 줄어 있고, 주가 거듭될수록 계속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남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죠.

저도 아까 수학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선보이면서 ‘다 가시는 것 아닐까?’ 걱정했는데, 남아계신 여러분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4. 수학자가 철학자 위에 군림하는 세상

이승종: 저는 괴델에 대해 쏟아진 찬사들이 우리 시대를 풍미하는 과학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게 다 과학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에 괴델도 찬성하는 것 같고요.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해 드리고 싶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제가 유학 시절에 박사 논문 심사를 받을 때, [심사위원으로 오신] 철학과 교수님이 네 분, 수학과 교수님이 한 분이셨어요. 그런데 제가 심사를 받으면서 목도하게 된 재미난 현상이… 네 분의 철학과 교수님이 (다 나름대로 쟁쟁한 분이었는데) 단 한 분인 수학과 교수님의 입만 바라보는 거예요. 그분이 어떻게 평가를 하시나 하고요. 그분이 다른 네 분을 제치고, (철학과의 박사논문 심사인데도 불구하고,) 저의 생사를 결정하시더라고요. 그분이 결정해서 저는 살아난 겁니다. ‘과학주의라는 게 이런 거구나!’하는 것을 제가 실제로 느낀 거였죠. ‘수학자가 철학자들 앞에 군림하는 세상이구나!’ 하고요. 이런 걸 제가 뼈저리게 느꼈는데…

괴델에 대해서도 철학자들이 너무 많은 양보나 과대평가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철학의 길 3강(1) : 영미철학

00:00-01:25 들어가는 말
01:26-48:14 영미철학 배우기와 짓기
48:15-54:30 튜링/비트겐슈타인 논쟁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54:31-59:17 모순된 계산법으로 건설된 다리는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사실로부터 모순이 계산법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도출되지 않을까요?
59:18-1:01:22 모순을 받아들이는 체계는 ‘폭발 원리’에 따라 아무런 주장이나 자의적으로 도출하게 되지 않을까요?
1:01:23-1:03:40 모순을 공포나 숭배의 대상으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수학과 논리학의 체계를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제3의 길이 존재하나요?
1:03:41-1:07:07 Beethoven, Concerto for Violin, Cello, and Piano in C major, Op. 56
1:07:08-1:15:30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튜링의 다리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데요?

철학의 길 3강(2) : 영미철학

00:00-01:29 들어가는 말: 화이트헤드의 강연 이야기
01:30-04:10 들어가는 말: 브루크너의 공연 이야기
04:11-13:01 괴델/비트겐슈타인 논쟁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13:02-16:25 수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문법적 접근과 괴델의 메타 수학적 접근 사이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6:26-19:48 비트겐슈타인은 왜 괴델의 증명에 별다른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습니까?
19:49-24:03 괴델의 증명에 대한 해석의 권한은 비트겐슈타인보다는 괴델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닐까요?
24:04-32:14 비트겐슈타인의 모순론은 규약주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나요?
32:15-35:17 비트겐슈타인이 일종의 규약주의자라는 해석은 정당한가요?
35:18-40:07 우리가 실재에 부딪혀 특정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는 (하버마스 등의) 주장을 어떻게 보시나요?
40:08-41:22 (부정적 의미의) 규약주의를 피하면서도, (형이상학적 의미의) 실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요?
41:23-50:04 모순은 철학에서 어떠한 의의를 지닐 수 있을까요?
50:05-52:28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비트겐슈타인의 모순론에 대한 감상

철학의 길 3강(1) : 영미철학

철학의 길 3강(2) : 영미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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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는 신기하네요. 왜 철학과 박사논문시험에 수학자가 등장하고 다른 철학자들은 그의 말에 집중했던 걸까요?
과학주의의 득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보입니다.

추측해보건대 분업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이 다루고 있는 수학적 영역에 대한 심사를 위해서 수학자가 참여했고 그의 전문분야에 대한 존중으로 철학자들이 그의 말에 집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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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님의 박사논문 주제가 비트겐슈타인의 모순론이에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식논리학적인 테크닉들이 논문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점 때문에 수학과 교수님도 논문 심사에 들어오신 것 같아요. 철학과에서도 일정 수준의 형식논리학을 배우기는 하지만, 수학과만큼 깊게 배우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요. (그래서 논리학 책 중에 Logic for Philosophy라고 해서 논리학의 여러 내용들 중 철학과 밀접하게 관계된 것들을 뽑아놓은 책도 있죠. 그 말은 논리학이 철학과에서 자주 쓰이는 몇몇 테크닉들 이상으로 훨씬 넓고 깊은 학문이라는 방증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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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습니다.

  1. 이 논문이 철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수학/논리적으로 걸고 넘어질 건 없겠지?
  2. 연세대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이면 연세대 철학과의 위치를 보여주는 논문인데, 수학과 교수가 뭐라하면 너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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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소한 거지만, 이승종 교수님은 박사를 뉴욕주립대(버팔로)에서 받으셨어요. 철학과 박사논문 심사에서조차 수학과 교수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철학계의 학풍을 다소 비판적으로 보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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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보니 Youn님의 박사논문이 아니라 이승종 교수님의 박사논문이군요. 이 글을 너무 대충 읽었나봅니다. 샘플 에세이 쓰다와서 그런 거니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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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저는 하이데거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박사과정생입니다(감히 박사과정생 따위가 위대한 철학자들을 반박하려 하다니!)ㅋㅋㅋㅋㅋ 제가 공부하고 있는 종합시험 문제에 “…의 …라는 주장을 서술하고 평가하시오.”라는 것들이 있어요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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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석사 종합시험 중에 “모더니티에 대해 논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와서 맑스, 알튀세, 푸코, 아도르노 등 오만 철학자들을 다 발라서 답변했는데, 하이데거에게 보여주면 뒷목잡고 쓰러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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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순성을 가지는 두 주장이 모두 말이 된다 가정하면, 대부분은 암시적인 컨텍스트가 있는것 같아요.
  2. 불안과 모순의 관계가 재미있네요. 모순에 대한 미래의 리스크를 투영한 감정 같기도 하구요.
  3. 푸코도 생각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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