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의 넥타이

보드리야르가 넥타이 때문에 호텔에서 쫓겨날 뻔한 적이 있다는 재미 있는 이야기를 읽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저자인 벤저민은 "기표의 공허함을 주장하던 보드리야르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이러니"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저는 보드리야르가 평소에 기호 가치(sign value)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한 철학자였기 때문에 더 화를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1990년대 미술 편집자로 일한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영국에 들른 보드리야르의 일정이 잠시 비는 날,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진정한 영국을 체험했으면 하는 약간의 호들갑과 과시욕에 그를 데리고 리츠호텔로 차를 마시러 갔다. 그런데 그 위대한 철학자는 호텔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보드리야르는 심히 불쾌해하며 시대착오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라고 항의했다. 상냥했던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분에 못 이겨 씩씩댔다. 넥타이 사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보드리야르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 거절당한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장보드리야르는 어떤 경우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다.

넥타이로 인해 그의 내면과 외면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티셔츠, 스웨터, 넥타이 없는 셔츠, 스웨트셔츠, 가끔 두르는 스카프 등은 자유를 사랑하고 지성이 번뜩이는 그의 자아상과 어울렸다. 그러나 넥타이는 아니었다. 획일성에 반대했던 보드리야르는 호텔에 입장하려면 직원의 넥타이라도 빌려서 매라는 말에 더욱 분개했다. 그는 나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현실의 환상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못마땅하게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꼭 올가미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해보였다.

마리나 벤저민, 「옷 속에 있는 영혼」, 『뉴필로소퍼 코리아』, 제17호, 바다출판사, 2022, 79-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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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스타일과 공적인 드레스 코드가 충돌한 사건이네요. 그래서 보드리야르가 결국 남의 타이를 목에 매고 호텔에서 차를 마셨다는 거죠? 그래도 같이 간 사람 생각해서 자기가 양보했던 것 같네요. 90년대만 해도 유럽의 오래된 호텔과 레스토랑에선 드레스 코드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 그런 강한 드레스 코드는 오히려 예외에 속하겠죠. 영화나 시리즈물을 보면 나오지만, 20세기 중반만 해도 영국에선 동네 선술집에 맥주 마시러 가면서도 타이를 맸습니다. 심지어 자기 집에서도 침실 밖으로 나와 거실에 갈 때는 맸죠. 프랑스와 독일에선 보수적인 복장 문화가 68운동 이후 새로운 세대에 의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보드리야르가 한국에 방송 출연 차 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타이는 안 맸었던 것 같습니다. 화낼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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