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신학적 주제에 대한 단상

(제가 최근에 고민했던 신학적 주제에 대한 생각을 소설 형식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이것은 악몽이었을까? 혹은 누군가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일까? 인생이란 하나의 악몽이며 누군가의 기억이며 또한 누군가가 꾸는 꿈이 아닐까? 오늘 나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나사렛 사람이 십자가를 진체 수천의 군중들에게 조소당하며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을 목도하였다. 군중들은 스스로를 구원자라고 주장했던 “자칭” 구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누군가를 구원하고자 했으면서 스스로는 구하지 못한 ”구원자“” 과거 니체가 신성의 살해자가 비웃음이라고 했던가? 그 유대인 민중들은 스스로가 신성을 가졌다고 주장한 그 신을 비웃음으로 살해하고자 했으며 십자가의 비극을 한편의 코미디극으로 바꾸었다.

거리에 나온 모든 민중 그러니 인간들을 대표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 코미디극의 관람가라는 관조적인 자리를 넘어서 스스로 코미디극의 배우들로서 모든 최선과 노력을 다하여 그 코미디극에 반응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비아냥거리는 웃음과 함께 낄낄 웃었으며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하며 그에게 “신성 모독자”라고 비난했으며 다른 자들은 그에게 무언가를 던지며 “유대인의 왕 만세!!”라며 그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군중들에서 시선을 돌려 스스로가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떠들던 자칭 구원자 행세를 했던 나사렛 사람을 보았다. 비쩍 마른 몸과 온갖 흉터로 가득찬 몸 계속되는 숨소리와 함께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그의 앙상한 갈비뼈와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의 다리들은 이 놀라운 코미디극에 무언가 비극성을 주고자 하는 그의 최후의 발악으로 보여질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쌍한 사내의 모습은 군중들에게는 그저 놀리기 좋은 약자들의 모습이었을텐데 마치 아이들이 불쌍한 미물들로 하나의 장난을 치는것과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나는 계속 이 두 인간 군상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이 “코미디극”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나만 그것을 기다리는 것일까? 코미디 그러니 비웃음이란 인간들의 제일 밑바닥의 찌꺼기들을 배출하는 하나의 하수구이다.

근데 그 찌꺼기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다. 간단하다 “깍아 내리기” 그리고 “하강 시키기” 인간들이란 늘 고상하거나 자신보다 잘난 존재가 천상에서 땅으로 쳐박히기 바란다. 마치 하늘의 샛별이 지하로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욕망은 너무나 천박하고 더럽기에 인간들은 그것을 자신의 내면의 제일 깊은 곳에 은폐한다. 그러나 비웃음 그러니 코미디극의 순간에서 우리는 그것을 분출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코미디극의 배우들은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그러니 저질스럽게 바꿈으로 우리의 이런 하수구 폐기물들의 배출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생식기의 폐기물을 돈을 받는 여인들에게 버리듯이 우리는 우리 마음의 폐기물을 버릴 하수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저 사내는 우리의 이런 폐기물을 받을 하수구로서 “천박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미디의 코미디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저 사내가 이 코미디극의 클라이맥스를 연출하기를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군중들 또한 슬슬 저 배우가 어떤 “대사”를 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것들일 것이다. “씨발 저주받을 새끼들!!”“엿이나 쳐먹어라 하느님 새끼” 혹은 “나는 하느님의 아들도 메시아도 아니오.. 저를 제발 살려주세요” 이런것들 말이다. 사실 나도 이런것들을 꽤나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모든 행동들을 알고 있으며 그의 고귀함과 선량함과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그가 저런 천박한 말로 나의 기대와 생각을 정당화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 때가 왔다. 갑자기 그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 군중들은 그의 얼굴에 시점을 고정한체 이 코미디를 더욱더 즐겁게 해줄 대사가 무엇인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며 하늘과 우리를 바라보며 눈물과 슬픔을 담은체 하늘에 절규하듯이 기도 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리고 그는 또한 외쳤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갑자기 골고다의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맨 나사렛의 그리스도는 계속 십자가를 든체 마치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당당히 자신의 역할인 비극을 이어나갔다.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일을 마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가며 이렇게 속삭였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그러자 골고다의 사람들은 아무런 비아냥도 웃음도 비난도 없이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

나 또한 그 골고다를 떠나 가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앞에서 콧수염을 기른 어떤 광인이 등장하여 나한테 이렇게 외쳤다.

“나 너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 너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해내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닦아버릴 수 있는 스펀지를 주었단 말인가? 지구가 해의 궤도에서 풀려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구는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나?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진하고 있나? 측면으로 가고 있나? 직진하고 있나? 아니면 모든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나? 우리는 끝없는 허공을 방황하는건가? 허공의 흐름을 느끼지는 못하면서? 더 추워지는 거 아닐까? 계속해서 저녁만 반복되는거 아닌가?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그러더니 그 광인은 갑자기 나의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나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 스스르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1. 그는 나의 예상대로 메시아가 아니었다.

1.1 그렇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1.2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서 거짓말을 했는가?

1.3 돈

1.4 명예

그런데 그가 그것들을 위해서 거짓을 했다면 아까 나한테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아니 아니야 그는 분명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했단 말이다... 그러니 그는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메시아였어. 그런데 이것이 과연 거짓말쟁이가 할 수 있는 말인가? 만약 그가 자신과 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믿었던 자라면 어떻게 최후의 순간에 ”실망“을 그러니 스스로 무언가 ”기대“한것처럼 굴었단 말인가? 마치 신이 그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 마냥 ”연기“ 할수있었단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그는 그저 실망의 ”문학적“ 표현이었을 뿐이야 그런데 만약 그것이 맞다면 어떻게 그는 우리를 보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할수있단 말인가? 이것은 진정 그가 스스로 신과 연관이 있는 무언가였음을 확신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어떻게 스스로 남을 속이며 명예와 돈을 쫓은 ”이기적인“ 그것도 너무나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신에게 간청한단 말인가?

그래... 정리를 하자면 1.그는 정직했으며 2. 그는 우리를 ”용서“했다 그러니 그는 우리를 ”사랑“했다.

그러니 그는 우리의....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정당한 결론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미친 사람이었을거야? 안그래? 분명히 환각을 본거야 아까 내가 어떤 콧수염을 기른 이상한 차림의 남자를 본 것처럼 말이지... 근데 이것은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단 한번도 그의 이성이나 지성에 의문을 품은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 이것은 나에게 거짓을 고하는짓이지 그렇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어야해 근데 진정으로 죽음의 순간에 모든 것의 끝이 다가오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의 배역을 이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전부다 틀렸어!! 그래!! 그는 스스로 메시아를 연기하고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메시아 스러움을 보임으로서 우리를 속임으로 우리에게 죄책감을 선사하고자 했던 고도의 인간인게 분명해!! 이런 행동으로 그의 ”명예“를 살릴수 있었던 거지!! 그래 내가 드디어 그럴듯한 가설을 발견했군? 그런데 그가 진정 명예를 위하여 이런짓을 한거라면 아까 그가 했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는 도대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연기“란 말인가? 스스로의 명예가 그토록 바랬던 거라면 그런 발언이 득될게 하나도 없음을 잘알텐데? 왜 그는 그토록 하늘에 소리 지르며 스스로의 ”약함“을 과시한걸까? 그의 명예를 위하여? 설득력이 없군 ....................

몇분 동안 나의 사고는 정지됐다. 그러나 나는 그토록 인정하지 않고자 했던 마지막 결론에 도달했다.

”그 나사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 모든 사고가 끝나자 나의 앞에 두 개의 형상들이 나타났다. 왼쪽에는 천사의 형상을 한 금발을 가진 큐피드 같은 얼굴을 가진 존재가 밧줄에 묶인체 서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유황 냄새와 인간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심연 같은 암흑이었다.

천사가 웃으면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참된 결론에 도달하셨군요? 저희는 늘 그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었답니다. 맞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오른쪽의 어둠에서는 사람들이 비명소리가 섞인 이상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저놈의 말을 듣지 말아라 거짓말쟁이다.“

천사가 얼굴을 갑자기 찡그리며 분노에 찬 눈빛으로 어둠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다시 바꾸며 나한테 친절을 담은체 얘기하였다. ”저 지옥에 있는 존재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는 진정 그리스도가 맞습니다! 네 당신은 정당한 선택을 하셨어요.“

나는 이게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체 설명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다정하게 나한테 설명하였다. ”당신 말대로 그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즉 그는 모든 천지와 율법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유대인이니 그것의 의미를 잘알시겠죠?“ 천사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밧줄을 풀더니 나한테 던졌다. 그러자 나는 나지막하게 공포와 체념을 담은체 네...라고 대답했다.

천사가 이빨을 들어내며 웃으며 나한테 이야기하였다. ”그에게 적대한 모든 존재들은 사실 하느님에게 적대한것이며 하느님에게 적대했다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것이고 죄를 지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천벌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의하시죠?“

나는 다시 조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천사는 웃으며 어느 나무를 자신의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갑자기 어두운 형상이 분노와 슬픔을 가득 담은체 소리쳤다.

“이 위선자야! 그는 나와 함께할 것이란 말이다!!!”

그러자 천사는 그 어두운 형상에게 이빨을 들어내며 그를 비웃고 나서 나에게 바로 이야기 하였다. “저 신성모독자의 헛소리를 깊게 듣지 마십시오!! 그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어가고자 합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의지로“ 지옥에 떨어졌으니 그의 권세가 당신에게 할수 있는건 제한적입니다. 저는 천사이기에 그의 권세를 약화시킬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가 당신에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마음속의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저 이기적인 “지옥의 목소리”를 듣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계속 어느 쪽으로 향해 바꾸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지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사가 말을 이었다. “저 지옥의 존재가 당신의 영혼을 가져가지 못하니 화를 내는것입니다!! 만약 그가 지옥의 감옥을 나왔다면 저는 당신의 영혼을 데려갈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으십시오. 이제 하느님의 목소리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따라서 가장 ”이타적인“ 선택을 하십시오!!”

어두운 형상이 울부짖었다. “삶을 살아라 아무리 너가 용서받지 못할 악마이며 세상의 모든 악성을 저질렀다해도 설령 모든 존재 심지어 하늘의 아버지 신 조차도 너를 버린 것 같다 해도 인간들은 마치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 처럼 살아가야 한단 말이다!!”

내가 어둠의 형상의 말을 들을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자 천사는 나를 다그쳤다.

“이기심은 악이며 이타심은 선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버린 자는 살것이고 스스로를 버리지 못한 자는 죽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의 지고한 정의의 법칙을 스스로 저 지옥의 존재의 ”더러운 이기주의“ 때문에 버릴거란 말입니까!? 아직도 스스로의 목숨에 집착하며 마치 이 삶을 즐길 ”자격“이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은 위선이며!! 당신이 주님에게 순종해온 ”열성당원“으로서의 삶을 부정하는것입니다!! 율법을!! 그리고 정의를!! 지키시오! 자신이 해야할 ”마땅한 처분“을 기다리시오!!!”

갑자기 어둠의 형상이 속삭였다. “자신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것이로다...”

천사가 비아냥 거렸다. “이 이기주의자 같으니!!” 갑자기 그는 으르렁 거렸다.“너 같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자가 우리가 기껏 만들고 주었던 인간들이 지켜야 했던 정의로운 율법들과 하느님의 명령들을 왜곡시켜서 기껏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교화 시켰던 인간들을 너의 지배 아래에 넣었다!! 너는 인간들이 믿는 신을 모독 했으며!! 우리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자 했다! 나 그리고 율법이 단언컨데!! 이타주의는 선이며!! 이기주의는 악일지니!!”

그러자 어둠의 존재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그렇다면 그 간음한 여인은 죽어야 했단 말이냐? 너가 인정하는 그 ”그리스도“가 단 한번이라도 인간들을 ”증오“한적이 있단 말이냐? 그가 새계명을 주지 않았단 말이냐?”

천사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답했다.“저것을 보십시오? 저 지옥의 존재가 기껏 신께서 ”직접“내려주신 율법들을 다시 이기주의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진정 당신의 마음속에서 우리와 신께서 심고 가꾸신 율법과 정의의 이타주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지옥의 존재가 심은 이기주의를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그 모든걸 듣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천사가 다정하게 말했다. “저 악마가 당신의 마음에 심은건 기껏해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일 뿐입니다. 그따위 유혹 정도는 이길수 있습니다. 당신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율법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의 양심이 하라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암흑의 존재가 크고 굵은 소리로 말했다. “하느님은 사랑이니라”

그러자 천사가 웃으면서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나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나의 눈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고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이제 나는 천사가 준 밧줄을 옆에 있는 나무에 매고 나의 목을 그것에 걸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목을 매기 직전 천사의 소름끼치는 “비웃음” 소리와 암흑의 존재가 흐느끼며 외쳤던 그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죽지 말아다오... 제발...”

죽음이 끝난 순간 갑자기 나는 제3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버린 어느 유대인 밀고자의 시신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명의 존재가 있었다.

천사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갑자기 옆에 있는 어둠의 형상에게 말했다. “제가 게임을 하면 결코 지지 않음을 알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그 천사는 입을 찢을 정도로 웃으며 그 유대인을 비웃고 있었다. “이제 저 멍청하고 저의 명령을 하늘의 목소리라 믿었던 유다라는 유대인을 가져갈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저의 집에 처들어가서 기껏 우리가 수집했던 인간들을 전부다 구출한 것은 예상밖 이었지만 그래도 저희는 늘 길을 찾는법이죠!” 천사의 형상을 한 그것은 모든 힘을 다해서 낄낄 웃어대며 스스로가 인간들을 우롱하고 신을 이겼음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자 천사의 옆에 있던 그리스도는 그저 울기만을 할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나자 나는 다시 나의 집에서 갑자기 깨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악몽이었을까? 혹은 누군가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일까? 인생이란 하나의 악몽이며 누군가의 기억이며 또한 누군가가 꾸는 꿈이 아닐까?

(제가 최근에 유다의 자살에 대해서 생각한것을 이야기식으로 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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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죽음은 사실 신학이나 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유다의 자살을 죄책감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길래 이런 글을 구상해봤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의 주장대로 유다가 열성 당원이었으며 죄책감으로 죽은것이라 한다 해도 그것이 무엇을 바꾸겠습니까? 결국 기독교란 배신자들 그러니 뻔뻔하고 죽음을 겁내는 비겁자들의 종교 그러니 생명을 사랑하는 종교이지 않겠습니까? 유다의 죄는 간단합니다. 스스로의 죄책감에게 굴복한 죄 그러니 스스로를 증오한 죄인것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철학적 비평을 또다시 문학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에 대해 다소간 회의적입니다. 많은 해석이 요구되는 텍스트에 관한, 또다시 많은 해석이 요구되는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이 되어서요.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의 부분들에 대한 해설을 조금 더 상세히 제공해 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일단 유다 이스카리옷의 자살 내러티브는 이런저런 기능이 있었다고 생각함 직합니다. 한편으로는 급진적 이념을 가진 이들의 행동이 결국에는 비극을 초래함을 암시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을 특정한 극단으로부터 방지하는 기능이 있을 수 있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살해의 주범을 단죄하여 ‘공공의 적’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기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신약학 전공자가 있으시면 이런 기능들을 귀속시키는 것이 그럼직한 것인지 확인을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물론 이는 철학적이나 (사변적인 의미에서) 신학적인 의의와는 거리가 있는 의의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사변적으로 유다의 자살 내러티브가 어떤 의의를 목적했을 수 있겠는가, 한다면 저도 여기에 대해 큰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설화들이 공동체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경고를 하는 목적으로 쓰였고, 이런 설화들이 구성될 적에 사변적 의의를 딱히 고려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텍스트의 해석이 후대의 해석자들의 몫이라고 한다면 뭔가를 잡아낼 수는 있겠죠. 가령 어떤 이들은, 유다의 자살 내러티브가 보다 큰 목적(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보다 작은(?) 목적(죄책감 없는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실존을 그려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은 @sew 님이 언급한, “유다의 자살을 죄책감으로 해석하는 분들”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제공하신 서사에 관한 @sew 님의 해설,

이 서사에 관한 정확히 어떤 설명인지가 제게는 다소간 불분명합니다. 죽음을 겁내는 것과 스스로의 죄책감에 굴복하는 것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요?

혹 다음과 같은 의도의 비평을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겁낸다
  • 이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접 선택하는 일을 단죄한다
  • 유다 이스카리옷은 자신의 죽음을 직접 선택했다
  •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겁냄으로부터 유다 이스카리옷을 단죄한 것이다.

이러한 비평은 텍스트의 맥락을 많이 거세하고서만 가능한 비평같이 보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단죄된 것이라면, 예수의 죽음조차도 일종의 영웅적 자살이므로, 예수 또한 단죄되고 있다는 예측을 낳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단죄 방식과 잘 맞지 않습니다.

유다의 자살 내러티브는 ‘더 나아간’ 의의를 찾기에 꽤 까다로운 내러티브인 것 같기는 합니다. ‘배신자에 대한 단죄’라는, 꽤나 뻔하고 기능론적인 의의를 찾는 것은 쉽지만요. 여하간 흥미로운 비평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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