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헤겔 연구의 비정통적 동향

(0) 이 글은 이하에서 다루어지는 주장에 동의 또는 옹호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헤겔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또, 이는 이 포럼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이기도 해서 선택하게 되었고요, 헤겔 전공자 선생님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청취하고 싶은 목적도 있습니다.

(1) 헤겔과 야콥 뵈메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Cecilia Muratori의 "The First German Philosopher: The Mysticism of Jakob Böhme as Interpreted by Hegel "에서는 헤겔에 의할 때 '최초의 독일 철학자'는 야콥 뵈메라고 합니다. 야콥 뵈메는 잘 아시듯이 지금까지 독일의 대표적인 신비주의자로 알려져온 인물이지요.

(2) 또한 Cyril O'Regan의 "The Heterodox Hegel"에서는 지금까지 이해되어온 정통적 헤겔 연구에 파문을 일으키기 충분한 것 같습니다.

David Walsh의 추천사에 따르면,

This work is original and brilliant as the first full-length study of the mystical background to Hegel. Cyril O’Regan’s work is a ground-breaking study that will enable readers of Hegel to understand him within the context of the mystical tradition that he claimed as his own. For he made no secret of his filiation with the esoteric strands of Christian mysticism and this was clearly the way he was understood by F. C. Bauer, as well as Feuerbach, Engels, Marx and many of his immediate successors. It has always struck me as a major lacuna in Hegel scholarship that such a study had not appeared. Now it has been filled in considerable measure.

이 저작은 헤겔의 신비주의적 배경에 대한 최초의 방대한 문헌연구로서 독창적이고 뛰어나다. Cyril O'Regan의 연구는 헤겔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신비주의적 전통의 문맥에서 헤겔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획기적인 연구이다. 헤겔은 기독교 신비주의의 비의적 분파와 자신의 연관성을 비밀로 하지도 않았고, 이러한 방식이 F. C. 바우어, 포이에어바흐, 엥겔스, 마르크스, 그리고 많은 계승자들이 헤겔을 이해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 헤겔 연구에 있어서 큰 빈틈이라는 생각을 필자는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빈틈이 멋지게 채워지게 되었다.

라고 하는군요. 이 저작 및 참고문헌을 자세히 읽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상당히 놀라운 주장이긴 합니다.

(3) 독일계 미국 정치철학자 에릭 푀겔린도 헤겔철학의 영지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고 하는군요.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일부 가져왔습니다.

......here contends that certain modern movements, including Positivism, Hegelianism, Marxism and the "God is Dead" movement, are variants of the Gnostic tradition of antiquity. He attempts to resolve the intellectual confusion that has resulted from the dominance of gnostic thought by clarifying the distinction between political gnosticism and the philosophy of politics.

......(에릭 푀겔린은) 여기서 실증주의, 헤겔주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신은 죽었다" 운동을 포함한, 특정한 현대 사조들이 고대의 영지주의 전통의 변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영지주의와 정치 철학 간의 구별을 분명히 함으로써 영지주의 사상의 지배로부터 생긴 지적인 혼란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4) 글렌 앨릭잰더 맥기교수도 "Hegel and the Hermetic Tradition"에서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맥기는 헤겔이 뵈메, 조르다노 브루노, 파라켈수스와 같은 헤르메스주의 사상가들에 매료되어 있었고, 헤겔은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독일 관념론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합니다.

(5) 과연 이러한 논의가 헤겔 연구의 신지평을 열고 있는 것인지 혹은 이상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문적 논의에서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찬성을 위해서든 반박을 위해서든 학문적인 치밀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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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정보 감사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언급해주신 저작들을 상세히 검토할 여건이 되지 않아 일단 개인적인 인상비평만 몇 자 적어봅니다. (시간이 생기면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ㅡ.ㅡ).

O'Regan의 책 앞부분을 슬며시 들춰보니 기본적으로 헤겔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다루는 것 같네요. (아니라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연구가 "정통적 헤겔 연구에 파문을 일으키기 충분"한 것인지는 꽤나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헤겔에 대한 신학-형이상학적 해석은 "새로운" 혹은 "비정통적" 동향이 아니라, 오히려 19세기부터 있었던 orthodox 헤겔 해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Paul Redding 이 작성한 헤겔에 대한 SEP 항목에서 "2.2 The traditional metaphysical view of Hegel’s philosophy "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뵈메와 헤겔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내용들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헤겔이 뵈메와의 영향 관계에 있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증거는, 헤겔이 철학사 강의에서 뵈메에 대한 서술에 (Suhrkamp판 기준) 무려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설명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뒤이어 서술되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역시 30-40페이지 분량을 차지한다는 사실과 견주어볼 때, 헤겔이 뵈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뵈메에 대한 헤겔의 평가는 언제나 그렇듯 칭찬과 비판을 모두 보여줍니다. 뵈메에 대한 헤겔의 한가지 (뻔한) 비판은 뵈메의 철학이 "디테일 하지 않다"(!) 입니다: "Aber es ist eine Form, [...] die keine bestimmte Vorstellung über das Detail zuläßt" (20: 119).

문제는 헤겔이 뵈메로부터 어느정도의 영향을 받았느냐 하는 것과, 헤겔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뵈메의 철학에 대한 선-지식이 어느정도로 요구되느냐 겠죠. 이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가 평가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또한 "헤겔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헤겔 연구"가 헤겔을 연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헤겔 철학의 논변을 연구하는 것인가의 문제죠. (물론 당연하게도 양자가 배타적이지는 않습니다.) 오늘날의 소위 "헤겔 연구"는 분석철학적 접근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자보다는 후자쪽의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 쪽의 경향성을 강조하는 학자 및 전통에서는, 헤겔이라는 개인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고 뵈메/신비주의에 대해 어떤 commitment를 가졌는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헤겔철학의 논변이 오늘날의 철학적 문제에 어떤 해답을 줄 수 있는지이죠. 즉 뵈메에 대한 선지식이 헤겔의 논변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해도, 이렇게 이해된 논변이 오늘날 철학적 가치가 있는지는 또 따져보아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요약.

헤겔에 대한 신학적 해석(신비주의 전통 포함)이 새로운, 비정통적 해석인가? (X)
헤겔이 뵈메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았는가? (O)
뵈메에 대한 이해가 헤겔 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이함)
뵈메 및 신비주의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가 헤겔 연구의 신지평을 열고 있는가? (역시 상이함; 그러나 긍정적으로 대답되기까지 많은 의심들을 헤쳐나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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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왜이렇게 웃기죠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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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수정했어요)

안녕하세요 @Herb 선생님. 제 글을 읽고 의견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단 헤겔 철학에 그다지 정통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과 여기에 소개된 주장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따라서 저는 여기에 소개된 학자들의 의견을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Herb 선생님께서는 '뵈메와 헤겔의 관련성의 확인, 헤겔에 대한 신학-형이상학적 연구 자체가 새로운 것인가' 등에 촛점을 맞추시고 그에 대해서 주로 논증을 해주셨네요. 그것은 제 포스팅의 제목에 나오는 '비정통적'이라는 말에 대한 효과적인 반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위의 자료들에 대해 '비정통적'이라고 이미 수식어를 붙인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당연히 논자에 따라 판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뵈메만에 대한 것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와 나아가 이후 헤겔을 어떤 식으로든 계승한 이들에게까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푀겔린이 여러 학자들에 대하여 '영지주의 전통의 변형'이라 평가한 것과 같이요. 그 부분은 헤겔에 대한 한 토픽만이 아니라 상당히 긴 흐름이 문제가 되고 있지요.

The Heterodox Hegel은 저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여러 관련 자료로 미루어 뵈메 이외에도 다른 풍부한 내용들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저도 @Herb 선생님도 위 도서들을 모두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말씀을 나누는 것인만큼 논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언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차후에 위 서적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다시 논의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Herb 선생님의 깊은 학식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하고요^^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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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메, 브루노, 파라켈수스 같은 일종의 신비주의 사상가들을 통해 헤겔을 읽어내려는 것도 분명 근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신비주의적 독해를 통해 헤겔의 철학이 우리 시대에 지닐 수 있는 의의가 무엇인지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가령,

(1)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의식 장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변증법'으로 읽어내잖아요. 비록 그 독해가 얼마나 문헌학적으로 정확한 것인지를 차치한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독해는 분명 역사철학적으로 매우 신선한 관점을 주기는 하죠. 얼핏 억압받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서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해내니까요. 마르크스주의가 헤겔을 '정확하게' 독해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입장은 헤겔의 텍스트를 통해 무엇인가 '유의미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2) 자기의식 장의 내용을 '인정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는 악셀 호네트의 해석도 그렇죠. 근대의 사회철학이 '자기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관계들을 해명하려고 한 반면, 호네트는 우리 사회의 근간 속에 자기 보존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정 투쟁'이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지적하죠. 이 입장도, 얼마나 헤겔을 정확하게 해석하는지를 차치하고서라도, 헤겔로부터 이전의 사회철학적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통찰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3) 소위 헤겔에 대한 '비형이상학적 해석'이라고 하는 피핀-핀카드 이후의 영미권 헤겔 해석과 셀라스주의의 헤겔 해석도 그래요. 이 입장은 얼핏 '유사 신적 지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헤겔의 '정신' 개념이 실제로는 규범적 질서의 편재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석하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해석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헤겔을 통해 20세기 초반의 영미권 철학을 지배하였던 '소여의 신화'를 논박할 수 있게 되죠. 저는 이 입장이 주석적으로 얼마나 엄격한지를 떠나서라도, 헤겔을 통해 매우 의미 있는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비주의적 헤겔 해석은 과연 헤겔을 통해 어떤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물론, 헤겔의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철학사를 공부하시는 분들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겠지만, 저는 이 새로운 해석이 새로운 '주석적' 관점을 넘어서 새로운 '철학적' 통찰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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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항상 좋은 의견 감사해요. @YOUN 선생님. 그런데 위에 소개한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1)헤겔의 어떤 텍스트에 대하여 창조적 독해를 한다든지, 혹은 헤겔이 사용하는 개념이나 용어들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는 것 등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즉, 위의 논자들은 2) 헤겔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전기적 고증을 통해 그동안 감추어지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헤겔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텍스트의 뜻을 궁구해보거나 헤겔/헤겔 철학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해요.

이를테면 마르크스에 대하여 연구 방법과 시각의 차이가 이렇게 있는 것과도 비견할 만합니다. 1) 주로 텍스트들을 기반으로 그를 '노동자 해방을 외친 위대한 예언자'라고 하는 입장도 있는 반면, 2) 한편으로 문헌학적/전기적 연구 - 그가 1839년에 지은 희곡작품 "Oulanem"에 나오는 명백한 사탄주의적 의식, (마르크스의 아들이 그를 '사탄 맑스'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Richard Wurmbrand 박사 등의 문헌학적/전기적 종합 연구(http://aladin.kr/p/zfON1) 등을 기초로 맑시즘의 사탄주의적 기원("Karl Marx and the Satanic Roots of Communism")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물론 이 연구가 정말 팩트만을 다루고 공정히 판단한 것인지는 지금 여기서 알 수는 없겠지만요...

예시가 적절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헤겔을 어떻게 해석하여 현재 상황에 의미있는 철학적 통찰을 추구/제시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의식은 위에 소개한 이들의 주요한 의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YOUN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또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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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헤겔의 부정성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지젝 정도를 떠올렸지만, 실제 글을 보니 훨씬 더 아카데믹하게 본격적인 내용들이네요

헤겔 저작 이상으로 이에 대한 연구들 역시도 방대하지만, 소개해주신 연구들이 여타 다른 연구들과 차별점을 갖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5)에서 말씀하신 "학문적 논의에서[의] 치밀한 논리"에 부합할 것으로 보이는 것 중 하나로서 철학사적 재구성 작업, 곧 알려지지 않았거나 무시된 자료들의 발굴을 통해 헤겔에 대한 정합적 스케치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는 자유로운 해석과 적용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철학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가 종종 빠져들기 쉬운 반-역사적 태도, 곧 사료와 정보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듯한 철학적 사유의 다양한 갈래들과는 구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독일 관념론"하면 칸트, 피히테, 쉘링, 헤겔 정도로 윤곽을 잡고서 출발하는데, 이는 실제 소스들에 대한 판단을 몇몇 철학사가에게 단순 위탁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소개해주신 연구들은 기존의 철학사 연구가 놓친 기본 출발점, 예를 들어 뵈메에 대한 헤겔의 명시적 언급, 그의 독서기록, 편지, 미-출간물 등등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꽤나 유효한 연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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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Hu2 선생님. '철학사적 재구성 작업'이라는 말씀, 위 연구들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또, '철학은 자유로운 해석과 적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말씀도 무척 인상적이고 중요한 말씀이라서 제가 메모를 해놓아야 할 것 같아요.

이미 확립된 어떤 틀에다 견주어서 비교하고 그것이 기존의 것에 어긋나면 무언가 잘못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일종의 교조주의적인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겠지요. 계속해서 철학연구가 발전되기 위하여는 발굴되지 않았던 사실을 면밀히 검토하고, 선입견을 배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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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부생이라 헤겔을 영지주의-신비주의와 엮는 작업이 현재 학계에서 주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작업 자체는 동유럽 마르크스주의에서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압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대충 프로클레스나 쿠자누스, 브루노, 뵈메, 스피노자 등등을 신플라톤주의 맥락에서 엮었습니다.) 이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새로운 논의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사실 이게 이 포스트를 쓴 이유이기도 한데) 동유럽권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논의 등이, "소련"하면 떠오르는 전체주의적인 이미지나, 과거에 냉전 상황으로 서유럽 학계와 동유럽 학계가 단절되었던 것으로 인해 무언가 묻혀있는 느낌입니다. 루카치와 그람시가 유이한 예외겠네요. (동유럽권의 논의의 예시로 이들을 드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입장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러니까 소위 "스탈린주의"에 속합니다. 특히 그람시는요.) 개인적으로 일리옌코프나 슈틸러 등은 충분히 재발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우리가 물리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유물론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고츠키도 프로이트 이론의 대안으로 쓰일만 해보이고요. (앤디 블런던이란 사람이 비판 이론에서 프로이트가 차지하는 역할을 비고츠키로 대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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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euerbach님. 훌륭한 답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엮는 작업'은 분명 주류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정통적'이라고 한 것이죠. 동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혹시 구체적으로 그런 주장을 알 수 있는 문헌, 학자이름 등을 알고 계시면 소개해 주셔요^^ 일리옌코프와 슈틸러가 아마 그 예의 일부인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비고츠키는 교육심리학 쪽의 거장으로, 제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