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레이슨, 『하버마스 입문』, 「사회이론 프로그램」

  • 의사소통적 행위와 도구적 행위

하버마스는 행위를 의사소통적 행위와 도구적 행위로 구분한다. (의사소통적 행위는 3장에서 설명했다. 사실 하버마스는 이외에도 전략적 행위를 제시하는데, 전략적 행위는 자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하는 일종의 도구적 행위이다)

도구적 행위는 <개별 행위자가 추구하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도구적 행위는 목적 실현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계산하는 도구적 추론의 실천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하버마스는 어떤 행위가 도구적 행위이도록 하는 두 가지 기준(criteria)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두 행위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행위 유형이다.

  1. 도구적 행위의 목적은 그 수단에 선행하여 독립적으로 결정된다. 반면 의사소통 행위의 목적이 타당성 주장의 인정과 수용인 바 그 수단인 대화와 독립되어 있지 않다.

  2. 도구적 행위의 목적은 객관세계에의 인과적 개입을 통해 실현된다. 반면 의사소통 행위의 목적인 타당성 주장의 인정과 수용은 인과성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

하버마스는 두 행위 구분에 이어 의사소통 행위가 도구적 행위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후자가 전자에 기생하는 것이라 주장한다.1) 이를 위해 그는 화행의 효과를 발화수반적 효과와 발화수단적 효과로 구분한다. 화행의 발화수반적 효과는 <합리적 동기에 따른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합의에 도달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를 뜻한다. 이는 화행을 통한 상호간의 이해 형성에 기반한다. 반면, 발화수단적 효과는 <이해 형성 없이 상호간의 의도와 목적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오로지 추구하는 목적 실현만을 달성하는 효과>를 뜻한다. 따라서 발화수단적 효과를 자아내는 화행에서 청자는 화자의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구분에 따라 자연스레 발화수반적 효과는 의사소통적 행위와, 발화수단적 효과는 도구적 행위와 연결된다.

다시 돌아가서 하버마스의 화행 분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 모두가 상호간 발화와 행위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로지 발화수반적 화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의사소통 행위가 도구적 행위보다, 발화수반적 목적이 발화수단적 목적보다 기본적이다. 화행과 그에 따른 행위의 의미는 도구적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표준적 의미 이론, 진리 조건적 의미 이론, 화행의 발화수단적 효과, 도구적 행위로만 사회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는 인간 공동체를 바라보는 부적절한 관점으로 귀결된다.

  • 생활 세계와 체계

하버마스는 두 행위 구별에 이어 각 행위가 거처하는 두 사회 영역을 제시한다. 생활 세계와 체계가 의사소통적 행위와 도구적 행위 각각의 거처이며, 도구적 행위가 의사소통적 행위에 기반하는 바 체계 또한 생활 세계에 의존한다.

생활 세계는 비공식적이고 시장화되지 않은 사회적 삶의 영역을 가리킨다. 이 사회 영역은 공유된 의미와 이해의 저장고를 제공하며, 타인과 마주하는 일상적 경험의 사회적 지평을 이룬다. 고로 의사소통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배경이 된다. 하지만 생활 세계가 하나의 지평인 바, 우리는 그 안에서 통일된 생활 세계의 공유된 의미와 이해를 얻을 수 있으나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지평은 관점적이라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그것 또한 변화한다. 고로 생활 세계의 내용도 변화할 수 있고 수정될 수 있다. 이 점이 생활 세계와 언어가 공유하는 특징으로, 사실 의사소통이 생활 세계의 매체임을 염두에 두면 우연한 특징도 아니다. 생활 세계의 기능은 다음의 셋으로 요약 가능하다.

  1. 생활 세계 구성의 특성상 이것은 행위의 맥락을 제공한다. →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사회 통합을 촉진한다. 또한 생활 세계가 제공하는 합의의 터전은 비판적 성찰과 잠재적 불일치의 가능성을 보장해 준다.

  2. 생활 세계는 의사소통과 논증대화와 항상 함께하기 마련인 이견, 오해, 불일치의 위험을 최소화하여 사회적 의미를 보존하고 사회적 분열을 막는다. 또한 의사소통과 논증대화가 생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바, 그것에 따른 합의는 생활 세계로 환류되고 또 역으로 그것이 의사소통과 논증대화의 기반을 마련한다.

  3. 생활 세계는 상징적·문화적 재생산을 담당한다.

체계는 도구적 행위의 확고화된 패턴이자 침전된 구조를 가리킨다. 도구적 행위의 목적이 독립적·선행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체계 속 사람들의 활동 목적 또한 미리 정해지며 그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즉, 체계는 행위자의 시선에서 볼 때 불투명성을 갖추고 있어 행위자의 행위는 그 자신이 책임지기 힘들고, 행위의 의미 또한 스스로가 이해하기 힘들다. 체계는 그 목적에 따라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두 하부체계로 구분된다.2) 그러나 두 하부체계 또한 체계인 바, 해당 체계 내의 행위자는 사전에 확립된 도구적 행동 패턴에 따라 자연스레 행동한다는 점은 변함없다. 체계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1.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이 핵심 기능이다.

  2. 체계 또한 행위를 조정한다는 점에서 특유의 통합적 기능을 제공한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세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의사소통과 논증대화가 담당하던 사회통합이라는 과제는 점점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이때 도구적인 체계가 경제와 행정 및 관련 제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함에 따라 그 부담은 줄어든다. 이를 체계에 의한 사회, 체계통합이라 부른다.

체계에 대한 이와 같은 서술에서 하버마스와 전임자들의 차이가 드러난다. 전임자들이 도구적 합리성에 극도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면, 하버마스는 그 나름의 기능을 인정하며 그 기능을 구현하는 국가와 시장경제 제도를 반대하지 않는다. 물론 하버마스는 체계 및 체계통합에 내재하는 위험성을 애써 무시하지 않는다. 체계에서 행위자는 이해와 합의와 무관하게 목적만을 쫓도록 조정된다는 점에서 생활 세계와 달리 자율성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

지금까지 내용에 기반하면 생활 세계가 체계보다 우선성을 차지한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체계에는 생활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것을 지적한다. 체계의 생활 세계 식민지화는 생활 세계가 담당하는 기능을 체계가 빼앗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체계에 의해 포섭된 생활 세계의 기능들은 합의와 이해가 아닌 체계의 논리인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지배된다. 또한 공적 검토와 민주적 통제가 힘을 잃어가며 사회 병리 현상이 일어난다.


  1. 저자는 하버마스의 해당 부분 논증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나 또한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보면 하버마스 논증의 타당성이 의심된다. 주장하려는 바는 뻔한데, 핵심이 되는 '의사소통 행위'와 '도구적 행위', '발화수반적'과 '발화수단적'의 관계 해명 부분이 모호하다.

  2. 화폐는 자본주의 경제의 조절 매체이고, 권력은 국가 행정 및 관련 제도의 조절 매체이다.


출처: 핀레이슨 2022, pp. 86-104; Finlayson 2005, pp. 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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