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라는 명제에 대한 의문

레퍼런스는 생각이 안나는데 교육에 대해 논의할때 꽤 많이 들었던 이야기중 하나가 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는데 있다였습니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이러한 논의의 주된 비판지점은 우리나라의 교육(초중고부터 대학까지)이 지나치게 지엽적인 분야의 기능인들을 만들어 내는데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분화된 분업체계로 돌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국소적 분야만 공부하는 교육체계는 필연적인데 듣다보니 이것이 왜 잘못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를 필요악같은 것이라 보는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요?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해 정리된 생각이나 의견이 있는 회원님들 계실까요 고견이 듣고 싶습니다.

혹은 이런 주제로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교육쪽 철학서나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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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1에서 '교육'은 대체로 공교육(초중등)을 의미할 것입니다. 1은 공교육의 일반목표를 진술한다고 이해될 것이구요

질문자님께서

'그런데 기능적으로 분화된 분업체계로 돌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국소적 분야만 공부하는 교육체계는 필연적인데 듣다보니 이것이 왜 잘못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라고 하실 때, '교육'이 애매하게(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 분업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지엽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공교육은 문제가 없다
  2. 분업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지엽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고등교육(대학)은 문제가 없다

둘 중 어떤게 질문자님의 입장이실까요? 3 입장이라면 동시에 1 을 받아들이는게 문제는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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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판 지점이 전제하는 바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초중등 교육의 목표는 <지엽적 분야의 기능인 만들기>가 아닙니다. 실업계는 예외일지 몰라도, 실제로 학교에서 <지업적 분야의 기능인 만들기>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학의 경우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이니 <지엽적 분야의 기능인 만들기>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다>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전공 필수 이수 학점을 제외하고 교양과목을 듣도록 정해져있으니 어느정도 비판을 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구요. 물론 교양과목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거나 학생이 교양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능인 만들기에 치중되어 보인다>라고 말한다면 수긍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표와 달리 현실에서 <교육기관의 기능인 만들기 치중>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분업체계로 돌아가는 현대 자본주의>는 경제적 체계의 문제이고, 교육은 인간이 생활하며 살아가는 세계의 문제입니다. 서로 다른 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한쪽의 논리를 다른 한쪽에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겠지요. 그러니 <국소적 분야만 공부하는 교육체계>가 현실적으로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기는 힘듭니다.

위 내용은 전적으로 제 의견인데, 제가 공부하는 <숙의 민주주의> 관련 담론에서 시민 교육에 관한 얘기가 종종 나옵니다. 하버마스, 롤스 등을 위시한 숙의 민주주의자들의 시민 교육, 민주 시민성에 관한 논의를 참고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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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질문자님이 무의식적으로 '기능적으로 분화된 분업체계로 돌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와 '어쨌든 한 개인으로서 모두가 동등하게 투표/의견을 표명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합쳐서 생각하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시민은 무엇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기를 수 있나는 복잡한 문제처럼 보입니다.

아마 (분석) 철학적 관점에서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덕 윤리(virtue ethic)적 접근 중 하나로, 인간의 (도덕적?/훌륭한?) 품성에 대한 논의입니다. (Virtue Ethic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다른 하나는 응용 인식론/응용 언어철학의 일종으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주장/거짓 뉴스/권위 등에 대해서 무엇이 타당한지/건전한지 파악할 기준을 마련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Social Epistemolog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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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표는 다음 둘이어야 합니다:

  1. 현존하는 정치경제체제가 잘 돌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능은 두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물질적 기능과 이데올로기적 기능입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정치경제체제가 물질적으로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기능을 해야 합니다. 즉 그 체제의 물질적 재생산에 필요한 분업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당받아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나는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정치경제체제가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신념/사고/감성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2. 사회와 인간에 대해서 비판적/총체적/역사적 사유를 할 줄 아는 인간, 독특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간, 물질적 향유만이 아니라 정신적 향유도 할 줄 아는 인간, 자기 자신의 한계에 민감한 인간, 즉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의 양성'은 2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1과 2는 양립가능하고 양립해야 하지만 1에 치중해서 2를 게을리 할 수는 있습니다.

한 사회의 퀄리티는 그 사회에서 이뤄지는 교육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1과 2 둘 다를 목표로 하는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의 평등함의 정도가 큰 사회일 수록 더 훌륭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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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과정의 공교육과 대학교 과정의 고등교육이 이념상 분리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의 여건 상 양자가 분리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어 보입니다. 매우 높은 대학진학율이나, 심지어 사립대학의 입시 과정 역시 교육부의 정책에 강하게 얽매여 있는 우리나라 교육구조상, 초중고의 교육과정이 사실상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과정의 역할을 하고 있고 반대로 대학 과정은 초중고 과정의 심화/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것이죠. 예컨대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실태만 보더라도 사실상 대학교 입시를 위한 준비과정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학교 과정이 "지엽적 기능인 양성"에 목표를 두는 고등교육과정이라면, 대학교 입시를 위한 준비과정인 초중고 공교육 역시 "사실상" 기능인양성 과정의 준비단계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저는 "기능인 양성"이라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성숙한 민주시민 양성" 이라는 규범적 이상이 마치 완벽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일부 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적인 선험주의를 따르고 있는 도덕/정치철학자들의 경우 (하버마스나 롤스 역시 이에 속합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과 도덕적/윤리적 규범성을 담지하는 "실천이성"이 마치 엄밀히 구별될 수 있다는 듯 서술을 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서술이 철학적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용이할지 몰라도 실재적 설명의 측면에서는 공상적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양자는 사실상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Cittaa 님이 지적하셨듯, 현존 사회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지 않고서는 기능인 양성 역시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현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순응하지 않는 기능인 양성이라는게 성립가능할까요? 반대로, 현존하는 경제체제 및 경제활동에 대한 기능적 이해가 없이, "숙의적"인 시민적 사유가 가능할까요?

기능주의적 질서와 규범적 질서를 서로 배타적인 것인양 엄격히 분리하려는 시도는, 철학을 현실과 유리된 이상론으로 보이게끔 하고 결과적으로 일반인들로 하여금 철학을 외면하게 하는 부정적 효과까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오늘날의 철학의 위기 어쩌구 하는 것들이 이러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철학이 스스로를 기능주의적 질서로부터 계속해서 구분짓고 거리를 두는 한편, 현실의 삶 속에서 철학이 유용하다고 호소하면서 철학의 위기를 한탄하는 것이 자가당착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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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적, 그리고 그것의 정당화 논의는 언제나 재밌는 토론을 만들어 내는 듯합니다. 읽어보실 만한 책 몇 권 두고 갑니다.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피터즈, <윤리학과 교육>
비에스타, <학습을 넘어>
이홍우, <교육의 개념>
이홍우, <교육의 목적과 난점>
짧은 강연문을 모아놓은 이홍우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 긴 호흡을 가진 다른 책들보다 원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접근하기에 편리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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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를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반 시민 교양 교육과 전문 지식, 그리고 이 모든 걸 규율하는 지식의 본질과 관계에 대해서 전승된 지성사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탐구했으며 이후의 모든 교육 담론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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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젓번에 읽었음에도 적절한 코멘트를 남기지않고 이제서야 답변 드려서 죄송합니다ㅠ 제 입장은 3번입니다. 질문을 했을때는 좀 정리가 안되고 복잡했었는데 댓글들 읽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제 안에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질문하기에 앞서 가만히 제 입장을 나눠 생각해보는게 먼저라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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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두 차원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섞어 생각하다보니 오류가 있었나보네요^^. 댓글을 한차례 훑고 며칠 지나고 나니까 생각도 좀 정리되고 기존에 가졌던 의문들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대답해주신 내용대로 생각하는게 맞다고 판단되네요. 깔끔한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늦게 코멘트 남겨 죄송합니다, '훌륭한 시민을 어떻게 양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관점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네요^^

답변해주신 두가지 목표를 읽으니 생각이 좀 정리가 되네요.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덕분에 의문을 어느정도 해소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맞는 말씀이네요. 둘을 분리해서 생각할것이 아닌데 어느 하나는 맞고 틀리다는 식으로 나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이런 책 추천을 정말 좋아한답니다.....ㅎ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북마크해놨다가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대로 읽어본적 없는 고전인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