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겔 변증법에서의 인식론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가입해서 처음 질문 글을 써봅니다. 평소 철학책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주로 교양 철학서적(일상과 연결시켜 이해시켜주는)을 즐겨 읽는 편이고 원서격인 철학서적은 많이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부분적이거나 상당히 짜치는(?) 확인차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자주 있었는데 물어볼 데가 마땅 찮아서 늘 고민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하네요ㅎㅎ

질문 주제에 서론이 길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_입문자를 위한 철학 <저자 김현강>이라는 책을 읽던 도중 헤겔의 변증법 부분에서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헤겔이 '테제'라 부른) 사태의 정립은 항상 동시적으로 (헤겔이 '안티테제'라 칭한)사태의 부정을 내포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두 논제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인식에 이르게 된다. 사태의 정립과 부정은 개별명제로 해체되고 결합하여 더 큰 관련성에 놓일 때 인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헤겔의 용어로는 '진테제'라고 불림).' 라고 이야기 된 부분을 읽으면서 '평소 우리가 빛을 빛이라 인식하는 것은 어둠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류(?)의 설명의 원천이 헤겔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나 궁금해졌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이런식의 생각(모순이 있기에 인식이 가능하다는)이 고대 철학에서도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조로아스터교나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인식론보다는 존재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제가 말하는 인식론에는 포함되는게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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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만, 모든 것은 그것의 부정이 있기 때문에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에 헤겔은 동의할 것 같네요 (하지만 헤겔이 처음은 아닙니다. 스피노자한테서 모든 규정성은 부정이다라는 것을 따왔거든요. 하지만 스피노자가 처음인지, 스피노자 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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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겔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라고 규정하고 이를 자기화한 것은 맞지만, 스피노자 본인이 그러한 헤겔적 부정성을 주장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스피노자가 말한 것은 "규정은 부정이다"라는 코나투스에 대한 맥락이었고, 이것을 헤겔이 "모든"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뒤 인식론 및 의미론적 맥락으로 비틀었던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피에르 마슈레, <헤겔 또는 스피노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질문자 님이 언급하신 빛/어둠의 비유와 관련해서, 스피노자는 <윤리학> 2부 정리 43 Scholium에서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의 기준으로서, 참된 관념보다 더 명료하고 확실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빛은 그 자신과 어둠 모두를 명료하게 해주는 것처럼, 진리 역시 그 자신과 거짓 모두의 기준이다.
What can there be which is clearer and more certain than a true idea, to serve as a standard of truth? As the light makes both itself and the darkness plain, so truth is the standard both of itself and of the false. [Curley 역]

여기에서 진리와 관련하여 스피노자는 참된 관념의 직접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헤겔적 의미의 개념 전체론(holism)과 반대되는, 17세기 전통의 immediate mental discourse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적어도 이러한 인식론적 맥락에서 스피노자와 헤겔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2)

질문자 님이 언급하셨듯, 헤겔의 사유는 "모순"이라는 테마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서양철학의 경우 기원전 5세기 경의 고대 그리에서 이미 모순을 논리적으로 배격하는 모순율의 형태가 등장하여 (특히 파르메니데스), 이후 이것이 대다수 사상가들에게 참인 논리적 규칙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면 어떤 것이 A이면서도 동시에 A의 부정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고대철학은 헤겔의 모순론과 정반대의 사상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모순율의 적용을 두고 여러가지 인식론적 문제가 주제화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모순율과 배중률을 받아들일 경우 어떻게 운동과 생성을 설명할 수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파르메니데스, 제논, 플라톤 등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헤겔은 자신의 모순론을 제시하면서 고대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인용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고대 철학에서도 이미 해당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한 예시로서는 다음 게시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별개로, 오늘날 논리학의 소수 분파로서 양진주의(dialetheism) 입장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A이면서 A의 부정이 동시에 참일 수 있는 경우가 인정됩니다. 대표적 주창자인 Graham Priest는 한편으로 헤겔 역시 이러한 양진주의자로 해석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고대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관심있다면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Cf. <Kant’s Excessive Tenderness for Things in the World, and Hegel’s Diatheism (2019)>, <What can't be said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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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가 그런말도 했군요 몰랐습니다.. 하나 배워가네요 좋은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이고 또 정확하게 코멘트를 남겨주실 수 있죠? 읽으면서 감탄만 하게 되네요.. 정성스러운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몰랐던 내용이 많아서 흥미로웠고 파편적으로만 알던 것이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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