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논리의 시작?

안녕하세요. 막 철학에 입문한 비전공자 학생입니다. 철학에 대해서 뭐부터 공부할 지 생각해보다가 한가지 궁금증이 생겨 물어봅니다.
철학은 어떠한 근거로 논리를 시작하나요? 예를 들어 수학같은 경우는 ZFC공리계같이 공리들로부터 시작되어 정의를 하고 정리가 참임을 밝히잖아요. 그런데 철학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의 시작을 모르겠습니다. 만약 철학을 수학처럼 공리같은 것을 만든다고 해도 무엇을 공리로 생각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시도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아직은 철학에 대하여 문외한이고 경험이 짧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물어봅니다.

철학을 무난무난하게 시작하려면 역시 칸트 선생님이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저 같은 경우 철학의 주요 개념 1.2 (백종현)이 좋았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한번 칸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칸트책은 아니고 칸트 연구하시던 분께서 쓰신책이라 칸트적인 시각은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여러 개념들과 주요논점 정말 잘 설명해주셔서 좋아요!!
무료라서 리스크없이 읽어볼 수 있습니다.

"철학 논리"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논리 체계를 뜻하는 것이라면 "논리학"이라는 세부 분과의 여러 연구들을 참조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철학적 사유/체계/입장이 어떤 원리들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를 묻는 것이라면 토대주의(foundationalism)나 환원주의(reductionism)적인 시도와 이를 둘러싼 논쟁으로 연결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철학사에서 보자면, 경험적 개체들을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보는 영국 경험론적 전통(로크/흄)과, 사유 속에서 주어질 수 있는 확실성을 기초로 삼고자 했던 대륙 합리론 전통(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러한 토대주의적 시도에 반대하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원리들을 도출하고자 했던 칸트의 선험적 논변(transcendental arguments)이 있고, 마찬가지로 토대주의에 반대하여 개념 및 원리들은 그 전체 연관 속에서만 의미가 주어진다는 전체론(holism)적 입장의 헤겔이 있습니다.

현대철학으로 와서도 이러한 여러 상이한 입장들이 변주되면서 반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 언어를 통해서 모든 학문을 정초하거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들(프레게/러셀 및 논리실증주의), 의식에 대한 문제를 제일문제로 보았던 후설 현상학,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실재)의 인과적 작용을 강조하는 자연과학화의 경향성들 (콰인과 그 후예들), 토대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한 믿음은 다른 믿음들을 통해서만 정당화된다는 정합론 및 전체론의 시도들(데이빗슨), 등등 이외에도 심리철학, 언어철학 등 무수히 많은 사상들과 조류들이 있어요.

먼저 짧은 철학사 혹은 철학 입문용 책을 통해서 철학적 정당화의 시도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대강 파악한 뒤 질문자 님에게 끌리는 분야를 점점더 파고들어가시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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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흥미롭게 보실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유클리드에게 영향을 받아 정의/공리로 시작한 후 정리들을 증명해내거든요. 만일 읽으실 거면 데카르트의 principles을 같이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 스피노자의 정의들이 데카르트의 정의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제대로 설명을 안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스피노자 공부를 하시게 되면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게 될 거고 (스피노자가 이 법칙을 얼마나 가져가는가? 도 스피노자에서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야코비와 독일철학으로 빠지면서 철학의 시작점에 대해 공부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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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전통적으로는 철학은 특정 공리계에서 연역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플라톤은 <국가> 6권에서 수학적인 교과목들과 철학활동이라 할 수 있을 변증술을 구분하는데요. 수학적인 학문들이 가정들을 토대로 하면서 이 가정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데 반하여 변증술은 바로 이 가정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대비됩니다. 이 변증술이 바로 철학자의 기술이지요. 여기서 가정들이라는 게 사실은 수학에서의 공리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수학'이 아니라 '수학적인 학문들'이 다 그렇다는 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개별과학들에 적용할 수 있는데요. 그야 모든 개별 과학들은 특정 방법론을 통해 정립되어진 기본 가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이런 개별 과학들의 특정 방법론들을 탐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철학에서 모두가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이해의 방식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교육, 문화, 역사, 언어가 다르고, 타고난 기질과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문제삼는 것들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환경과 문화, 역사 또는 개인의 기질들이 있는 한, 어떤 문제의식은 다른 문제의식보다 더 많이 공유되기도 하니까요. 극명한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순율 자체를 의문시하지는 않습니다만, 일부 논리학자들은 모순을 인정하는 논리체계를 구성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어떤 정해져있는 규칙에서 시작하려고 하지마시고, 본인의 건전한 상식을 믿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을 다른 뛰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규명하려고 했는지 등을 참고하다보면 결국에 만족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것을 꾸준히 다각도로 조명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주 나이브한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될텐데,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철학적 문제는 그런 자연적인 것들에서 시작하니까요. 다만 꾸준히 그 문제의식을 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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