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들에 의한 선험적 종합 인식" 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역. 아카넷 2006)의 해제를 읽고 있는데 해제 35p에서 "순수한 직관들인 공간ㆍ시간 표상을 해설함에 있어 '선험적 종합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무엇보다도 먼저 답해야 할 물음으로 보고 있는 칸트는 물론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서, 직관들에 의한 선험적 종합 인식(예컨대 수학적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해명한다." 라는 문장 중에 "직관들에 의한 선험적 인식" 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1. 직관은 (칸트가 사용하는 엄밀한 경험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경험이므로 후험적/경험적인데, 그러한 "경험적인 것에 의한 선험적 인식" 이란 말은 애당초 모순이 아닌가요?

  2. 그리고 수학적 인식은 왜 직관들에 의한 인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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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직관이란 직관의 경험적 내용이 아니라 직관의 선험적 형식입니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경험적 대상은 시공간상에 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시간과 공간은 경험이 아니라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형식적 조건으로서 경험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들입니다.

2. 수학적 지식들이 이른바 직관에 의한 인식이라는 견해가 현대 수리철학에서 널리 통용되는 견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칸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5+7=12' 이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이다' 같은 명제는 분석 명제가 아닙니다. 주어에 있는 '5', '7', '더하기' 등 개념의 의미에 12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마찬가지로 '삼각형', '내각', '합' 등을 분석해서 180°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어 개념만으로 술어 개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즉 이들이 분석 명제가 아니라면) 실질적인 지식을 가져다주는 종합 명제라는 말인데, 종합 명제는 참이기 위해서 주어와 술어 외에 제3의 매개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 매개물이 앞서 말한 선험적인 '직관 형식', 즉 공간과 시간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대수학적 지식은 시간상의 잇따름을 통해, 기하학적 지식은 순수 공간 상에서 도형을 구상해봄으로써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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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칸트는 어떤 종합판단들은 분석판단만큼 참이라고 믿고 분석판단만큼 참이기를 원합니다. 분석판단의 참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종합판단들은 논리적으로 참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수학의 모든 명제들과 물리학의 어떤 명제들을 그런 판단으로 봅니다. 그런데 경험론자들처럼 경험을 이해하면 어떤 종합판단의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됨을 보증하는 경험은 있을 수 없습니다. 흄이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된 종합판단이 있다면 경험은 달리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떤 종합판단의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됨의 보증은 '모든 가능한 경험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모든 인간적 인식주관에 갖추어져 있는 것'에서 와야 합니다. 그것이 '선험'적인 것이고 그래서 칸트가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인 종합판단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2. 칸트는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개념만 가지고서는 인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식은 언제나 대상의 인식이고 대상의 인식은 대상과 직접 상관하고 따라서 개별적인 직관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주관이 직관 없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주관은 그 대상을 이미 벌써 인식하고 있는 존재이거나 그 대상을 직관없이 인식하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상응하는 직관이 없는 대상의 존재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내도 그것은 공상이나 순수한 원망사유이지 인식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즉 선험적 종합판단은 직관을 필요로 하기에, 인용하신 "직관들에 의한 선험적 인식"은 전혀 모순적이지 않은 표현입니다. 다만 문맥상으로는 그 인식은 수학적 인식을 주로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칸트는 직관을 경험적 직관과 순수 직관으로 구별하는데, 경험적 직관은 다음 단계에서 구상력에 의해 통일되게 되는 감각 자료들을 제공하는 직관이고 순수 직관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직관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공간과 시간은 직관되는 것인 동시에 모든 가능한 경험을 구성하는 선험적 형식으로서 - 그래서 '순수'직관이라고 합니다 - 경험적 직관도 공간과 시간 속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수학적 인식이 칸트에게서 직관들에 의한 인식이자 선험적인 인식인 이유는 이렇게 수학적 인식의 대상인 공간과 시간이 직관되는 것인데다가 그 인식의 논리적으로 참인만큼 필연적으로 참됨을 공간과 시간이 선험적 인식형식이라는 사실이 보증해주기 때문입니다.

  3. 아마 칸트의 인식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선험적 종합판단이 있다는 성공적인 논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칸트가 가장 위대한 서구 철학자 몇명 중에 상위권에 꼽히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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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전공자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백종현님이 작성하셨던 다른책을 읽어본 경험을 말미암아 이해할때 다음과 같았습니다.
틀린 부분이나 보충할 내용이 있다면 해주세요.


"직관들에 의한 선험적 종합 인식" 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종합 인식직관에 따로 설명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식과 판단

우선 인식에 대해 칸트가 말한 내용입니다.

  1. 인식은 의식 작용
  2. 의식은 어떤 사태에 대해 판단함으로서 인식을 얻음
  3. 판단하는 기능을 지성(오성)이라 함
  4. 지식, 인식등은 지성이 개념들을 종합/결합하거나 분해/분석함으로써 생긺
  5. 인식을 "구성" 하는 요소는 개념임

판단은 내재적이라 말하며,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이 있습니다.

  • 분석적 판단: 명제 자체 분석만으로 가능한 판단 [예: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 종합적 판단: 명제 외부의 추가 정보나 확인이 필요한 판단 [예: 실체-속성 관계, 원인-결과 관계]

또한 경험적 인식은 이성이 가지고 있는 선험적 형식이 필요합니다.

  • 경험적 인식(공간ㆍ시간)의 판단에는 형식을 가짐 [예: 육하원칙]
  • 이러한 형식 자체는 이성이 원천
  • 위의 형식은 경험으로부터 유래할 수 없으며, 선험적이라 표현
  • 형식적 인식은 지성의 동일함에서 오며 보편성을 띔 (단, 상상력, 의지, 경향성등에 의해 착오가 일어날 수 있음)

이러한 분석/종합판단과 선험적/경험적인식의 경우의 수로 인해 4가지로 나뉠수 있겠습니다.

  1. 선험적 분석판단 [예: 삼각형은 세 각으로 이루어진 도형]
  2. 선험적 종합판단 [예: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3. 경험적 분석판단 (마땅한 예가..)
  4. 경험적 종합판단 [예: 지구의 대기에는 질소가 가장 많다]

윗 분이 말씀해주셨듯 모든 계산은 종합판단에 속하며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판단들도 선험적 종합판단에 속합니다.

  • 수학적: "5+7=12"에서 12에는 5+7 개념이 없음
  • 기하학적: "직선은 두 점의 가장 짧은 선"에서 직선에 가장 짧다는 개념이 없음
  • 물리적: "질량 x 가속도 = 힘" 에서 에는 질량가속도 개념이 없음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수학적 인식이 선험적 인식에 속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순수지성 원칙과 직관

종합적 판단에 대해 방향을 안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범주와 관련된 여러 명제들이 있습니다.

먼저 범주로는 수학적 범주와 역학적 범주의 개념에 맞추어 인식합니다.

  • 수학적 범주: (경험적 직관이든 선험적 직관이든) 직관의 대상에 상관
    • 종류: 분량, 성질
  • 역학적 범주: 대상들 서로가 관계하건 대상이 지성에 관계하건 대상들의 현존에 상관
    • 종류: 관계, 양상

칸트는 범주를 지침으로 삼아 원칙들을 기술하는데요.
순수지성개념들을 가능한 경험에 적용할때 최상의 원리들이며, 범주처럼 원칙도 수학적 원칙과 역학적 원칙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 수학적 원칙: 현상 일반의 직관에 관계
    • 종류: 직관의 공리, 지각의 선취적 인식
  • 역학적 원칙: 현상 일반의 현존에 관계
    • 종류: 경험의 유추,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

수학의 원칙들이 왜 직관에 관계하는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나머지 질문도 해결이 되겠죠?

어찌되었든 여기서 드디어 직관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직관의 공리에 대해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직관들은 연장적 크기들이다
    • 연장적 크기란 부분들의 표상이 전체 표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쉽게 말해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크기이다
    • 선분은 그 부분들이 잇따라 산출됨으로써만 표상 가능하고, 시간은 여러 순간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됨으로써만 표상 가능
  • 발생(존재하기 시작)하는 모든 것 은, 그것이 규칙상 바로 그에 뒤따르는 어떤 것을 전제한다

직관의 공리의 원칙에 대한 칸트의 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현상에 있어서의 순전한 직관은 공간이거나 시간이다
    • 현상의 형식은 공간이거나 시간이며 현상은 공간과 시간 중에 주어짐
  2. 모든 현상은 포착에 있어서 부분에서 부분에로의 계속적인 종합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 형식적 직관으로 표상된 공간과 시간은 연장적 크기를 갖는 것으로 규정
    • 현상들은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주어지므로 현상들 역시 연장적 크기를 갖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음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는 것)
    • 주어진 현상은 포착에 있어서 부분에서 부분에로의 계속적인 종합함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 .
  3. 따라서 모든 현상들은 연장적 크기를 갖는다

직관의 공리는 주어진 현상을 "크기를 갖는 어떤 것"(분량)으로 규정하고 인식하는 인식주관의 인식능력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직관으로 설명되기 위해서는 대상의 질적인 요소 역시 크기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하겠죠.

두번째 지각의 선취적 인식은 밀도적 크기로 규정됩니다.

  • 모든 현상들에서 감각은, 즉 대상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바 실질적인 것(현상의 실질성)은 밀도적 크기, 곧 도를 갖는다
  • 모든 현상들에서 실질적인 것 즉 감각의 대상인 것은 밀도적 크기, 곧 도를 갖는다

칸트의 증명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1. 모든 현상 일반은 연속적인 크기를 갖는다
  2. 모든 현상이 연속적인 크기를 갖는다면, (어떤 사물의 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의 이동인) 변화도 연속적이다
  3. 경험적 직관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이 실질성(현상의 실질성)이며, 실질성의 결여에 대응하는 것이 부정성 즉 영이다. 그런데 모든 감각은 줄여질 수 있으므로, 감각을 줄여서 점차 소멸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상에서의 실질성과 부정성 사이에서는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상관이 있다.
  4. 순전히 감각에 의한 포착은 단지 한 순간 만을 채운다. 현상 중에 있는 어떤 것의 포착은 부분표상에서 전체표상으로 나아가는 순차적인 종합이 아니므로, 이런 포착은 전혀 연장적 크기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상에 있어서 실질적인 것은 연장적 크기는 가지지 않는다
  5. 따라서 현상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것은 연장적 크기가 아닌 다른 크기, 곧 밀도적 크기를 갖는다.

보충 및 정리

칸트는 철학을 "개념들에 의한 이성 인식의 체계", 수학을 "개념들의 구성에 의한 이성 인식의 체계"라고 했습니다.

  • 개념을 구성한다는 것은 그 개념에 상응하는 직관을 선험적으로 나타내는 것
  • 개념의 구성을 위해서는 비경험적인(순수) 직관이 필요

앞서 선험적 종합판단의 예시에서 12 자체에는 5+7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수학적 개념은 주어진 개념으로부터의 인식이 아니라 만들어진 개념("개념의 구성")에 의한 이성인식이었습니다.

수학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개념을 순수직관(시간.공간) 속에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적 원칙으로는 직관의 공리, 지각의 선취적 인식이 있었습니다.

칸트의 선험적(절대적) 세계관은 상대성이론(시공간), 양자역학(인과율), 비유클리드 기하학(기하공간)등에 의해 논파가 되기도 했으나..
F = ma대표되는 뉴턴 기하학이 아직도 쓰이듯 고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가입 후 처음으로 영양가(?)가 있는 글을 쓴 것 같아 뿌듯하네요 :slightly_smiling_face: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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