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실용주의 계보에 해당하는 학자는 누가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와서 질문 하나 남기고 갑니다.

미국의 기호학자 퍼스를 시작으로 미국의 실용주의 노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이를 계승하는 학자들 그러니까 실용주의 계보에 어떤 학자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글 서칭을 해보니 로티, 콰인, 퍼트넘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들이 실용주의 노선에 탑승하고 있는지는 찾기가 어렵네요.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배움을 구합니다.

회원가입하고 첫 글을 댓글로 올리게 되는군요. 나이많은 독학자입니다. 흥미로운 질문이 사장되지 않도록 소견 올립니다. 실용주의도 모르고 미국 현대 철학도 거의 모르는 사람의 추측입니다.

저는 실용주의가 퍼스보다는 W. 제임스의 학파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이트헤드의 지도로 콰인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러셀이 미국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콰인은 미국 분석철학을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고 퍼트남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티는 듀이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임스의 radical empiricism에 주목합니다.

퍼스의 재발견은 언어학과 정보이론이 20세기 후반에 매우 중요한 분야가 된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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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에 따르면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그 사물의 감각 가능한 결과에 대한 관념입니다. 역으로, 한 단어가 어떠한 실제적인 결과도 생각할 수 없는 대상을 지칭한다면 그러한 단어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이렇게 의미를 경험이나 실험과 연관짓는다는 점에서, 퍼스는 의미를 맥락 의존적, 사회적, 공적인 것으로 바라봤습니다.

의미를 맥락의존적인 것으로 본 퍼스와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세계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주려고 시도하는 관념론적 철학을 독단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이에 기반하여, 제임스는 세계에 대한 이러한 해석도 옳고 저러한 해석도 옳다고 한다면, 그것들이 우리 삶에 미칠 효과의 차이를 가려내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철학을 포함한 모든 이론의 가치를 그 일관성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 또는 그 이론을 수용했을 때의 결과에 있다고 말합니다.

듀이 또한 앞선 둘과 같은 노선을 탑니다. 듀이는 인간 정신을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확실한 무엇을 고찰하는 도구로 간주하는 즉, 인식행위를 단순히 그곳에 있는 무엇을 바라보는 단순 활동으로 여기는 기존 철학을 <방관자의 인식론>이라 칭하며 비판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인간과 환경이 역동성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바 인간의 정신(지식)과 그 대상의 관계 또한 역동적일 것이라며, 정적이고 기계적인 성격을 갖는 방관자의 인식론을 반박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정신(사유, 지식)이 환경(문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제시하며, 사유가 실용적인 여러 문제나 그에 요구되는 행위와 별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듀이 또한 철학을 이로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인식론적 도구로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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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모든 철학 사조의 시작과 끝을 제시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동의할만한 어떤 사조의 대표격은 있지만 (a) 그의 사상 중 무엇이 사조를 정의할 핵심인지 (b)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받은 사람 중 그 사조라 부를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애매하기 때문이죠.

(2)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ragmatism/

sep에 따르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인지자의 상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실용주의의 핵심이라 말합니다. 아마 이는 @sophisten 님이 잘 설명해주신 실용주의 학자들의 공통점에 대한 좋은 표어로 보입니다.

(3)

통상 전통적 실용주의는 퍼스/윌리엄 제임스 - 존 듀이 - C.I.Lewis로 보는 편입니다. C.I.Lewis의 제자들이 많고 다들 한가닥합니다. (콰인, 넬슨 굿맨, 로드릭 치솜, 셀라스도 루이스 밑에 잠시 있었고요.) 이들 네 학자
모두 실용주의의 영향이 보이지만, 딱 실용주의자라 하기에는 자기만의 이론이 강하고 (스스로를 실용주의라 부르지도 않기도했으니) 실용주의로 분류하진 않아 보입니다.

(4)

이제 후대에 나와 로티와 퍼트남 등이 다시 자신들의 입장을 신-실용주의라고 부르면서 등장했죠. 이들은 아주아주 러프하게 말하면, 참이 될 수 있는 모델이 여러 개 있고, 인지자의 필요/맥락에 따라 모델 중 하나를 고른다 생각했습니다.

아마 퍼트넘/로티 이후 나온 "모델적" 접근이나 진리다원론/논리다원론도 어느정도 신실용주의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맨 소개한 실용주의의 표어를 고려해보면 말이죠.)

근데 이러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학자들이 실용주의로 분류될지 모르겠습니다.
심리철학에서 멘탈 컨텐츠의 외재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 (타일러 버지), 논리다원론/참다원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크리스핀 라이트, 헨리 필드), 인식론에서 맥락주의나 실용주의적 침범을 주장하는 학자들 모두 어느정도는 실용주의라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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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러한 이유로 프래그머티즘이 하나의 "학파"라기보다는 철학에 대한 일종의 "접근법" 혹은 "시각"정도로 분류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소개한 세 인물의 철학이 그 당시에는 독특했었을지 몰라도 요즘에는 널리 퍼진 입장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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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자연의 개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있었던 논의를 생각하면 영어로 글을 올려 좀 머쓱합니다. 제가 한글책을 거의 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군요. 1920년의 상황에서 화이트헤드가 극도로 간략하게 정리한 사유 체계들입니다. CN, p.2.

"The philosophical pluralist is a strict logician; the Hegelian thrives on contradictions by the help of his absolute; the Mohammedan divine bows before the creative will of Allah; and the pragmatist will swallow anything as it 'works.'"

만약 화이트헤드의 실용주의가 적절하다면, 자연과학이 가장 실용주의적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콰인이나 셀라스 등에 대해 논평하고 싶은데 워낙 아는게 없습니다. 황당한 글 올릴 때가 많을텐데 많은 비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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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굿맨을 여기서 보게 되는군요. 사실 굿맨과 퍼스의 연결점을 찾다가 실용주의 노선을 탐구하게 된 것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