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의 「체계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읽고

Maker, W. (1994). Philosophy as Systematic Science. Philosophy without Foundations: Rethinking Hegel.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47-66.

*메이커의 논문은 추후 다시 읽고 제대로 요약할 생각이다.

메이커는 근대 철학을 추동했던 핵심적 발상을 기초주의(foundationalism), 이를 비판하는 현대의 반철학적 조류들을 반기초주의(antifoundationalism)로 특징지운 후, 후자를 기초주의에 대한 아드 혹(ad hoc) 비판으로 재비판하고 기초주의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기초주의의 내재적 비판으로부터 체계철학의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다.

기초주의란 지식의 기초를 마련하고 이와 더불어 자기를 정초하려는 철학의 기획을 말한다. 기초주의는 주어져 있는 전제들을 독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으로 정당화된 관점에서 탐구를 시작하려는 동기에 의해 탄생했다. 이 입장이 지향하는 관점은 자기 자신과 다른 것들 양쪽 모두를 정당화하도록 요구받는다. 기초주의는 그러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지식을 참된 것으로 보증하기 위한 필연적 가능 조건들을 탐구한다. 여기서 참이란 관념과 실재, 혹은 명제와 실재 사이의 올바른 대응을 의미한다. 기초주의적 발상에 의해 추동되는 철학은 양자 사이의 규정적인 관계를 명시함으로써 철학 자신과 지식의 가능성을 올바르게 보증하고자 한다.

그런데 반기초주의는 기초주의의 기획이 세계와 지식에 대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에 기반한다고 본다. 이 입장은 기초주의의 패인이 지식의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유한성을 간과한 채 이를 넘어 무한하고 절대적인 관점에 다다르려는 시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유를 유한한 것으로 조건지우는 한계는 사유에 의해 명확하게 인식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초주의는 자기의 의도와 달리 그 스스로 독단론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 대해 기초주의자는 피장파장(tu quoque) 논법으로 응수할 수 있다. 반기초주의자는 반기초주의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반기초주의자는 우리의 지식이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정당화하지 못한 채 독단적으로 도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기초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여기에 다시 대응할 방책이 있다. 반기초주의자가 스스로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기초주의자의 의도는 지식의 궁극적인 정초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가능성을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은 반기초주의를 방어할 수는 있으나 기초주의자를 직접 공박할 수는 없게 한다. 결국 반기초주의자와 기초주의자 사이의 논쟁은 교착상태에 이르게 되며, 어느 한 쪽도 다른 한 쪽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위에서 기술한 정황들은 반기초주의의 비판이 기초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이 아님을 보여준다.

메이커가 아드 혹 비판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재적 비판은 기초주의의 목표 설정 내에 존재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기초주의는 지식과 실재의 내용적인 동일성을 입증해 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실재는 지식과 완전히 독립적이고 지식에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 상정된다. 그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지식과 실재의 일치란 공허한 동어반복에 불과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자를 이종적인 것으로 설정해놓은 뒤 그 동일성을 보이려 한다는 점에서, 기초주의가 설정하는 조건들은 자기 모순적이다.

체계철학의 가능성은 기초주의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서 나온다. 체계철학은 기초주의가 상정하는 주관주의적 혹은 대응론적 그림을 파기하고, 여기에서 자기 정초적 지식이라는 철학의 열망을 실현할 단서를 발견한다. 체계철학은 지식과 대상 사이에 어떤 특정한 관계를 외적으로 상정하지 않은 채 이 목표를 추구한다. 체계철학은 모든 지식, 모든 담론이 자기와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근거 지워져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며, 지식을 외부 세계에 대한 일종의 기술로 간주하는 입장에 반대한다. 이런 이유로 체계철학은 반기초주의와 어느 정도 공통점을 지닌다.

메이커가 제시하는 논증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상정함으로써 기초주의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그 자신 독단적인 전제를 도입하며, 이 점에서 기초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일 수 없다. 기초주의가 자기 자신의 가정으로 인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는 점을 보이는 일이 보다 효과적인 비판의 전략이다. 그리고 진리와 세계 사이의 대응론적 그림을 파기한다고 해서 독단적 전제들에 대한 비판과 정당화의 요구라는 기초주의의 열망이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해체적’ 철학자들에 대한 메이커의 비판은 크게 엇나가고 있다. 현대의 철학자들 중 도대체 누가 그렇게 주장한다는 말인가? 메이커는 위에서 서술된 바의 순진한 ‘반기초주의자’의 예시로 가다머, 하이데거, 로티를 거론하는데, 이는 완전히 틀렸다. 저 셋 중 어느 누구도 인간 지식의 항구적인 한계를 상정하지 않으며, 그렇게 상정된 한계를 논거로 철학적 기초 놓기라는 기획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초주의적’ 철학에 대한 이들의 비판 논점은 메이커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재적 비판에 더 가깝다. 이들은 사유와 존재, 언어와 실재 사이의 간극을 전제한 채 양자의 대응 조건을 찾으려는 표상주의적 그림이 철학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와 상충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메이커는 은연중에 ‘체계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이 겨냥한 ‘해체적’ 철학자들의 논증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6개의 좋아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는 않는데) 철학 작업은 상대를 바보로 만들고 까내리는 게임이다”라는 표현을 올빼미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딱 어울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네요.

3개의 좋아요

약간 양가적인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 @TheNewHegel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저도 하이데거, 가다머, 로티를 순진한 반기초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되었다고 봐요. 이 사람들은 기초주의나 표상주의의 기획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내재적 비판'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하이데거, 가다머, 로티가 자신들의 논의를 내재적 비판의 형태로 뚜렷하게 정식화하거나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분명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텍스트 여러 부분에서 (a) 표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작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든가, (b) 표상주의가 독단과 회의 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다든가, (c) 경험의 역사적 성격으로 인해 세계에 대한 완벽한 표상이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은 하면서도, 이런 비판 자체를 날카롭게 다듬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후대 연구자들이 기초주의나 표상주의에 대한 이 인물들의 비판에 대해 다소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고는 생각해요.

6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