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문제에 대한 해소 전략의 구체적 사례들

제목 그대로입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 어떤 답을 내어놓음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또 어떤 철학자들은 어떤 문제가 사실은 잘못 제시된 문제이거나 중대한 혼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제가 자주 접했던 문헌들은 보통 전자에 속했던 것 같고, 그래서 후자의 전략을 취하는 철학자들의 작업을 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몇몇 개는 보았겠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철학적 문제를 진단하고 해소하는 논증 전략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고 싶은데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계신 분들께서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의도한 "구체적"의 의미는 (1) 주어진 문제가 무엇이고, (2) 대략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는지, (3) 어느 논문/저서에서 제시된 것인지를 명시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2)는 제외하더라도, 알려주시는 내용에서 (1)과 (3)을 포함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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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생각나는 철학자는 로티나 맥도웰이네요.

먼저 로티 같은 경우 『철학과 자연의 거울』 제4장 「특권적 표상」에서 지식이 정당화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로티는 여기서 지식 정당화에 대한 종래의 문제가 지식에 대한 잘못된 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보이고 표상주의적 혹은 대응론적 정당화 이론을 공박합니다. 그는 표상주의적 그림이 마음과 세계 사이의 인과적 설명과 지식의 정당화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는 지적에 근거해서 정당화가 사회적 실천이라는 자신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사실 『철학과 자연의 거울』 전체가 이런 전략을 취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철학관 전체를 공박함으로써 마음과 세계의 관계, 지식과 학문의 정초 등 일련의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위와 같은 혼동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대안적, 실용주의적 철학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 책 전체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맥도웰도 비슷한 전략을 취합니다. 대표적으로 『마음과 세계』에서는 마음과 세계, 자연과 자유 등 두 영역 사이의 이원론이 허상임을 지적함으로써 두 영역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현대의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가령 지식이 세계로부터의 경험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직관과, 지식이 자연법칙과는 구별되는 고유의 정합적 질서를 지닌다는 직관은 일견 양립 불가능한 듯 보이는데, 맥도웰은 저 경험이 취득되는 자연의 영역을 개념의 영역과 이질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즉 우리에게 자연은 이미 개념적인 것으로 경험되고 드러난다고 주장함으로써 두 영역 사이의 이분법을 철폐하고, 이를 통해 마음과 세계, 자연과 자유의 연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들을 아예 잘못된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문제로서 해소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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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결(solving)'과 '해소(dissolving)'라는 용어의 사용: 로버트 브랜덤

이 개념 구분은 여러 가지 글들에서 자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장 확실하게 본 건 브랜덤의 Making It Explicit이었어요. 브랜덤은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논의로부터 발생하는 소위 무한퇴행(infinite regress)과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 사이의 딜레마가 해결되기보다는 해소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거든요.

This regress to our own interpretive practices dissolves, rather than solves, the gerrymandering problem concerning the relation between regularities and norms. For there is no general problem about how, from within a set of implicitly normative discursive practices, what we do and how the world is can be understood to determine what it would be correct to say in various counterfactual situations—what we have committed ourselves to saying, whether we are in a position to get it right or not. (Brandom, 1994: 647-648)

R이라는 규칙이 있으면, R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R'이라는 규칙을 또 도입해야 하고, R'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R''라는 규칙을 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규칙주의(regulism) 에요. 그런데 이 입장은 결국 무한퇴행의 문제에 빠진다는 게 브랜덤의 비판이에요.

반면, R이라는 규칙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규칙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R의 의미를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규칙성주의(regularism) 에요. 그런데 이 입장은 '규칙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아무나 자의적으로 규정하게 되는 게리멘더링의 문제에 빠진다는 게 브랜덤의 비판이고요.

브랜덤은 규칙주의와 규칙성주의의 딜레마(혹은 무한퇴행과 게리멘더링의 딜레마)가 표상주의적 의미론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해요. 그래서 애초에 저런 문제 구도 자체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추론주의적 의미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죠. 바로 이 점에서 딜레마가 '해결'보다는 '해소'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2) 해소 전략의 '정석'에 좀 더 가까운 입장: 존 맥도웰

브랜덤은 여전히 '추론주의적 의미론'이라는 거대한 이론 체계를 구성해서 해소를 수행하려 하는 철학자다 보니, 해소 전략의 '정석'을 따른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좀 더 '정석'에 가까운 인물은 맥도웰이죠. 맥도웰도 똑같이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논의로부터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발전시켜요. 이와 관련해서 논문도 여러 편을 썼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솔 크립키와 크리스핀 라이트를 비판한 맥도웰의 초기 논문인 "Wittgenstein on Following a Rule"에요.

여기서 맥도웰은 규칙 따르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스퀼라(Scylla)'와 '카륍디스(Charybdis)'에 비유해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요. 즉, (a) 해석을 통해 규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입장은 스퀼라에 비유돼요. 여기에서 발생하는 하위 문제들로는 (a') 규칙에 대한 무한한 해석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해석의 '역설(paradox)'과 (a'') 규칙에 대한 최종적 해석이 존재해야 한다는 해석의 '신화(mythology)'가 있어요. 반대로, (b) 인과적 반응성향 같은 자연주의적 요소만으로 규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입장은 카륍디스에 비유돼요. 이 입장에서는 규범성이 단순한 우연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고요.

맥도웰은 이런 문제가 '규칙 따르기'라는 활동을 규칙에 대한 '해석' 활동과 동일시하는 잘못된 사고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평가해요. 그래서 이 잘못된 전제를 폐기하게 되면, 우리가 무한퇴행에 빠지지도 않고, 최종적 토대에 의존하지도 않고, 자연적 행동성향으로 규범을 환원하지도 않고서도 규칙을 잘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런 문제 없이 해명된다고 지적하죠.

그리고 이 논문의 내용이 나중에 브랜덤의 추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장되어서 쓰인 게 "How Not to Read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Brandom’s Wittgenstein"이에요. 여기서 맥도웰은 브랜덤의 추론주의가 규칙 따르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소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해요. 추론주의적 의미론 같은 거대한 이론 체계를 구성하지 않고서도, 단지 잘못된 철학적 전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문제에 대한 해소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는 거죠.

더 나아가, 규칙 따르기에서 이루어진 논의를 마음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의 더 큰 문제에까지 적용한 책이 맥도웰의 대표작 Mind and World에요. 여기서는 '소여의 신화(myth of the Given)'와 '정합론(coherentism)'이라는 딜레마가 주제로 다루어져요. 이런 딜레마는 '경험'이라는 개념과 '이유의 논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잘못된 철학적 전제 때문에 생겨난다는 게 맥도웰의 주된 논지에요. 애초에 그 둘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가 딜레마에 빠져야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거죠.

(3) 이 모든 논의의 기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해소 전략을 취하는 철학자들은 대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자신들의 사유의 기원으로 삼고 있죠. 그 중에서도 185-216절 사이에 등장하는 '규칙 따르기'라는 주제를 둘러싼 논의가 항상 철학적 논쟁의 중심에 있어요. 크립키가 이 주제를 부각시킨 이후로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과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불타올랐으니까요.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해설은 해커와 베이커의 Scepticism, Rules and Language에요. 흥미롭게도, 크립키의 해석은 정통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에게 항상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크립키의 해석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 '해소 전략' 혹은 '치유 전략'을 따른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크립키를 읽으려는 책이 쿠쉬의 A Sceptical Guide to Meaning and Rules이죠.

(4) 대륙철학에도 '해소 전략'이 있다!: 자크 데리다

비트겐슈타인 전통의 철학자들만 해소 전략을 취하는 건 아니에요. 대륙철학에서도 철학의 문제에 대해 아주 유사한 접근이 나타나죠. 대표적인 예가 데리다에요. 데리다의 초기 논문인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는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비판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들이 전통적 형이상학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형이상학을 끌어들였다고 공격하거든요. 데리다 자신은 이런 식의 자기 모순적 문제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목소리/문자', '기원/비기원', '순수/비순수' 같은 형이상학이 상정하는 이분법적 전제들만을 철저하게 논박하고자 해요.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낡은 형이상학을 공박하는 형태의 비판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내재된 잘못된 철학적 전제들을 폭로하는 형태의 비판만을 수행하겠다는 거죠. 데리다의 초기 저작들인 『목소리와 현상』이나 『그라마톨로지』가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사실, 이런 방식의 형이상학 비판은 이미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에서도 종종 나타나긴 하는데, 이걸 철학의 전면에 부각시킨 게 데리다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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