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크립키와 프레게 (2)

한 주간, 크립키의 책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크립키가 프레게의 퍼즐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전에는 프레게가 동일성을 대상간의 관계로 비판한 부분으로 돌아왔다면, 이번에는 동일성을 이름간의 관계로 비판한 부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우선 저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가집니다.

(1) A statement is informative only if it allows the subject to rule out worlds, the world where it is false.

지금 비가 온다는 진술이 제게 정보값을 주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모든 가능세계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정지시어의 정의를 따라, 만약 고정지시어의 관계를 포함한 진술이 필연적 참이라면, 그렇기에 모든 가능 세계에서 참이라면, 그것을 배우는 것은 다른 어떤 세계를 배제하는 게 아니기에, 사실상 어떤 정보값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크립키는 다음과 같이 답하지 않을까요? 지난 번에 Raccoon선생님이 크립키가 인식적 측면에서 정보값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이 제게는 와 닿지 않아서,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고정지시어이라는 건 자명하고, a라는 사람은 단지 이 두 개가 고정 지시어라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2) If "Hesperus" and "Phosphorus" co-refer, then "Hesperus is Phosphorus" is true(and necessarily so).

(3) If "Hesperus" and "Phosphorus" do not co-refer, then "Hesperus is Phosphorus" is false(and necessarily so).

여기서, a라는 사람이 "Hesperus is Phosphorus is true"를 배운다는 건, (3) 의 전건이 가능한 가능세계를 배제하면서, (2)의 전건인 "Hesperus" and "Phosphorus" co-refer 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3)은 형이상학적으로 가정할 수 없는 가능세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a의 인식적 측면에서는 이런 상정도 가능해보이긴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식으로 양 이름이 같은 것을 지칭하는 관계로 쓰인다는 점은 프레게가 비판했던 이름간 동일성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름과 필연 3강에 보면, 크립키는 슈미아이덴티티를 도입한 사고 실험을 통해 동일성을 이름간 관계로 보는 거에 반대하고, 동일성을 대상과 자신과의 관계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사실 상기한 사고 실험은 이미 크립키가 반대할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질문*)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야 인식적 측면으로 그를 해석할 방식이 있을까요? 크립키가 동일성을 자신과 대상과의 관계로 여겼을 때, 프레게의 비판을 어떻게든 피해가는 방식은, 지난 번의 결론처럼 '인식적'측면으로의 접근일 것입니다. 크립키는 a=a와 a=b의 상황에서 양자가 고정지시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양자를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곤 합니다. 이는 이름이 가진 '인식'적 측면인데, 사실 이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크립키가 명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묘연해지더라고요.

크립키의 동일성, 자신과 대상과의 관계를 인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3개의 좋아요

제가 <이름과 필연>을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크립키가 이 문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답을 내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크립키는 단지, 자신이 도입한 고정지시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때 따라 나오는 논리적 결론('샛별은 개밥바라기별이다'가 필연적 명제를 표현한다는 것)과 우리의 직관('샛별은 개밥바라기별이다'를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을 모두 수용했을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흄의 포크가 잘못된 구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구요.

제가 이해하는 게 맞다면, 이런 크립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witheuntaek님께서 질문하신 문제를 가능세계 의미론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차원 의미론(Two-Dimensional Semantics)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명할만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진술의 진릿값이 세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술이 표현하는 명제가 무엇이냐는 것에도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기존의 의미론이 '샛별은 개밥바라기별이다'라는 진술의 명제가 이미 주어져있고 그게 주어진 가능세계에서 참이냐를 따지는 선에서 그쳤다면, 이차원 의미론에서는 '샛별은 개밥바라기별이다'라는 진술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어떤 철학자들은 맥락적 요소를 포함하는 의미론을 모델링하기 위해 이차원 의미론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철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그 진술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지와 같은 인식적 요소와 의미 사이의 관계를 모델링하기 위해 도입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전자가 Kaplan, Stalnaker 같은 쪽이고 후자가 Chalmers입니다. 사실 제가 쓴 기술은 대단히 부정확한 기술입니다.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4개의 좋아요

정리해주신 부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걸 재구성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인물이 Stalnaker이었거든요.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프레게의 name view가 충분히 정보값을 줄 수 있는 듯한 식으로 얘기하는 걸 접한 기억이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라쿤님과 대화하면서 많이 배우네요, 이래서 공부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라는 건가 봅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Chalmers도 참고해보아야겠네요.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