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덕과 김형효 평론 중 동양 철학의 위계론

김형효 교수님 책을 찾다가 이승종 교수님의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동시대 철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 토론을 하는 시대가 왔구나 싶었습니다.
제 생각은 김형효 선생님의 물학(무위), 심학(당위), 실학(유위)은 물학은 공자의 제자 중 안회에서
시작해서 후대 선불교의 불성이나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와 같은 라인이고, 심학은 증자-맹자-주자의 도통론으로 내려오는 가치론 중심, 실학은 자하(자공, 단목사) 계열의 법가주의적인 전통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논어의 특징 중 하나는 "인(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적절한 중용을 선택하라는 시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각자의 길에서 처한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 굳이 이게 위계 질서가 있다고 할 근거가 있을까요?

특별한 근거가 없이 위계질서와 구조를 거부하는 해체주의를 수용한다고 하는 것과 무슨 논리적 모순이
있을까요? 오히려 해체주의가 맨처음에 언급한 물학과 가장 유사성이 있어 보입니다.

"김형효 교수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유형을 물학(物學), 심학(心學), 실
학(實學)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는 모종의 위계 설정을 감지한다. 해체주의
는 바로 저러한 칸막이와 위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철학적 운동을 일컫는데, 해체주의를
옹호하는 김형효 교수는 여기서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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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님과 이승종 교수님 모두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라 그 두 분 사이의 논쟁을 관심을 가지고 찾아 보았는데, 논쟁이 약간 아쉽더라고요. 특히, 김형효 교수님이 프랑스철학 전공자시다 보니 형식논리학에 너무 약하셔서, 이승종 교수님이 제기한 비판의 논지를 파악하시지 못하셨던 점이요. 오히려 저는 저 이후에 김형효 교수님의 입장을 둘러싼 서강대 김영건 교수님과 이승종 교수님 사이의 논쟁이 더 재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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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건 선생님과 이승종 교수님 사이의 논쟁이라니, 너무너무 흥미진진합니다. 언제 한 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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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님 비판이 담긴 논쟁 문건을 구하게 되어 김형효 교수님과 이승종 교수님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교수님이 김형효 교수는 노장의 텍스트를 의미론이 아니라 통사론적으로 해독해야함을 주장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우리와 같은 방식의 형식화를 시도하고 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의미론은 문자적 해석을 의미하고, 통사론적인 해독은 문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야 한다는 뜻인가요? 제가 김형효 교수님의 반론을 읽어봤을 때는 이교수님이 지적한 모순율과 배중율의 기호논리를 김교수님이 이해하지 못해서 논쟁이 종료된 것으로 읽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분석철학계에서 데리다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리의 비판적 분석에 대해 김형효 교수를 옹호하는 몇 가지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첫

째, 김형효 교수의 인용문을 기호언어로 옮겨 형식화하는 작업을 거부하는 반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김형효 교수는 노장의 텍스트를 의미론이 아니라 통사론적으로 해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우리와 같은 방식의 형식화를 시도하고 있다. 둘째, 김형

효 교수의 해석을 논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부정하는 반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는 사진과 그림의 차이를 부분전체론적 이행성(mereological transitivity)의 준수와 위반으

로 구별해볼 수 있다. 즉 사진의 경우에는 그것이 x의 정확한 재현이고 y가 x의 부분이거

나 세부 사항이라면 그 사진은 또한 y의 정확한 재현이다. 반면 그림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

행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가 다소 거리를 두고 그림을 감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형효 교수의 텍스트는 세계를 개념어, 혹은 반(反)개념어로 그려본 그림으로 보아

야지 정밀한 논리의 메스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사유의 논

리와 문법을 강조하는 김형효 교수의 입장과 어긋난다. 셋째, 우리의 분석에 동원된 형식논

리학의 추론 규칙을 부정하는 반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던 것

처럼 (o ≠ i) & (o = i)와 같은 모순으로부터의 추론을 금하거나 추론 규칙을 달리 정하는

방법 말이다. 그러나 김형효 교수는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나 제언을 하지 않고 있기에

그가 전개하는 적지 않은 부당한 추론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는 부담스런 미결 과제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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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론(syntax)이란 언어의 문법(grammar) 혹은 규칙(rule)에 대한 이론이에요. 가령, "무색의 초록빛 생각들이 맹렬히 잠을 잔다(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라는 촘스키의 유명한 예시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이 문장은 아무 의미도 없는 궤변이지만, 문법적으로는 올바르잖아요. 즉, 의미론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통사론적으로는 적절한 문장인 거죠. 그렇다면 "문장이 문법적으로 적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언어를 성립시키는 규칙에 대한 연구가 통사론인 거고요.

그렇지만 저 논쟁의 맥락에서 "통사론적으로 해독"한다는 말은 노장의 텍스트를 "형식화된 질서에 따라 해독"한다는 정도의 의미일 거예요. 노장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단순히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말은 되는 것 같은데?" 정도의 수준으로 독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 텍스트의 내용을 정확히 어떤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라는 데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죠. 다만, 김형효 교수님도 안/밖이라는 형식적인 구분을 도입해서 노장의 텍스트를 형식화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이승종 교수님은 좀 더 형식논리적으로 그 주장을 따져보자고 하고 있는 거고요.

저는 이 논쟁이 노장이나 데리다에 대한 선호의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김형효 교수님이나 이승종 교수님은 모두 노장과 데리다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고, 그 철학자들에 대해 단행본까지 내셨을 정도니까요. 다만, 그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무엇이 '핵심'이고 그 철학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두 분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봐요. 어쩌면, 두 분의 입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형식논리학을 사용하는 이승종 교수님의 스타일을 저는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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