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철학의 문제들: 르네 데카르트

18. 데카르트는 신 존재증명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형상적(formal) 실재와 표상적(objective) 실재라는 중세의 개념을 활용하고 있는가? (원전인용 필수)

데카르트의 제3성찰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신 존재증명은 우리 안의 신 관념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도출한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형상적’ 실재성과 ‘표상적’ 실재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즉, 그에 따르면, 우리 안에 있는 신의 관념은 표상적 실재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 표상적 실재성은 무로부터 생겨날 수 없다. 따라서 신 관념의 원인이 지닌 형상적 실재성은 신 관념이 지닌 표상적 실재성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 우리가 무한 실체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면 그 관념의 원인은 실제로 무한 실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사용한 ’형상적’ 실재성과 ‘표상적’ 실재성은 본래 중세철학의 개념이다. 우선, 형상적 실재성이란 세계 속에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개별자들이 지닌 실재성이다. 가령, 우리와 무관하게 실존하는 돌, 나무, 해는 형상적 실재성을 갖지만, 실존하지 않는 키마이라는 형상적 실재성을 갖지 않는다. 반면, 표상적 실재성이란 지성 속에 가능적으로 존재하는 대상들이 지닌 실재성이다. 가령, 우리가 떠올리는 돌의 관념, 나무의 관념, 해의 관념, 키마이라의 관념 등은 모두 표상적 실재성을 갖는다.

데카르트는 두 가지 실재성에 두 가지 전제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신 존재증명을 성취하고자 한다. 첫 번째 전제는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라는 인과 공리이고, 두 번째 전제는 “전체 작용 원인 속에는 적어도 그 결과 속에 있는 것만큼의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라는 원리이다. 즉, 우리의 관념 중에는 무한 실체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 관념은 표상적 실재성을 지닌다. 이때, “어떤 것이 관념에 의해 지성 속에 표상적으로 있게 되는 이런 존재 방식이 비록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명백한 무는 아니며, 따라서 무로부터 나올 수는 없다.”(M, 65-66) 따라서 (첫 번째 전제에 의해) 신 관념에는 신 관념의 원인이 있다. 또한, (두 번째 전제에 의해) 신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만큼 신 관념의 원인은 형상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한 실체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관념의 원인이 되는 무한 실체가 실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두 가지 실재성을 통해 신 존재증명을 수행한 이유는 소위 ‘영원 진리 창조’라는 테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사실, 두 가지 실재성에 대한 구분 자체는 이미 중세철학자 수아레즈를 통해 정식화되었다. 그러나 수아레즈는 본질이 표상적 실재성을 지닌 영원한 진리로서 신의 창조 이전에 신의 지성 속에 미리 존재한다고 본 반면, 데카르트는 본질이 신의 의지를 통해 창조된 대상이라고 보았다. 관념이 지닌 표상적 실재성이 관념의 원인이 지닌 형상적 실재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논증은 바로 영원한 진리인 본질조차 신에 의해 창조된 대상이라고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참고

데카르트, 르네., 『성찰/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7. [M]
김은주, 「데카르트 『성찰』의 신 존재 증명과 새로운 관념이론」, 『철학연구』, 제104권, 2014, 6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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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게 되는 스콜라 개념들이군요! 학부 때 형상적 실재성과 표상적 실재성에 대해 굉장히 헷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보니 또 헷갈릴 것 같네요. ㅎㅎ;

윗글에서 한 가지 불명확한 지점이 형상적 실재성의 설명인데요.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오해하실 분도 있을까봐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말씀드려봅니다.

이 단락에서 “개별자들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말씀과 “우리와 무관하게”와 같은 표현이 자칫 형상적 실재성을 시간 공간 내에, 즉 연장을 가지고 존재하는 존재자들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키메라의 관념은 형상적 실재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겠지요. (그뿐 아니라 모든 관념들의 형상적 실재성이 사라지게 되겠네요.)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은 시공간 내지 연장적 실체가 아니라 사유 실체에 의존하지요. 즉 사유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들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념들도 형상적 실재성을 갖습니다. 사유에 의존하긴 하지만 존재하긴 하니까요. 다만 그 형상적 실재성의 수준(?) 혹은 정도가 예컨대, 길가에 있는 돌의 형상적 실재성보다는 낮겠지요. 길가의 돌이 유한실체인데 반해 돌의 관념은 유한실체인 사유실체의 양상이니까요. 하지만 돌의 관념 역시 형상적 실재성을 가지기는 합니다. 형상적 실재성은 존재자가 존재하는 방식의 종류에 따라서 존재자가 갖게 되는 실재성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키메라의 관념 역시 형상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메라는 형상적 실재성을 가지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 키메라의 관념은 사유실체에 의존하므로 돌의 관념이 가지는 형상적 실재성과 놀랍게도 같은 정도의 형상적 실재성을 갖게 되지요.

써놓고 보니 괜한 노파심인 것 같네요. 이곳 선생님들께서 이를 오해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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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형상적 실재성과 표상적 실재성이 한 관념에 동시에 귀속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이 부분은 데카르트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른, 정말 '전문 연구의' 영역인 것 같아요. 다만, 데카르트의 관념 이론에 대한 권위 있는 논문 중 하나인 차펠(V. Chappell)의 "The Theory of Ideas"에는 (이번 학기에 데카르트의 관념 이론에 대한 수업을 듣는데, 담당 교수님께서 이 논문이 데카르트의 관념 이론과 관련된 모든 연구에서 인용되는 텍스트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One property of things that is of special importance to Descartes is reality. This is the property the objective counterpart of which is most often discussed in the Cartesian texts. The causal principle relating objective reality to formal or actual reality is, after all, the crucial premise in Descartes' main argument for the existence of God. Objective reality is always attributed to ideas by Descartes. Since, as we have now seen, it is only objective beings that can be said to have objective properties, the precise subject to which objective reality is ascribed must always be an idea o [idea in the objective sense]. This means not only that it is not the actual sun, as opposed to the sun in my mind, that objective reality belongs to, but also that it is not an idea m [idea in the material sense], the mental act by which I think of the sun. Both the actual sun and my mental acts have formal, not objective, reality, since both have formal or actual being rather than objective being. Descartes sometimes indeed attributes formal reality to ideas. But it is clear that, when he does so, the subjects of attribution are ideas m. There are also a few passages in which it appears that one and the same idea is being said to have both formal and objective reality. In the Third Meditation, for example, Descartes writes: "Such is the nature of this idea [sc. my idea of heat or of a stone], that of itself it requires no other formal reality besides that which it borrows from my thought, of which it is a mode. But for this idea to contain this or that objective reality rather than another, it must certainly get it from some cause in which there is at least as much formal reality as the idea contains of objective reality" (AT VII, 41: HR I, 162-163). A careful reading of this passage, however, reveals that objective reality is not being ascribed to the idea that is said to have formal reality—and which is, ipso facto, an idea m. The idea here is not said to have objective reality—or to be objectiveiy real—but rather to contain it. Nor should the use of this word "contain" be surprising, if indeed the precise subject of objective reality is an idea o for I have already characterized an idea o as the "content" of an idea m. The same point can aiso be made, I believe, for the rest of the passages in question. (V. Chappell, "The Theory of Ideas", Essays on Descartes' Meditations, A. O. Rorty (e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pp. 189-190.)

여기서 차펠이 제시하는

Descartes sometimes indeed attributes formal reality to ideas. But it is clear that, when he does so, the subjects of attribution are ideas m, the mental act by which I think of the sun. .

데카르트는 종종 실제로 형상적 실재성을 관념에 귀속시킨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할 때, 귀속의 주체는 관념 m [질료적 의미에서의 관념], 곧 그것을 통해 내가 태양을 사유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A careful reading of this passage, however, reveals that objective reality is not being ascribed to the idea that is said to have formal reality—and which is, ipso facto, an idea m. The idea here is not said to have objective reality—or to be objectiveiy real—but rather to contain it. Nor should the use of this word "contain" be surprising, if indeed the precise subject of objective reality is an idea o for I have already characterized an idea o as the "content" of an idea m.

그러나 이 구절에 대한 주의 깊은 독해는 표상적 실재성이 형상적 실재성을 가진 것으로 말해지는 관념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결과적으로, 관념 m [질료적 의미에서의 관념]인 것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여기서 관념은 표상적 실재성을 가진다고 말해지지—또는 표상적으로 실재적이라고 말해지지—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포함한다고 말해진다. 내가 이미 관념 o를 관념 m의 "내용"으로 특징지었기 때문에 표상적 실재성의 정확한 주체가 관념 o라면, "포함한다"라는 이 단어의 사용에 대해 놀라서는 안 된다.

이 주장들이 옳다면, 관념이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을 모두 가진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단지 '정신적 활동'이 형상적 실재성을 가질 뿐이고, '관념'은 표상적 실재성을 가진다고 해야 옳을 것 같아요. (차펠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전자는 ideas m이고 후자는 ideas o인데, 지금 문제가 되는 '관념'은 ideas o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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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더 공부하게 됐는데, 제가 공부한 것과 의문점을 다시 남깁니다.

  • 일단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관념의 개념을 애매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채플의 설명은 이러한 관념의 애매함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겠지요.

  • 데카르트는 다만 <성찰의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이러한 애매성을 질료적-표상적 구분을 통해 설명합니다. 아마 채플의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타나는 구분을 근거로 한 것일테지요.

“Idea” can be taken materially, as an operation of the intellect, in which case it cannot be said to be more perfect than me. Alternatively, it can be taken objectively, as the thing represented by that operation; and this thing, even if it is not regarded as existing outside the intellect, can still, in virtue of its essence, be more perfect than myself. (AT VII 8; CSM II 7)

  • 하지만 여기서도 잘 보이듯이 이것은 관념을 질료적으로 취할 때와 표상적으로 취할 때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지 마치 반드시 질료적 관념이 있고 표상적 관념이 따로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관념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 반면에 채플이 '가진다'와 '포함한다'는 것을 구분하고 또한 관념을 질료적 의미와 대상적(objective) 의미로 구분하여 관념의 애매성을 잘 설명하기는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해설이 관념의 애매성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마치 idea m과 idea o가 두 가지 다른 대상인 것처럼 호도한다면 이는 잘못된 해석 같습니다.

  • 이는 현상학에서 noesis-noema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통찰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음의 활동 내지는 작용은 그 마음의 활동이나 작용의 대상과 다른 것이 아닌 것이죠.

  • 그렇다면 "관념이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을 모두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다만 관념을 다룰 때의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 즉, 마음 작용으로서의 관념의 실재성은 그 마음 작용의 원인인 내 마음의 실재성을 넘어설 수 없으나, 마음 작용에 의해 표상된 대상의 실재성은 그 대상 자신의 본질에 의해 내 마음의 실재성의 정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처음 코멘트에서 제가 언급했던 대로, 비록 내 마음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형상적 실재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 존재 증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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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이 형상적 실재성을 지니는지 아닌지 자체는 논쟁거리일 수 있겠으나, 신 존재 증명을 위해 관념이 형상적 실재성을 가질 것이 요구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데카르트가 신 존재 증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에 대응하는 만큼의 형상적 실재성을 지니는 원인의 존재입니다.

[...] 관념이 어떤 특정한 표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다면, 이는 그 관념이 갖고 있는 표상적 실재성과 적어도 동등한(tandumdem) 형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는 원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데카르트, R. (1997). 『성찰/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프로그램에 대한 주석』 (이현복 역). 문예출판사. 1997. p. 65.

즉 표상적으로 실재적인 관념들의 원인이 형상적 실재성을 지니도록 요구되기만 한다면 최고의 형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는 궁극 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결론으로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신 존재 증명이 가능하기 위해 관념 자체가 형상적 실재성을 띠고 있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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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한 제3성찰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의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은 무한 실체의 실재성을 포함한다.
  2. 신의 관념의 형상적 실재성은 유한 실체의 양상의 실재성을 지닌다.
  3. 어떤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은 적어도 그 표상적 실재성과 동등한 형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는 원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인과율)
  4. (무한 실체의 실재성을 포함하는) 신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의 원인은 유한 실체인 사유실체일 수 없다.
  5. 따라서 신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은 무한실체의 형상적 실재성없이는 결과하지 않는다.
  6. 따라서 무한실체 곧 신은 형상적으로 실재한다.
  • 이렇게 이해했을 때 2번 명제가 말하듯 신 관념의 형상적 실재성은 논증에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전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1번, 2번, 3번 명제로부터 4번 명제가 따라나오기 때문입니다.

  • 만약 이러한 과정없이, 즉 관념의 형상적 실재성의 열등함(?)없이 이 관념의 원인의 형상적 실재성을 말하게 된다면 데카르트의 3성찰의 신 증명은 평이한 존재론적 증명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 이것은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의 관심은 신의 개념에서부터 탑-다운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관적 관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존재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주관의 한계, 여기서는 우리 관념이 가지고 있는 형상적 실재성의 열등함을 통해서 그 한계 너머에 있는 객관적 존재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 따라서 처음 제가 주장하였듯 관념의 형상적 실재성은 논증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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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채플은 이 주장에 동의할 것 같아요. 실제로, 이렇게 말하니까요.

But we have also seen that there is no idea m that is not joined to some one idea o by the representative relation, and conversely. So these are not things that are even capable of existing apart from each other. […] Forced to choose among these, we should have to say that an idea m and its associated idea o are only distinct ratione; but this turns out not to be very illuminating. (V. Chappell, "The Theory of Ideas", Essays on Descartes' Meditations , A. O. Rorty (e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p. 193.)

다만, 채플은 말씀하신 점을 인정하면서도 형상적 실재성과 표상적 실재성을 ideas m과 ideas o에 각각 귀속시킨다는 점에서는 handak님과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사실, 저는 이 분야가 전공이 아니라서 데카르트 해석에 대해 정확히 저만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번 한 학기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네요.

  • 그나저나 'Chappell'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업에서도 이 이름이 '샤펠'인지 '차펠'인지 다들 의문스러워 했는데, 인터넷을 찾아 보니 또 '채플'이라는 발음도 나와서 뭐가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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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뒷 내용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 저는 달리 반대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찰의 맥락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만약 그것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관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유활동'이 하나 있고 그 사유활동의 '대상'인 관념이 또 하나 있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위에 말씀드렸던 <서문>에서도 그렇고 여러 <대답>에서 데카르트는 또다른 스콜라의 개념인 질료적/형상적 구분을 언급하며 관념의 애매함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관념의 이러한 애매성을 데카르트가 알고 있었고, 이를 또한 설명할 방도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지요.

아, 그리고 채플이라고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학자로 알고 있고, 미쿡에서는 채플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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