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정치철학 - 진태원 2021

진태원은 「스피노자: 목적론 비판에서 미신에 대한 분석으로」 첫 파트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을 개관한다. 그것을 요약하고 정리한다.

<0> 저자는 기존의 스피노자 이해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①절대자에 대한 지적 직관으로 출발한다. ②범신론적 철학이다. ③정치철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이해되기에, 그의 정치철학을 사상 체계에서 배제해야 한다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윤리학』, 『신학정치론(TTP)』, 『정치론(TP)』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경우, 그러한 편견은 모두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관> 파트에서 두 정치론을 중심으로 스피노자 정치철학을 톺아본다.

<1> 저자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TTP부터 다룬다. 그에 따르면 이 책의 핵심은 다음의 셋이다.

(1) 신학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에 대한 해체: 스피노자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신학 권력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2)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수용 및 변용: 스피노자는 홉스의 사회계약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형한다. 이 변형은 다음의 세 측면으로 구체화된다. ①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 상태에서도 자연권의 논리가 지배함을 의미하기에, 사회 상태 안에서도 여전히 갈등과 폭력 등의 메커니즘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②두 상태 사이의 단절이 부재하기에, 원초적 계약에 관한 논의 또한 없다. 권리/역량의 양도(계약의 성립)는 유용성[역량/권리를 양도해서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큰지 아닌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③원초적 계약에 관한 논의가 없기에, 주권자의 권력/권리 또한 계약 절차를 통해 인공적/규범적으로 획득 불가능한 것이다. 대신 스피노자는 주권자의 권력/권리는 주권자의 역량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주권자가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 그의 명령은 취약해질 것이고, 그보다 강한 힘을 갖춘 자는 자발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히브리 신정에 대한 분석: 스피노자는 국가가 안전하게 보존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탐구하기 위해 실제로 계약을 통해 형성된 국가인 히브리 국가를 분석한다. 분석에 따르면 주권자의 명령에 일치하게 행위할 수 있는 신민들의 충성심과 유덕함, 그리고 명령들을 수행하는 굳건한 태도에 따라 국가의 번영이 좌우된다. 이런 맥락에서 스피노자는 개인들의 사고와 판단, 나아가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국가 안녕의 훌륭한 방책이라고 말한다.

<2> 다음으로 저자는 스피노자 최후의 저작인 TP의 내용을 TTP 핵심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1) 사회계약론에서 정서론으로 이행: 스피노자는 사회계약론이 갖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서를 통해 국가의 토대를 설명하는 식으로 변화한다. TTP에서 전개된 사회계약론이 함축하는갖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초기에 스피노자는 우중/대중과 그것을 이루는 개인의 이성적·정치적 역량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목표로 하는 인민의 지배/다수의 지배라는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들을 규율하는 보충적인 장치인 계약을 이론에 도입했다. 하지만 그는 우중/대중을 통치 대상/복종의 주체로서만 여겼다는 점에서 결코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없다. 또한, 그가 분석한 히브리 국가 또한 제도적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계약론은 문제점이 있다고 보인다.

(2) 정서와 자연권에 대한 새로운 관점: 이러한 맥락에서 스피노자는 국가의 토대를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인간의 공통의 본성/조건)을 통해 설명하는 쪽으로 전회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공통 정서를 갖고 있다. 공통 정서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연합할 수록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될것이라는 정서를 의미한다.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통 정서에 의해 인간은 자연적으로 사회 상태를 욕망하고, 타자와의 매개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설명은 다음의 둘을 함축한다.

첫째, 스피노자는 이성[유용성]을 기반으로 국가 성립을 설명한 TTP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TTP에서는 정서를 부정적인 것(갈등과 폭력 등의 메커니즘을 작용시키는 것)으로 여기고, 우중/대중이 합치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인도에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TP에서는 정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을 뿐더러, 이성이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을 합치하게 해주는 주요 동력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둘째, 스피노자는 TTP에서 자연권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사회 속에는 항상 반사회적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호함은 사회 상태의 형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TP에서는 인간 본성 내에 항상 이미 사회성의 경향이 내재해 있다고 말함으로써, TTP와 달리 국가 형성의 기초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사회 상태의 완전한 해체 또한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진다.

(3) 국가의 토대로서의 다중: 이제 대중은 계약이 아니라 부정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 공통 정서를 매개로 사회 상태를 형성하는 자로 제시된 셈이다. 즉, 대중이 국가의 토대로서 주권자라는 위상을 갖게 된다. 나아가 TP에서 스피노자는 역량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과 자연권에 대한 규정 사이의 연관성을 해명함으로써, 통치권/주권을 대중의 역량에 의해 따른 법/권리로 설명해낸다. <자연 전체의 역량이 신의 역량과 다르지 않고 인간을 포함하는 각각의 자연적 권리가 그가 보유하고 있는 자연적 역량에 따라 규정된다면, 대중들이 한 사회, 한 국가의 통치의 권리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이는 주권을 개인적 주권자의 역량에 의해 규정하는 TTP와 달리 대중이라는 주권자의 역량을 통해 제시하는 셈이고, 이러한 개념 규정이 『윤리학』에서 전개되는 '역량 존재론'과 합치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진태원은 「스피노자: 목적론 비판에서 미신에 대한 분석으로」 파트 2부터 6에 걸쳐 상상의 문제를 통해 스피노자 철학을 설명한다. 그것을 요약하고 정리한다.

<0> 저자는 상상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스피노자 철학을 설명한다. 전통적인 접근법들은 스피노자의 상상 개념을 무시한 채 그 철학을 규명해왔다. 하지만 그가 이성의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그것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욕망을 기반으로 하는 상상 이론이 그 비판의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 상상 이론은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그런데 상상 이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성을 비판한다는 것인가?

<1>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스피노자가 비판하는 이성적 인간이 만들어낸 목적론을 설명하고 비판한다.

(1) 목적론의 의미: 스피노자는 인간이 세 가지 상상적 투사(자유의 가상의 투사, 목적론적 가상의 투사, 기질의 투사)를 행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투사들은 사실 편견이고, 이 편견들은 공통적으로 목적론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다. 스피노자가 이해하는 목적론을 잘 보여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모든 자연 실재들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으로 인해 행위한다고 공통적으로 가정하며, 신 자신이 어떤 일정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인도한다고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자신을 숭배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①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관성에 따라 운동하는 자연 실재에도 자신 고유의 목적 지향적인 행위 방식을 투사한다. 그 결과, 자연 전체를 목적론적 관점에 따라 계획한 초월적 존재자를 가정하게 된다. ②나아가 이 신 존재 또한 목적론적으로 행위한다는 점에서 다음 또한 가정된다. 즉, 신은 인간으로부터 숭배받기 위해 인간을 위해 자연 만물을 창조했고, 또 인간에게 그것들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2) 목적론 비판: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러한 목적론이 가상이라고 비판한다. 목적론을 받아들일 경우, 왜 무한한 신이 불완전한 인간의 숭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따위의 물음에 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목적론을 비판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의 특징을 분석한다. 스피노자가 지적하는 두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인간은 실재의 원인에 대해 모르고 태어나기에 본유 관념 따위는 없다.1) * ** ②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욕구를 의식한다.*** 곧, 인간은 어떤 욕구를 갖고 태어나고 인식하나, 그 욕구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괴리 때문에 목적론이라는 가상에 사로잡힌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첫째, 인간은 욕구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자연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동시에 욕구 충족을 위한 노력은 모두 주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고, 욕구 충족의 결과물만을 인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추동하는 욕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인과 관계로부터 독립해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둘째, 이렇게 무지의 상태에 놓인 인간의 유일한 관심사는 욕구 충족이기에, 이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모두 유익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만들지 않은 것들이 자신 욕구 충족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들을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에게 특별한 호의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2)

<2> 저자는 인간 특징을 근거로 한 목적론 비판을 바탕으로, 목적론이 갖는 인간학적·정치적 문제에 대한 스피노자의 견해를 설명한다.

(1) 인간학적·정치적 문제의 원인 - 목적론적 미신: 스피노자에 따르면 목적론적 편견은 의례들로 제도화되어 미신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제도화된 미신은 각 개인들이 아니라 한 민족 전체 또는 대중들 일반의 목적론적 가상을 정착시키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더해,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신의 총애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에 목적론(미신)에 자발적으로 예속하게 되고, 동시에 미신은 예속을 강화한다. 이 때문에 미신은 지배의 좋은 도구가 되고, 전제정치의 온상이 된다. 그렇지만 스피노자는 미신만으로는 전제정치의 지배가 해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개인들이 각자 다양한 기질과 견해를 갖는다는 점, 우중에 특유한 불안정성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하나의 의견을 따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지배와 예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신을 보완해줄 수 있는 규율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이 밝혀진다.

(2) 인간학적·정치적 문제가 남긴 과제 - 교정: 목적론적 편견과 미신은 본성적이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편견과 미신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그것을 변형하고 개조하는 것이 윤리적·정치적 실천의 목표가 된다. 하지만 이때 교정적인 실천은 실재에 대한 참된 인식이 아니라, 한 욕구와 관계된 정서와 상반되고 더 강한 어떤 정서(와 관계된 욕구 실천)에 의한 제어 및 제거를 의미한다.****


  1. 스피노자에게 있어 인간은 변용된 신체의 변용에 대한 관념을 통해서만 인간 신체와 정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체의 변용은 신체의 적성(적합성)의 정도에 좌우된다. 그렇기에 탄생의 시점에 가까울수록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은 취약하고, 인간은 실재의 원인에 대해 모르고서 태어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2. 신이 인간처럼 자신 의지에 따라 자연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유의 가상의 투사'를 한다. 신이 인간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목적론적 가상의 투사'를 한다. 신이 인간처럼 타자의 존경과 숭배 등을 받기 위해 행동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기질의 투사'를 한다.


출처: 진태원 2021, pp. 138-181.


보론

*The human mind is capable of perceiving a great many things, and this capacity will vary in proportion to the variety of states which its body can assume. (E2 P19)

**The human mind has no knowledge of the body, nor does it know it to exist, except through ideas of the affections by which the body is affected. (E2 P24)

***The mind, both in so far as it has clear and distinct ideas, and also in so far as it has confused ideas, endeavours to persist in its being for an indefinite period, and of this endeavour it is conscious.

Proof.—The essence of the mind is constituted by adequate and inadequate ideas, therefore, both in so far as it possesses the former, and in so far as it possesses the latter, it endeavours to persist in its own being, and that for an indefinite time. Now as the mind is necessarily conscious of itself through the ideas of the modifications of the body, the mind is therefore conscious of its own endeavour. (E3 P9)

****when we gaze at the sun, we see it as some two hundred feet distant from us. The error does not consist in simply seeing the sun in this way but in the fact that while we do so we are not aware of the true distance and the cause of our seeing it so. For although we may later become aware that the sun is more than six hundred times the diameter of the earth distant from us, we shall nevertheless continue to see it as close at hand. For it is not our ignorance of its true distance that causes us to see the sun to be so near; it is that the affection of our body involves the essence of the sun only to the extent that the body is affected by it. (E2 P35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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