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마 모랄리아의 번역은 어떤가요?

<계몽의 변증법> 읽기, 상처로 숨쉬는 법을 읽고 아도르노에게 관심이 생겨 찾아보는 중입니다. 계몽의 변증법의 번역을 두고 말이 많은데, 미니마 모랄리아의 번역상태는 어떤지 알고싶습니다. 썩 훌륭한 편이 아니라면 영역본으로 읽을 계획인데, 만약 그렇다면 영역본의 역자도 추천해주시면 ㅎㅎ 감사하겠습니다.

<미니마 모랄리아>의 국역본은 둘 인데, 둘 다 원본을 대조하지 않고 읽어서는 안 되는 수준의 번역입니다. 영역본은 1974년에 출간되었으며 E. F. N. Jephcott이 번역한 공식 번역본과 2005년에 공개되었으며 Dennis Redmond이 번역한 비공식 번역본이 있습니다. 후자는 웹검색을 통해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Dennis Redmond는 E. F. N. Jephcott의 번역은 훌륭하지만 'stylistically somewhat dated'하다고 평가합니다. 김유동 국역본을 두 영역본과 대조해가며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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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답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ㅎㅎ

『미니마 모랄리아』는 굉장히 어려운 책입니다. 아도르노가 문학적인 에세이 스타일로 써서 그의 다른 책에 비해 편히 읽힐 법도 한데, 어떤 면에선 그의 철학 텍스트보다 의미 파악이 더 어렵습니다. 문장이 무지막지하게 길고, 뉘상스가 풍부해서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어 번역본은 내용 파악을 위해 참고하는 정도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문과 두 번역본을 서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문: Minima Moralia(1951), pp. 480-481, '마지막으로'(Zum Ende) 중에서

Perspektiven müßten hergestellt werden, in denen die Welt ähnlich sich versetzt, verfremdet, ihre Risse und Schrunde offenbart, wie sie einmal als bedürftig und entstellt im Messianischen Lichte daliegen wird. Ohne Willkür und Gewalt, ganz aus der Fühlung mit den Gegenständen heraus solche Perspektiven zu gewinnen, darauf allein kommt es dem Denken an. Es ist das Allereinfachste, weil der Zustand unabweisbar nach solcher Erkenntnis ruft, ja weil die vollendete Negativität, einmal ganz ins Auge gefaßt, zur Spiegelschrift ihres Gegenteils zusammenschießt. Aber es ist auch das ganz Unmögliche, weil es einen Standort voraussetzt, der dem Bannkreis des Daseins, wäre es auch nur um ein Winziges, entrückt ist, während doch jede mögliche Erkenntnis nicht bloß dem was ist erst abgetrotzt werden muß, um verbindlich zu geraten, sondern eben darum selber auch mit der gleichen Entstelltheit und Bedürftigkeit geschlagen ist, der sie zu entrinnen vorhat.

  1. 『한줌의 도덕』(1995), 최문규 옮김, 솔출판사, 348쪽

세계가 서로 유사하게 전이되고, 이화되고, 그 틈과 균열을 드러나게 - 언젠가 메시아적인 빛 속에서 세계가 궁핍하고도 왜곡된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모습처럼 - 해주는 관점이 생산되어야 한다. 그 어떤 자의성이나 폭력 없이, 대상과의 접촉에서 그러한 관점을 얻어내는 것, 사유에는 바로 이러한 행위가 중요하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태가 너무나 명백하게 그러한 인식을 부르기 때문이며, 또한 한번 포착된 완전한 부정성은 그 정반대의 왼손 글씨와 맞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그것이 현존의 세력권 - 그 세력권이 아주 작을지라도 - 에서 벗어난 관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속력을 얻기 위해서 모든 인식은 존재하는 것에서 얻어져야만 하며, 바로 그 때문에 인식은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궁핍과 왜곡에 의해 패배되기도 한다.

  1. 『미니마 모랄리아』(2005), 김유동 옮김, 도서출판 길, 325-326쪽

언젠가 메시아의 빛 속에서 드러날 세상은 궁핍하고 왜곡된 모습일 수밖에 없다면, 그러한 메시아의 관점처럼 세상의 틈과 균열을 까발려 그 왜곡되고 낯설어진 모습을 들추어내는 관점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자의나 폭력도 없이, 오직 전적으로 대상과의 교감으로부터만 나오는 그런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 사유의 유일한 관심사이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인데 그 이유는 현상황이 절대적으로 그러한 인식을 요청하기 때문이며, 또한 일단 시야에 포착된 완전한 부정성은 거울 속이 뒤집힌 상을 그려내듯 그 반대되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존하는 세계로부터 쥐어짜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이유로 그 자신이 먼저 자신이 빠져나오려 했던 왜곡과 궁핍에 가격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유동 번역본의 문제점은 (번역의 정확성도 문제 있지만) "까발려", "쥐어짜내져야" 같이 조야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글의 의미를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책뿐 아니라 김유동 번역의 『계몽의 변증법』도 추천하지 않습니다(다른 국역본이 없어서 이 책을 봐야 한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죠).

  1. 참고로 이건 제가 번역한 겁니다.

세계가 뒤바뀌고, 낯설고, 세계의 균열과 틈이 드러나는 관점, 즉 세계가 언젠가 궁핍하고 일그러져서 메시아의 빛 속에 놓이게 될 것과 유사한 관점이 형성되어야 한다. 자의와 폭력 없이 온전하게 대상들과 접촉함으로써 그러한 관점을 얻는 것만이 사유에 중요하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한데, 왜냐하면 그 상태가 필연적으로 그러한 인식을 부르기 때문이고, 더욱이 한번 눈에 들어온 완전한 부정성이 그것과 반대되는 거울 문자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전적으로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현존하는 것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위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든 가능한 인식은 구속력을 갖기 위해 현존하는 것에 반항해서 얻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인식 역시 자신이 벗어나고자 하는 그러한 왜곡과 궁핍에 빠져든다.

아무쪼록 아도르노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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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네요 독일어화자로 태어나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ㅠㅠ 조언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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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독일의 국민철학서라고 해서 나름 쉬울거라 생각한 제가 오만했네요 ㅠㅠ 덕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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