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 Merleau-Ponty vivant
1.1. 본문: 번역문
[아직도] 살아있는듯 한 메를로-퐁티[를 추도하며] ^(1)
나는 아직 생존해있는 친구들 가운데 수많은 이들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 탓이었고 나 자신의 탓일 때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우리[의 관계]를 만들었고, 우리를 함께하도록 했으며, 우리를 갈라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메를로-퐁티가 자신을 괴롭혔고 그를 떠나간 사람들에 관해 말을 할 때 정확히 [내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결코 잃은 적이 없으며, 나 [역시] 그를 잃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의 죽음[만]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동등했고 친구였지만 결코 동류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곧바로 알아차렸고, 서로 간 다른 점들은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경에 이르러 [세계를 감싼 정치적 긴장의] 압력이 해소되면서 유럽과 전세계에 불던 순풍은 우리에게 돌픙이 되어 [세차게] 우리의 머리를 뒤흔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정반대 방향의 양극으로 각각 던져놓았습니다.^(2) 우리 사이의 유대는 자주 긴장관계에 놓였지만 결코 끊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가 큰 행운을 누렸고, 또한 각자의 노력이 함께 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진실하게 남고자 했었고, [노력한 결과] 우리는 거의 성공할 뻔했습니다.메를로-퐁티[의 존재]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에 관해 [자세히]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지나칠 정도로 아직도 생생합니다./ 만약 내가 우리 사이에 [일어났을 법했던] 결코 일어난 적 없는 격렬한 논쟁들과 [실제로 있었던] 우리의 우정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ㅡ아마도 내 생각에는ㅡ그는 보다 더 [생생하게] 잘 묘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자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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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철학자들의 우정에 관하여: 사르트르의 메를로-퐁티 추도사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평생에 걸쳐 깊은 우정을 쌓은 관계로 유명한 철학자들입니다. 두 철학자 사이에 공통점이라고는 철학함philosophizing에 관한 뛰어난 재능과 열정뿐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둘은 성장 및 출신배경, 사상적 경향, 학자로서의 경력과 지향점 모든 면에 걸쳐서 정반대를 달렸습니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우정은 1953년 메를로-퐁티가 <현대Les temps modernes>지 편집장직을 사임하면서 사실상 깨지게 됩니다. 이전까지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의견을 자주 주고받던 둘은 이후 글을 주고받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 관계로 치닫게 됩니다. 둘은 <현대>지를 장으로 삼아 한국전을 둘러싸고 공산주의-사회주의 대 서구 자본주의-자유주의의 대결과 전쟁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을 주고받던 중에 사이가 벌어져 결별을 하게 됩니다. 사상적, 정치적 신념의 차이뿐만 아니라 <현대>지에 투고된 글들 가운데 게재될 글을 선택하고 출판하는데 있어 문제적인 처신을 서로 간 보이며 대립의 골이 깊어진게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정치, 종교 이야기를 잘못하면 친구를 잃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삼가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귀담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1961년 5월 3일 메를로-퐁티는 53세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1953년 결별ㅡ사실상 절교ㅡ이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두 철학자 사이에 교류는 거의 없었고 양자의 관계는 마냥 얼어붙은 채 멈춰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르트르 이외에 누구도 메를로-퐁티의 추도사를 대신 도맡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글을 의뢰했고 사르트르는 이에 기꺼이 응합니다. 그리고 그가 쓴 추도사 Merleau-Ponty vivant은 <현대>지 1961년 10월호에 실려 발표됩니다.
Merleau-Ponty vivant은 이와 같은 배경 아래에 쓰인 글입니다. 100여쪽에 이르는 지면에 걸쳐 사르트르는 서로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떻게 결별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둘의 우정과 결별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합니다.사르트르의 글쓰기론과 문체에 관한 주장을 미루어볼 때, 내용과 별개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운 글이기도 합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a littérature?』 (1946)에서 참여문학론을 말하며 글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산문을 모범으로 삼아 써야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는데, 정작 Merelau-Ponty vivant에서는 감상적인 면모가 한껏 드러나기 떄문이지요. 아마 사르트르 본인이 세운 원칙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엇나가는 몇 안 되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르트르가 쓴 이 글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를 뽑는다면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등했고 친구였지만 결코 동류는 아니었습니다. Nous étions des égaux, des amis, non pas des semblables" (Sartre, 1964: 189).
메를로-퐁티와 평생에 걸친 우정 관계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유명한 문구로 둘의 관계를 다룬 연구서나 논문에서 빈번히 인용되고는 하는 구절입니다.
죽은 철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철학자 본인의 자필 수기이기도 하고, 글을 여는 첫 문단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미숙한 번역으로나마 여러분과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오역 또는 더 나은 번역ㅡ특히 가독성ㅡ을 위한 제안이 있다면 비판과 제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2_프랑스어 원문
프랑스어語 원문
Merleau-Ponty vivant
Que d'amis j'ai perdus qui vivent encore. Ce ne fut la faute de'personne : c'étaient eux, c'était moi; l'événement nous avait faits et rapprochés, il nous a séparés. Et Merleau-Ponty, je le sais, ne disait pas autre chose quand il lui arrivait de penser aux gens qui hantèrent et quittèrent sa vie. II ne m'a jamais perdu pourtant, il a fallu qu'il meure pour que je le perde. Nous étions des égaux, des amis, non pas des semblables: nous l'avions compris tout de suite et nos différends, d'abord, nous amusèrent; et puis, aux environs de 1950, le baromètre tomba : bonne brise sur l'Europe et sur le monde; nous deux, la houle nous cognait crâne contre crâne et, l'instant d'après, jetait chacun de nous aux antipodes de l'autre. Nous ne rompîmes jamais des liens si souvent tendus: si l'on demande pourquoi, je dirai que nous eûmes beaucoup de chance et, quelquefois, du mérite. Nous essayâmes chacun de. rester fidèle à soi et à l'autre, nous y réussîmes à peu près. Merleau est encore trop vif pour qu'on puisse le peindre, il se laissera mieux approcher – à mon insu peut-être - si je raconte cette brouille qui n'a pas eu lieu, notre amitié. <189>
번역대본: Sartre, Jean Paul. (1964). "Merleau-Ponty", in: Situations IV, Paris: Gallimard , pp. 189-288
문헌 출판이력
Sartre, Jean Paul. (1961). "Merleau-Ponty vivant" in: Les Temps Modernes No. 184
Sartre, Jean Paul. (1964). "Merleau-Ponty", in: Situations IV, Paris: Gallimard , pp. 189-288
3_Endnotes
미주
(1) 역주: 사르트르가 1961년 발표한 메를로-퐁티 추도사 원제는 "Merelau-Ponty vivant " 입니다. 이후 출간된 사르트르의 비평집 『상황들』 IV권(1964)에는 "Merleau-Ponty"라는 제목으로 수정되어 실리게 됩니다. 원제 첫 제목부터 한국어 화자의 정서에 알맞게 번역하기 대단히 까다롭게 다가오는 구절입니다. 영문과 한국어로 각각 직역한다면 "Living Merleau-Ponty", "살아있는듯 한 메를로-퐁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역주: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을 기점으로 세계 대전이 마무리되고, 프랑스 내부적으로는 제 4공화국이 성립(1946)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유럽과 세계 정세가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적인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무렵을 뜻합니다. 이 시기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Les Temps modernes지 창간 떄부터 각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며 첨예한 논쟁을 벌였고, 1950년 한국전쟁에 관한 논평을 주고받던 때를 기점으로 사이가 벌어져 완전히 결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