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의 푸코 개념 원용에 대해서 질문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아감벤의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문서고와 증인』(정문영 역, 새물결)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만, 여전히 4장이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초회독 때는 3장, 4장이 둘 다 이해가 안 되었으니, 조금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위안해봅니다...)

특히 4장 2절에서 6절까지 푸코의 개념을 원용하는 부분이 도무지 감이 안 오는데요.

조금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그것[언표화]은 순수 현존, 즉 어떤 존재자(즉 언어)가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여러 학문과 수많은 지식의 체계가 문장들, 유의미한 명제들, 얼마간 잘 구성된 담화들을 언어 내부에서 정의한다고 하면 고고학은 이 명제들과 담화들의 순수한 발생을, 즉 언어의 외부를, 그것이 존재한다는 투박한 사실을 다룬다고 천명한다.
푸코의 고고학은 이런 식으로 '언표화의 의미론 위에 정초된 메타의미론'을 목표로 하는 벤베니스트의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다. (언표화의 의미론에 힘입어) 언표들의 영역과 명제들의 영역을 구별한 후 푸코는 지식들과 분과학문들을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다시 말해 실정적 담론들의 장을 '메타 의미론'(고고학)을 통해 재발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외부에 도달한다.
(...)푸코 탐구의 생산성은 언어의 발생을 '나', 초월적 의식, 나아가 신화적이기는 매한가지인 심신적인 자아를 통해 파악하는 현대 문화의 지배적 전통을 거부하면서 주체, '나', 의식과 같은 것이 어떻게 언표와 일치할 수 있는가, 어떻게 언어의 순수한 발생과 일치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데서 나온다.(pp. 206-207)

거칠게 요약하자면,

  1. 언표화의 의미론: 언표화=존재자(언어)가 생겨난다는 사실=언어의 외부가 존재한다는 사실
  2. 언어의 "외부"를 탐구하는 학문=메타 의미론=고고학
  3. 이때 문제가 되는 것: 생성되는, 외부에 존재하는 언표와 어떻게 "주제, 나, 의식" 따위가 일치할 수 있는가?

*이때 3.의 문제는 "이슬람교도"와 "증인(레비 등)"의 일치가 가능함을 보이는, 즉 증언할 수 없는 자야 말로 진정한 증인이라는 이 책의 주제와 연결된 것.

이라고 일단 정리했는데요.

질문의 형태로 문장을 만들지도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이상의 요약과 *이하의 내용에 대해 혹시 확인해주실 수 있으시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본문과 관계 없이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읽기 전에, 혹은 읽으면서 참고할만한 텍스트를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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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은지 오래되었고, 지금 당장 해당 부분을 직접 꼼꼼하게 확인해서 설명드리긴 어렵지만,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외부'에 대한 탐구라는 건 일종의 '감추고 싶은 진실'에 대한 탐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가령,

기독교인: 우리 주님께서 가난한 자, 슬픈 자, 온유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들에게 악한 일을 당하더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선으로 그들을 이깁시다.

라는 건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언어 '내부'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식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는 도덕적 기반으로부터 개별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이죠. 반면,

니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대ㅋㅋㅋ 그거 다 개뻥임. 니네가 돈도 쥐뿔도 없고, 힘도 없고, 쫄보라서, 힘 있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거잖어. 그러면서도 지네들이 찐따인 거 어떻게든 합리화해보려고 하네ㅋㅋㅋ ㄹㅇ찐따 쉨들ㅋㅋㅋ 개빡치쥬? 힘 있는 놈들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쥬?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나치게 니체를 희화화하긴 했지만, 여하튼 이런 탐구가 바로 기독교의 언어 '외부'에 대한 탐구입니다. ('찐따 쉨'을 '노예'로 대체하고, '개빡치쥬'를 '르상티망'으로 대체하면 니체의 언어가 되죠.) 기독교인이 기독교인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식 뒤편에, 숨겨진 욕망이나 이해관계나 권력관계 등이 있다고 가정하고서, 기독교인이 '감추고 싶은 진실'을 폭로하는 탐구인 거죠.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은 바로 니체의 이런 철학 방법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푸코는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전통적 도덕에 대해 수행한 비판을 감옥, 정신병, 성 등의 주제에 적용시키는 거죠. 그런 주제들을 다루는 우리의 기성 담론이 어떠한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파헤치면서요.

그러니까, 은폐된 욕망과 권력 관계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합리화하는지에 대한 탐구가 '언어의 외부'에 대한 탐구, '메타 의미론', '고고학'인 거예요. 바로 이 점 때문에 언어의 발생에 대한 탐구는 '주체', '나', '의식'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고요. '나'라는 건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언어 속에서 형성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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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아감벤이 어렵게 써놨네요.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나오는 고고학 관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프레데릭 그로 2022, 61-62)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푸코는 "질서의 공간"을 규정하려는 시도에 관해서 언급한다. 고고학이란 지식의 기저에서 그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 또는 그 지식의 구성을 명령하는 은밀한 잎맥[토대]을 산출하려는 기획이다. 다시 말해 지식의 구성에 대해 알려주는 지식의 어떠한 요소 - 물의 "원소"와 같은 뜻에서 - 가 존재한다. 그것은 지식의 대상에게는 규정된 존재 양식을, 지식의 주체에게는 정확한 위치의 양식을, 개념에는 질서 정연한 분배 양식을 부여한다. 대상, 주체, 개념을 구성하는 이들 규칙의 체계성이 바로 푸코가 "에피스테메"라고 부르는 것이고, 고고학은 이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지식의 이러한 원초적 토대는 무엇보다도 역사적이다.

  1. 푸코 철학을 주제별( Societies and Knowledges/ Method/ Ethics/ Politics)로 분류할 경우, <지식의 고고학>은 첫째에 속하며 그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저작은 <말과 사물>, <임상의학의 탄생>, <정신의학 권력>, <광기의 역사>, <정신병과 심리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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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감사합니다.

테크니컬한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니체에서부터 짚어주시니 모름에서 이해쪽으로 반발짝 정도 이동한듯한 느낌입니다.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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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감사합니다.

푸코와 아감벤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굽어있고 먼길인가보군요.

푸코 작업물에 대한 정리도 감사드립니다. 독서목록은 늘어가기만하고 줄어들진 않는군요.

거듭거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