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주석: 실재와 부정」, 『논리의 학』, 제1권

Hegel, G. W. F. (1986). Wissenschaft der Logik I (E. Moldenhauer & K. M. Michel, Eds.; Vol. 5). Suhrkamp. 119-122.

실재는 다의적인 단어인 듯 보이는데, 이 단어는 상이하고 실로 대립적이기까지 한 규정들에 관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철학적 의미에서 순전히 경험적인 실재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무가치한 현존재로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들[Gedanken], 개념들, 이론들에 관해 이들이 실재성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실성이 이들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라는 이념은 즉자적으로 혹은 개념 속에서는 참일 수 있다. 여기서 이념의 가치는 이념에 대해 부인되지 않고 이념은 실재성과 나란히 놔두어진다. 그러나 실질적인 것은 이른바 순전한 이념, 순전한 개념에 반해 홀로 참된 것으로서 통용된다.─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미 속에서 내용의 진리에 대한 결정이 외적 현존재에 귀속되지만, 이 의미는 그만큼 일면적이다. 이념, 본질 속은 내적 감각이 외적 현존재에 대해 무관한 것으로 표상되고 그것이 실재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우수한 것으로 간주된다면 말이다.

“실재”라는 표현에서는 그 밖의 형이상학적 신 개념이 언급되어야 하는데, 이 개념은 무엇보다 신의 현존재에 대한 이른바 존재론적 증명의 근저에 놓여 있다. 신은 모든 실재들의 총괄로 규정되었으며, 이 총괄에 관해서는 그것이 자기 내 어떤 모순도 함유하지 않으며, 실재 중 어떤 것도 다른 것을 지양하지 않는다고 말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실재는 어떤 부정도 함유하지 않는 하나의 완전성, 하나의 긍정적인 것으로서만 취해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재들은 대립되지 않고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재 개념에는, 모든 부정을 없는 셈 치더라도 실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실재의 모든 규정성이 지양된다. 실재는 질, 현존재이다. 그러므로 실재는 부정적인 것의 계기이며 오직 이로써만 실재인 규정태이다. 이른바 탁월한 의미에서 혹은 취급되는 바대로 무한한 실재로서─낱말의 일상적인 의미에서─실재는 규정 없는 것으로 확장되며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신의 선[善]은 일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탁월한 의미에서 선이며, 의로움[Gerechtigkeit]과 상이한 것이 아니라 의로움을 통해 (매개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표현으로) 조율[temperiert]1)되어야 하며 의로움 역시 선을 통해 조율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며 의로움도 더 이상 의로움이 아니다. 위력은 지혜를 통해 조율되어야 하지만, 위력은 이 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위력이 아닌데, 왜냐하면 위력은 지혜에 복속될 터이기 때문이다─지혜는 위력으로 확장될 터이지만, 이 점에서 지혜는 목적과 도량을 규정하는 지혜로서 소멸한다. 무한자와 그 절대적 통일에 대한 참된 개념은 나중에 출현할 텐데, 이 개념은 조율함, 상호 제한 혹은 뒤섞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무규정적인 안개 속에 고수되는 피상적 관계가 그런 것으로 존재하는데, 이 관계로는 오직 무개념적 표상만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규정적 질로서의 신에 대한 저 정의 속에서 취해진 대로의 실재는 그 규정성 너머로 이끌렸을 때 실재이기를 중단한다. 그것은 추상적 존재로 된다. 모든 실재적인 것 가운데 순수하게 실재적인 것으로서 혹은 모든 실재들의 총괄로서 신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인 공허한 절대자와 동일한 규정 없는 것이자 내실 없는 것이다.

반면 실재가 그 규정성 속에서 취해진다면, 실재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것의 계기를 함유하는 까닭에 모든 실재의 총괄은 마찬가지로 모든 부정의 총괄, 모든 모순들의 총괄, 그 안에 모든 규정적인 것들이 흡수되어 있는 최초의 절대적 위력과 같은 것이 된다. 그러나 실재 자신은 오직 아직 자기에 의해 지양되지 않은 것을 자기 맞은편에 갖는 한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실행된 제한 없는 위력으로 확장되어 생각됨으로써 실재는 추상적 무가 된다. 모든 실재적인 것 속의 저 실재적인 것, 신 개념을 표현해야 할 터인 모든 현존재 속의 존재는 무와 동일한 추상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규정성은 긍정적으로 정립된 부정이다,─이는 모든 규정이 부정이라는[Omnis determinatio est negatio] 스피노자의 명제이다. 이 명제는 무한한 중요성을 띤다. 있는 그대로의 부정만이 형식[형상] 없는 추상이다. 그러나 사변 철학에게, 부정 혹은 무가 이 철학에서 최종적인 것이라는 죄를 물어서는 안 된다. 사변 철학에게 이 부정 혹은 무는 실재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아니다.

스피노자의 실체의 통일이라는 점─혹은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점은 규정성이 부정이라는 이 명제로부터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사유와 존재 혹은 연장, 즉 스피노자가 제시하는 두 가지 규정을 그는 이러한 통일 속에서 하나로 정립했다. 왜냐하면 규정적 실재들로서 이 두 규정들은 부정들로, 그 부정의 무한성이 이들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후에 다루어질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어떤 것의 무한성은 그 긍정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두 규정을 속성들로, 즉 특수한 존속, 즉자대자존재를 갖지 않고 오직 지양된 것으로, 계기로만 존재하는 그러한 것들로 파악했다. 혹은 오히려, 실체는 자기 자신 내에서 완전히 규정 없는 것인 까닭에 두 규정은 스피노자에게 계기들조차 아니며, 속성들은 양태들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지성이 행하는 구별들이다.─마찬가지로 개체들[Individuen]의 실체성은 저 명제에 반해 존속하지 않는다. 개체는 다른 모든 것들에 한계를 정립함으로써 자기 관계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이 한계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 타자 관계들이기도 하며, 개체는 그 현존재를 자기 자신 내에 갖지 않는다. 물론 개체는 한낱 모든 측면들에 의해 제한된 것 이상[mehr]이기는 하지만, 이 이상은 개념이라는 다른 영역에 속한다. 존재의 형이상학에서 개체는 단적으로 규정적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유한자가 즉자대자적이라는 그러한 말에 반해 규정성은 자기를 본질적으로 부정으로서 타당한 것으로 만들며 유한자를 지성의 동일한 부정적 운동으로 끌어당기는바, 이 부정적 운동은 모든 것을 추상적 통일인 실체 속에서 소멸토록 한다.

부정은 직접적으로 실재에 맞서 있다. 나아가 반성된 규정들의 본래 영역에서 부정은 부정을 바탕으로 반성하는 실재인 긍정적인 것에 대립되는데,─이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 가현하는 그러한 실재인데, 부정적인 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 속에서는 아직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질은, 하나의 외적인 관계 속에서 내재적 규정으로 드러날 때의 고려 속에서야 비로소 특성이다. 예컨대 약초의 특성과 같은 특성들은 어떤 것에 단적으로 고유한 규정들뿐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어떤 것이 다른 규정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고유한 방식으로 보존하는 한에서 자기 내에 정립된 낯선 작용들을 자기 내에 놓아두지 않고 자기 고유의 규정들을 타자 속에서─비록 타자가 이것을 자기로부터 멀리하더라도─유효하게 만드는 규정들을 뜻한다. 반면 더 정적인 규정성들, 예컨대 형태, 형체는 변화하는 것으로서 존재와 동일하게 표상되지 않는 한에서 특성으로도 질로도 칭하지 않는다.

깊지만 탁한 깊이로 개진되는 철학인 야코프 뵈메의 표현인 질화[Qualierung] 혹은 비[非]질화[Inqualierung]는 (시고 떫고 매운 등의) 질의 자기 자신 내 운동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운동이 그 부정적 본성 속에서 (그 고뇌[Qual] 속에서) 타자로부터 자기를 정립하고 확정하는 한에서,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서의 동요[Unruhe]인 한에서이다. 이 동요에 따라 운동은 투쟁 속에서 자기를 산출하고 보존한다.2)


1)“temperieren”은 라이프니츠가 아니라 볼프의 표현이다. 볼프는 신의 선과 의로움을 상호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Wolff, Ch., Theologia naturalis, §§1067; 1070. Hegel, G. W. F. (1990). Lectures on the History of Philosophy: The Lectures of 1825-1826 (R. F. Brown & J. M. Stewart, Tran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204. 318번 각주.
2)“Qualierung”과 “Inqualierung”은 뵈메의 원 저술에서는 선과 악, 성자(聖子)의 길과 루시퍼의 길 사이에서 후자를 거부하고 전자에 따라 행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뵈메에게 질(Qualität)이란 두 길 사이의 고뇌와 긴장을 함축하고 있는 운동이며, 이 점에서 헤겔은 뵈메로부터 질의 운동성을 읽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uratori, C. (2015). The First German Philosopher: The Mysticism of Jakob Böhme as Interpreted by Hegel. Springer. p. 2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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