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생물학이다」을 읽다 문득 든 생각

진화를 윤리학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비전문가들에게 종종 공리주의, 홉스식 인간관 등의 특정 철학적 결론을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즉, 진화와 윤리학을 버무리려는 시도가 인간종의 복리 증진을 그 결론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이며 몇가지 단어적 모호성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위와 같은 오해를 하게되는 배경엔 진화 윤리학이 유전자의 이기성, 혹은 포괄적합도 이론 및 호혜성 이타주의를 그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이 있다. 종종 사람들은 위 단어들을 과대 해석하여 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곧바로 홉스식 인간관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한 개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이기적이라면 그 개체는 이기적일 것이 자명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로 이는 몇가지 전제와 합의가 이루어질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유전자 단위에서 적용되는 이기성은 일상적 의미에서의 ‘이기성‘과 동일한가? 필자는 유전자 단위에서 사용되는 이기성이 유비적 의미에서 ‘이기성’일 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같는‘의 일상적 의미와는 완전한 동치관계라 볼 수 없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유전자가 관심을 같는다‘ 따위의 문장을 구사하지는 않기 땨문이다. 그렇다면 유전자의 이기성 등이 홉스식 인간관을 상정하기 위해선 일상적 ’이기성‘이라는 단어가 위 ’이기성‘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윤리학과 진화론의 결합은 곧바로 특정 인간관을 함축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의 철학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포괄적합도 이론은 도덕성의 본질을 이야기해주는가? 포괄적합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적으로 동질적인 개체를 많이 남길 수 있는 방향으로, 즉 적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했는데, 이는 인간이 사회적 규율과 같은 도덕성을 회득하는 기원으로서 작용한다. 왜냐하면 동질적인 개체를 최대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선 모성 등의 특징을 가지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는 인간 도덕성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이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도덕성의 본질이 유전자적 적합도를 높이는 것임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이 기원이 곧바로 본질로 연결될 수 있으려면 기원이 발생시킨 대상이 그 기원으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발생학적 오류‘를 함축할 것이다. 따라서 포괄적합도 이론으로부터 진화와 윤리학을 결합시키려는 시도가 도덕성의 본성이 최대한 많은 대상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라는 공리주의적 결론을 함축한다고 억측하는 것은 언급한 철학적 논의를 제외한체 도약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화적 이익과 공리주의적 이익은 같은 ’이익‘인가? 진화에서 이익이 된다는 것은 생족에 있어 보다 적합하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생존은 넓은 범위의 시간성을 가진다. 즉, 만약 당신이 팔이 하나 잘렸고 이를 대가로 당신의 팔을 자른 사람의 팔을 잘랐다고 한다면 이는 인간 복리 측면에서 이익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적 의미에서 이는 이익일 수 있다. 어떤 상황일지는 모르지만 팔 한쪽이 없는 사람이 끝끝냐 생존에 유리했다면 그것은 결국엔 진화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적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두 이익이 서로 동치가 될 수 있음을 보이는 중간 단계의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진화를 윤리학에 결합하려는 시도는 특정 철학적 논의 없이는 그 어떠한 결론도 곧바로 이끌어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염려해 두 학문 간 결합을 막는다면 그것은 허수아비 공격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철학적 논의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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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윤리학이 인간종의 복리 증진을 그 결론으로 갖는다"고 주장하는, 염두에 두신 글이나 학자가 있으신가요?

제 주변 지인들이 종종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종의 일기 처럼 한 번 써 본 글입니다 ㅎ;; 일단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를 읽다가 마지막 장에서 불현듯 떠올라 매번 눈팅만 하기도 그러니 한번 올려본 글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EP의 "도덕과 진화심리학" 항목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확인은 못해봤습니다만, 한국어 번역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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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한 번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말씀해 주신 sep부터 읽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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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Scott M. An introduction to evolutionary ethics . John Wiley & Sons, 2010.

이 책도 개인적으로 추천드립니다. 진화 윤리학, 자연주의 윤리학 전반에 대해서 이 책만큼 매끄럽고 유려하게 잘 쓴 책이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심화적인 수준이라고 할 순 없지만 포이만 윤리학 10장 '생물학과 윤리학' 파트도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최근에 원문 8판을 한국에서 새로 번역한 개정판이 나와서, 시간이 괜찮으시면 참고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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