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소 이곳에서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하고 또 주변에 물어볼 곳이 없어 여기에 질문하게 됐습니다.
질문은 '철학과를 통해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것과 정치학과를 통해 정치사상을 전공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입니다.
참고로 저는 사회교육을 전공하였고, 제 관심주제는 정치철학, 도덕철학 쪽 입니다. 저는 학부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졸업 후에도 미련이 남아 일 년 동안 일을 하며 혼자 관련 책을 읽다가 대학원 진학을 하려고 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장 공감가고, 관심이 가는 학자들은 존 듀이와 리차드 로티입니다.
각 학과에서 개설된 강의의 수업계획서를 보면 정치학과의 강의들이 더 재밌어 보입니다. 한데 철학과는 윤리학 및 현대정치철학 강의들이 대개 제공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과를 택하는게 더 괜찮을지 고민중 입니다. 그래서 두 학과에서 정치사상 혹은 정치철학을 공부하는게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안다면 선택에 도움이 될까 하여 질문 드립니다.
(1) 보통 철학과의 정치철학은 롤스나 플라톤 등 '정치'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다룹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치는 정의로워야하는가? 공동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등등등등) 한편 정치사상은 이와 살짝 다르게, 우리가 속칭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들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정부주의, 민족주의, 나치즘 등등)
(2) 대학원 선택에 있어서, 이 문제를 물어보신다면 전체 커리큘럼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철학과를 선택하신다면, 정치철학 외에도 칸트나 여러 다른 "철학적인 것"을 반드시 배우셔야겠죠. 반대로 정치학과를 선택하신다면, 정치철학 외에도 정치 제도론 등등을 반드시 배울 겁니다.
(그리고 사실 대학원을 철학과로 가시든 정치학과로 가시든 타과 수업을 듣는걸 막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칸트에 관심이 없지만 정치철학을 배우기 위해 철학과를 가는 것은 고행일 것이요, 정치 제도 같은 현실 정치 현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정치학과에 가시는 것은 마찬가지로 고행일겁니다.
정치사회철학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이 하는 고민 같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두는 책이 몇몇 철학(예를 들어 심리철학/논리학/언어철학)이 아니라 정치학/사회학 관련 서적때문이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오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저도 박사 과정을 지원할 대학을 알아볼 때 정치학쪽에 지원해야하나 철학에 지원해야하나 고민했어요..
다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첫 코를 잘 꿰야만 합니다. (파리대학의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처럼 한데 묶여있는 곳이 아닌 이상) 석사를 철학으로 했다면 그 세부 전공이 정치사회철학이라고 하더라도, 박사 진학을 정치학으로 하기는 힘듭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저는 제 고민이 헛된 고민이란걸 깨닫고 고민하지 않게됐구요.
제가 아직 취업시장에 뛰어들 시기에 있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출신을 잘 신경쓰질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쨌건간에 한국에서도 잘 통용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추측컨데 철박이 정치학교수가 가능한 이유는 정치철학하는 사람들이 정치학/사회학 분야 연구를 챙겨 보고 관련 논문을 쓰기에 정치학과 중 정치사상 분야 교수직을 맡을 수 있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정치학하는 사람들이 철학 분야 연구를 챙겨보지는 않기에 정치학 박사가 철학교수를 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책장도 1/3가까이를 정치학/사회학 놈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예전에 서양고전철학회 논문발표회(?)에서 (정치사상 담당이신듯한) 한 정치학 교수님이 플라톤을 주제로 발표를 하셨는데, 정치학과 사람들에게 발표하려면 항상 플라톤 기초부터 설명해야하는 반면 철학과 사람들 앞에서는 안그래도 되서 편하다고 말하신게 기억나네요.
(1) 보론을 하자면, 이제 사회"과학"은 20세기 초반과는 다르게, 철학과 완전히 구분되는 방법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대부분 안락의자(armchair)에 앉아서 사유를 하지만, 사회과학은 이제 데이터의 수집과 그에 대한 "통계적/모델적" 해석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지요.
여기서 사회과학과 철학 코스웍이 같아지기 어려운 지점이 생깁니다. (1) 우선 사회과학 코스웍을 할려면 무슨 분야든, (미국처럼 모두 가르친다면) 꽤 뛰어난 수준의 통계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건 철학과는 단기간에 얻기 어렵죠.
(2) 두번째는 해석의 대상이 되는 데이터셋 자체입니다. 설문이든 질적이든 양적이든 이제 데이터셋 수집 자체가 연구자의 역량이 된 분야다보니 연구자들은 자기가 돈을 들인 데이터셋을 일평생 가지고 다니고 이게 그들의 자산이죠. 이걸 철학과가 따라잡기 힘듭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답변해주신 내용과 관련해서 정치학 혹은 사회학 대학원에서는 이론을 연구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대략 어느정도인지 혹시 알고 계실까요?
대학원을 진학해서 동료들과 정치사상 및 이론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 배울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혹시 그걸 못할 정도라면... 대학원 생활이 정말 외롭고 아쉽긴 하겠네요.
아 제가 단서조항을 빼먹었네요. 저는 박사 유학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제 좁은 식견에 의하면 국내 대학의 철학과 진학이 비교적 덜 깐깐해서 좀 더 기회가 열려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국내의 경우에도,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전공이 불일치하는 경우, 지원을 위해 따로 증명서 혹은 추천서를 받아야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까다롭기는 합니다.
북미는 철학 학사가 철학 박사 입시의 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철학 학사 - 로스쿨을 했으면 철학 박사가 가능하겠죠. 또, 제가 알기로 로스쿨 박사/철학 박사 협동 과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조인트 디그리이기 때문에 철학 학부 수준의 지식은 있어야할 거에요. 철학 석사는 꼭 철학 학위가 있지 않더라도 샘플 에세이만 어느 정도 나와주면 들어갈 수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Yhk님 설명이 맞아요.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혼동드리고 말았네요. 많은 경우 한국에서 석사까지 밟고 유학넘어가다보니 이상하게 서술해뒀는데, 미국에서 요구하는 공식적인 조건은 철학학부졸업입니다. 거기는 석사과정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어쨌든 철학과 출신이 아니기때문에 철학박사를 하려면 중간에 철학과에서 철학지식을 배웠다는게 증명되야해서 철학석사를 밟으셔야할거고, 그럼 또 정치학과박사는 힘들게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