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 문제들: 아퀴나스 (내세의 삶)

15. 내세의 삶에 대한 아퀴나스의 입장을 기술하고, 인격체의 동일성 문제(problem of personal identity)의 관점에서 그 입장을 평가하시오.

아퀴나스는 영혼의 불사성육체의 부활을 믿는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 자립적으로 존재하다가 부활 시점에 육체와 재결합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a) 육체와 영혼의 합성체로 이루어진 현세의 인격체와 (b)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가 다시 육체와 재결합한 내세의 부활한 인격체 사이의 ‘동일성 문제’를 해명해야 한다.

아퀴나스의 영혼론은 인간의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을 따른다. 다만, 그의 영혼론은 인간의 영혼을 식물혼이나 동물혼과 달리 특수한 형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을 넘어선다. 즉,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에는 물질적 기관에 종속되지 않는 비물질적이고 자립적 힘인 ‘지성’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영혼이 수행하는 지성작용은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지성을 소유하고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내세의 삶은 바로 이러한 불사성으로 인해 보증된다. 아퀴나스는 육체의 죽음과 부활을 기준으로 인간의 영혼이 거치게 되는 단계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1) 영혼이 현세에서 육체와 결합된 단계, (2) 영혼이 내세에서 육체로부터 분리된 단계, (3) 영혼이 내세에서 부활한 육체와 다시 결합한 단계. 즉, 인간의 영혼은 불사적이라는 점에서 (2)와 같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3)과 같이 언젠가는 다시 육체와 결합되어야 한다.

문제는 (1)에서의 인격체와 (3)에서의 인격체가 과연 동일한지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물론, 두 인격체가 서로 같거나 비슷한 특징을 지닐 경우에는 그들 사이에 ‘질적 동일성(qualitative identity)’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인간 사이에 ‘수적 동일성(numerical identity)’은 유지될 수 없다. 영혼이 신체로부터 분리되는 (2)에서 인격체를 유지시키는 존재의 연속성이 상실되고 말기 때문이다. 즉, 아퀴나스는 질료형상론을 따라 ‘인간’을 영혼과 육체가 결합한 ‘완결된 전체(totum completum)’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질료형상론으로 인해, 육체로부터 분리된 (2)에서의 영혼을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1)에서의 인격체와 (3)에서의 인격체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1)-(3) 모든 단계에서 동일한 인격체가 유지된다는 주장은 아퀴나스의 영혼론에서는 일관성 있게 제시될 수 없는 것이다.

참고

이재경, 「부활, 분리된 영혼 그리고 동일성 문제」, 『철학연구』, 제98집, 2012, 73-100.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