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 문제들: 아퀴나스 (영혼과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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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간의 영혼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아퀴나스의 입장을 기술하고 평가하시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신체와 영혼의 관계를 질료형상의 관계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서 영혼이 비물질성자립성을 지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심신이론에서는 영혼이 현실적으로는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강조된다.

신체와 영혼의 관계를 질료와 형상의 관계로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본래 입장에서는 영혼과 신체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질료형상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 영혼이 신체의 죽음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영혼의 비물질성과 자립성에 대한 논증에 근거하고 있다.

아퀴나스는 우선 영혼의 비물질성을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이 지닌 최상의 기능은 바로 지성작용이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 물질적 사물들의 본성을 인식한다. 이때, 인식하는 지성에는 인식되는 물질적 사물들의 본성이 결여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눈에 색깔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눈이 바깥의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지성에 물질적인 것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지성이 물질적 사물들의 본성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성이 물질적 사물들의 본성을 인식할 수 있는 한, 지성은 비물질적이다. 더 나아가, 지성이 비물질적인 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영혼도 비물질적이다.

아퀴나스는 영혼의 비물질성으로부터 영혼의 자립성을 논증한다. 여기서 ‘자립성’이란 현실적으로 자립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립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은 현실적으로 비물질적인 지성과 물질적인 감각을 결합하여 사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성작용 자체는 비물질적이라는 사실이 이미 논증되었다. 지성은 원리상으로는 어떠한 신체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지성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신체로부터 분리되어도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신체의 죽음 이후에도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퀴나스의 논증을 전제의 측면과 결론의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비판해 볼 수 있다. 우선, (a) 아퀴나스의 논증은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전제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령, “인식하는 지성에는 인식되는 물질적 사물들의 본성이 결여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나 “지성이 비물질적이라면 지성을 가진 영혼도 비물질적이다.”라는 전제 등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b) 아퀴나스의 논증은 지성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일종의 ‘지성-신체 이원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지성은 비물질적이고 신체는 물질적이라는 주장을 따라 둘을 완전히 이질적인 실체로 구분할 경우, 지성이 신체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란 대단히 어려워진다. 다만, (c) 이러한 여러 가지 철학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아퀴나스의 영혼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독창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철학사적으로는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이재경, 「아리스토텔레스 넘어서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혼개념에 대하여」, 『가톨릭철학』, 제4권, 2002, 251-270.
이재경, 「토마스 아퀴나스와 심신이원론의 문제」, 『철학연구』, 제59집, 2002,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