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 문제들: 윌리엄 오캄

occam

논문 자격시험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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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보편자 문제에 대한 스코투스와 오캄의 입장을 비교 · 분석하시오.

보편자 문제에 대한 스코투스와 오캄의 입장은 각각 ‘온건한 실재론’과 ‘유명론’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즉, 스코투스의 온건한 실재론는 보편자가 정신 외부에 존재하면서도 개별자와 실재적으로는 구별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캄의 유명론은 공통 명사에 상응하는 보편적 실재를 완전히 부정하고서 정신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 개념만을 인정한다.

보충

스코투스는 보편자가 개별자와 절대적으로 다르지 않으면서도 엄격하게 같지도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보편자와 개별자가 형상적으로는 구별되더라도 실재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개별자 안에는 공통 본성과 개체화의 원리가 내재한다. 가령, 각각의 인간은 모두 ‘인간성’이라는 공통 본성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인간 종 아래에 묶이면서도, ‘이것임(thisness)’이라는 개체화의 원리 역시 지닌다는 점에서는 철수와 영희 같은 개별적 대상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공통 본성과 개체화의 원리는 개별자 안에 함께 존재하면서도 서로 구별된다. 개별자가 소멸하더라도 공통 본성에 대응하는 보편자는 여전히 남을 수 있다.

오캄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온건한 실재론을 비판한다. 첫 번째 비판은 온건한 실재론 일반에 대한 비판이고, 두 번째 비판은 스코투스의 온건한 실재론에 대한 비판이다. 즉,

(1) 하나의 보편자가 여러 개별자에 ‘내재’한다는 생각은 비일관적이다. ‘인간성’이라는 보편자가 ‘철수’라는 개별자에 내재하고 있는 일부분이라면, ‘철수’라는 개별자가 파괴되는 상황에서는 ‘인간성’이라는 보편자까지도 파괴되어야 한다. 그러나 온건한 실재론은 보편자가 개별자에 ‘내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개별자의 파괴가 보편자의 파괴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2) 이러한 문제를 스코투스처럼 ‘실재적’ 구별과 ‘형상적’ 구별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도 ‘동일자의 식별불가능성 원리’를 위반한다. 보편자와 개별자가 실재적으로 동일하다면, 보편자에 대해 참인 것은 개별자에 대해서도 참이어야 하고, 개별자에 대해 참인 것은 보편자에 대해서도 참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적임’과 ‘개별적임’ 같은 양립 불가능한 술어를 보편자와 개별자 모두에 동시에 귀속시킬 수 없다. ‘보편적임’은 보편자에게만 귀속되고, ‘개별적임’은 개별자에게만 귀속된다는 점에서 그 둘은 실재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캄은 보편자가 여러 대상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그는 보편자가 사물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설명한다. 즉, 하나의 개념이 다양한 사물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기호라면, 그 개념은 보편자이다. 여기서 기호 자체는 개별적 사물이다. 기호의 보편성은, 별도의 사물이나 실재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호가 다양한 사물을 가리켜 보인다는 의미기능에서 생겨날 뿐이다.

참고

박우석·이재경, 「옮긴이 해제」, 윌리엄 오캄, 『논리학 대전』, 제1부, 박우석·이재경 옮김, 나남, 2017, 369-372쪽.

17. 오캄의 『논리학 대전』에 등장하는 의미(significatio)와 지칭(suppositio)을 비교 · 분석하시오.

의미와 지칭은 모두 명사에 귀속되는 속성이다. 그러나 의미는 명제 안에서 사용되기 전에 명사에 귀속되는 속성인 반면, 지칭은 명제의 일부로 사용될 경우에 명사에 귀속되는 속성이다.

보충

명사는 우리가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가령 ‘산’이라는 명사는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산들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때 우리는 ‘산’이라는 명사가 산들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오캄은 초기에는 산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상(mental picture)이 실제 산들과 닮았기 때문에 명사의 의미가 성립한다는 표상주의 인식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후기에는 우리가 지각한 산들이 우리가 ‘산’이라는 명사를 사용할 때 가지는 생각들을 야기한다는 직접적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명사가 지니는 의미는 크게 ‘일차적 의미(primary signification)’와 ‘이차적 의미(secondary signification)’로 구분된다. 가령, ‘인간’이라는 명사는 각각의 인간만을 일차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부모’라는 명사는 일차적으로는 각각의 부모들을 생각하도록 만들지만, 이차적으로는 자식들까지도 생각하도록 만든다. 누군가가 부모라는 사실은 그가 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이라는 명사는 일차적 의미만을 지닌 절대 명사이고, ‘부모’라는 명사는 일차적 의미와 함께 이차적 의미까지 지니는 내포 명사이다.

명사가 수행하는 지칭 활동은 크게 ‘위격 지칭(suppositio personalis)’, ‘단순 지칭(suppositio simplex)’, ‘질료 지칭(suppositio materialis)’으로 구분된다. 첫째로, 명사가 자신의 의미대로 외부세계의 개별자들을 생각하도록 만들 때 수행하는 지칭은 ‘위격 지칭’이다. 가령, “사람은 달린다.”라는 명제에서 ‘사람’이라는 명사는 외부세계의 사람을 지칭한다. 둘째로, 명사가 개념을 생각하도록 만들 때 수행하는 지칭은 ‘단순 지칭’이다. 가령, “사람은 보편자다.”라는 명제에서 ‘사람’이라는 명사는 외부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개념을 지칭한다. 셋째로, 명사가 음성적으로 발화된 표현이나 문자로 쓰인 표현을 생각하도록 만들 때 수행하는 지칭은 ‘질료 지칭’이다. 가령, “‘사람’은 두 글자이다.”라는 명제에서 ‘사람’은 음성으로 발화된 표현을 지칭한다.

참고

박우석·이재경, 「옮긴이 해제」, 윌리엄 오캄, 『논리학 대전』, 제1부, 박우석·이재경 옮김, 나남, 2017, 3611-363; 366-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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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투스와 오컴 ㅋㅋ 정말 논자시(논문자격시험)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이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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