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 백과의 "파스칼의 내기" 항목에 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첫글이 질문이라 염치 없지만, 잘부탁드리겠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옥스포드 철학 사전의 "파스칼의 내기" 항목을 읽다가, 마지막에 비판에 해당하는 부분이 해석도 잘 안 되고 내용도 이해가 안 되어 질문드립니다.

Critics of the argument point out that Pascal has not considered enough possibilities. It may
be that the kind of Christian God he was interested in does not exist, but that another does who reserves bliss for those strong enough not to believe in a Christian kind of God, and damnation for those superstitious enough to do so. In other words, if we are really metaphysically ignorant, our ignorance extends to the rewards and penalties attached to our actions and states of belief. The other uncomfortable feature of the argument is that unlike most arguments for belief, it proceeds without reference to the likelihood of truth.

(파스칼의 내기)의 비판은 파스칼이 여러 가능성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파스칼이 상정해두고 있었던 기독교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 반면, 기독교적인 신을 믿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신념이 사람들을 위해 지복을 예비해둔,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미신적인 사람들에게 지옥을 예비해둔 다른 신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만약 정말로 형이상학적으로 무지하다면, 우리의 무지는 우리의 행위와 정신의 상태에 결부된 보상과 페널티에까지 연장된다. 또한 파스칼의 주장의 다른 불편한 특징은, 신앙에 대한 대부분의 주장들과 달리, 진리의 가능성(=신의 존재 유무의 검토?)에 대한 언급 없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269)

위와 같이 이해했는데, 제가 해석을 제대로 한 것이 맞는지,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무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시 가르쳐 주실 분 계시다면 너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울러 글을 남기는 것은 처음이지만, 틈틈히 들러서 게시글과 댓글에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이에 대한 감사 인사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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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이 있는지를 정말로 모른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나 행위에 어떤 보상이나 페널티가 붙을지도 모른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만일 본문에서 나온 아치-기독교 신이 존재한다면 기독교의 신을 믿고 안 믿고에 대한 가능한 결과도 더 확장되겠죠. 사실상 "여러 가능성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belief'에 대해서 '믿음', '신념', '신앙' 이렇게 섞어 번역하셨는데 특별히 종교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아니라면 'belief'는 보통 '믿음'으로 번역하는 걸 권장드립니다. 'belief'는 '신앙'처럼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어떻다 어떻다 생각하는 바를 가리킬 때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the likelihood of truth'는 뭐.. '참임직한' 정도의 의미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믿음은 그 내용이 참 여부에 따라 규범적으로 제한된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Belief aims at truth"라는 슬로건으로 쓰기도 합니다. 즉, 믿음의 내용이 거짓이면 그런 믿음은 피해야/혹은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증거에 입각해야 하겠죠.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믿음이 정당화가 되든지요. 그런데 파스칼의 주장은 이러저러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너한테 좋은 결과가 올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믿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 "불편한" 점이 있는 것 같죠.
(이 주제와 관련된 고전적인 글들 중에 하나가 파스칼의 내기입니다. 나머지 둘은 William Clifford의 "The Ethics of Belief"와 William James의 "The Will to Believ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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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새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약간의 의역이 있습니다.

그 논변(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비판가들은 파스칼이 충분한 가능성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파스칼이 관심을 두었던 기독교의 하느님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주 강퍅해서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복을 유보해두고, 미신적이어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 보내지 않기로 하는 (기독교의 신과 같은 부류의)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약 정말 형이상학적으로 무지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와 정신의 상태에 결부된 보상과 처벌에 대해서도 무지할 것이다. 파스칼의 논변의 또다른 불편한 특징은, 신앙에 대한 논변들 대부분과 달리, 진리의 가능성과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내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

(1) 신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1. 신을 믿으면 -> 잃을 것이 없다
  2. 신을 믿지 않으면 -> 얻는 것이 없다.

(2) 신이 존재할 경우

  1. 신을 믿으면 -> 지복을 얻는다.
  2. 신을 믿지 않으면 -> 지옥으로 간다.

그런데 비판가들에 의하면, 아주 강퍅해서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지복은 유보해두고, 미신적이어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 보내지 않기로 한 다른 신의 존재가능성이 여기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3) 기독교의 신 아닌 다른 신이 존재할 경우

  1. 그 신을 믿으면 ->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2. 그 신을 믿지 않으면 -> 지복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가능성이 파스칼의 내기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라고 이해됩니다. 파스칼은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모른다고 치고, 신이 존재할 경우와 존재하지 않을 경우로 나누어서 신을 믿는 것이 어째서 유익한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가 그러한 무지의 상황에 있다면 신이 지복을 주거나 지옥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 즉 비판가들이 제시한 (3)의 사례도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위 텍스트가 설명하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위는 모두 제 개인적인 견해이니 오류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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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해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어제보다 좀 똑똑하진 상태로 자러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조차 모르고 있던 belief에 대해서 설명과, 더 읽어볼 텍스트까지 알려주신 점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꼭 읽어 보겠습니다!

해석을 통째로 다시 해주시다니 너무 송구스럽고 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ㅠㅠ

strong enough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는데, 강퍅하게였군요!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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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II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번역한 부분에 오타와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새로 수정을 좀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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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특히, strong enough, extends to, 그리고 the kind of 에 대한 이해 및 번역 방법을 배워서 대단히 기쁩니다. (첫질문으로 이걸 올려서 잘했네요. 안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그리고 어제는 말씀드리는 걸 빼먹었는데,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깔끔한 정리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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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퍅(剛愎)하다'란 단어는 성경에서 여러번 나오는 말이죠. 이 단어는 히브리어 'קזח(하자크)'의 번역어인데, 영어로는 strong이라고도 번역됩니다. 원문이 파스칼의 호교론에 대한 텍스트이고, 신에 대한 믿음과 관련한 종교적인 내용이 다루어져서 성경에서 쓰이는 용례로 번역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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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유가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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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역입니다.

파스칼은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내기를 하고 있지요. 본문의 형이상학적 무지란 초월자의 존재에 대한 무지를 뜻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비판자들의 요지는 파스칼이 신의 존재에 대한 무지를 말하면서도 이 신을 기독교 신으로 한정한다는 것이에요. 이게 왜 문제냐면 신을 기독 신으로만 한정함으로써 이미 신을 믿으면 천국가는 보상을, 믿지 않으면 지옥가는 처벌을 받는다는 (이미 어마어마하게 구체적인) 믿음을 깔고 가게 된다는 것이죠. 만약 초월자에 대한 무지, 즉 형이상학적 무지를 엄밀하게 견지한다면 애초에 이 보상과 처벌의 조건에 대해서도 알 수 없어야 하죠. extend부분이 이를 뜻합니다. 초월자에 대해 모른다면 초월자에 의한 보상과 처벌도 몰라야 한다는 겁니다.

reserve 부분은 기독교 신 말고 다른 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비판의 연장선에서 일종의 반기독신을 통해 하나의 예시를 든 것입니다. 기독교 신을 믿는 사람한테는 지옥을, 기독교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을 마련해놓은 그런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파스칼은 신이 존재한다면 (기독) 신을 믿을 때 천국간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반기독신이 존재한다면 기독 신을 믿었을 때 지옥갈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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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코멘트를 보고 다시 읽어보니 strong enough와 superstitious enough는 for those를 수식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다시 보니 저는 본문에서 strong enough를 통째로 빼먹었군요..,)

세분 선생님께서 알려 주신 것들을 제 나름대로 종합해서 다시 번역해보았습니다.

아직도 제 번역이 거칠어서 설득력이 부족하겠지만, 제 스스로는 질문을 올리기 전보다 훨씬 많이 이해가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