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란 무엇인가?: 해체를 둘러싼 네 가지 입장(1)

제 논문 읽어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읽어드립니다.

논문

윤유석, 「부정신학 없는 해체주의를 향하여: 해체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현상학과 현대철학』, 제95권, 2022, 161-210.

내용 구성

  1. 들어가기(00:00-01:29)
  2. 해체를 둘러싼 네 가지 입장(01:30-06:32)
  3. '부정신학'이란 무엇인가?(06:33-09:26)
  4. 데리다와 부정신학의 만남(09:27-11:50)
  5. 부정신학에 대한 긍정과 부정(11:51-13:13)
  6. 부정신학에 대한 데리다의 긍정(13:15-15:54)
  7. 부정신학을 제한하기(15:55-19:45)
  8. 해체에 대한 논란(19:46-23:09)
  9. 주류 해석: 유사초월론적 철학(23:10-25:45)
  10. 대안적 해석: 아이러니즘, 우편적 해체주의, 차연의 형이상학(25:46-27:29)
  11. 부정신학 없는 해체주의를 향하여(27:30-30:21)

영상 수정

  • of something corning → of something coming
  • 윤유석, 2020 → 윤유석, 2022
  • 차이의 형이상학 → 차의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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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었어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

선생님의 논문을 아직 구하지 못해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영상을 보고 든 개인적인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 보고 싶어요. (아직 논문 전체를 직접 읽어보기 전이어서 인상비평적인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합니다) 논문에서 비판하는 4가지 견해들은 다음과 같죠.

  1. 해체를 엄격한 철학적 방법으로 보는 주류 학설.
  2. 해체주의를 아무런 방법도 없이 글쓰기만을 계속하고자 하는 ‘아이러니즘’으로 해석하거나,
  3. 강한 의미의 방법을 포기하고서 약한 의미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우편적 해체주의’로 해석하는 견해
  4. 형이상학을 철저하게 극복하지 못하고서 형이상학에 빠지고 마는 ‘차연의 형이상학’으로 해석하는 견해.

그런데, 저는 데리다가 이즈쓰 도시히코(井筒俊彦)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체는 방법이 아니며 방법으로 변형될 수도 없다(La déconstruction n'est pas une méthode et ne peut être transformée en méthode.)’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1)을 비롯해서 해체를 (3처럼 약한 의미의) 방법으로 보는 견해들은 데리다 자신의 입장과 상충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해체 자체가 방법(론)이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해체 자체와 구분되며 데리다가 꾸준히 시도한 ‘해체의 방법(론)’은 유효하기 때문에 2)도 결정적일 수 없을 거라는 인상이 들어요. 그리고 4)도 (이전에 니체가 시도한 것처럼) 형이상학의 철저한 극복을 다소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형이상학의 건설로 이루려는 입장에 의해 반박될 수 있다고도 보입니다.

또, 진태원의 주장처럼 데리다의 해체를 탈구축으로 해석하려는 견해에 따른다면 데리다에게서 부정신학의 문제는 애초에 해소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고, 제가 데리다 철학에 대해 아직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서 혹시라도 폐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보아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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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영상을 봐 주시고 제 논의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힘이 되는 걸요! 진태원 선생님을 인용하신 마지막 부분이 흥미롭네요. 진태원 선생님은 가셰의 옹호자이시고, 그래서 몇 년 전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이라는 논문도 쓰셨거든요! 그래서 진태원 선생님의 해석도 제 논문에서 다루어지는 비판의 대상 중 하나입니다.

*제 논문은 여기서 무료로 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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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제 짧은 생각에 대해 친절하게 답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논문 잘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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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님 덕분에 알라딘 보관함에서『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와『그라마톨로지』를 주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안드렸었지만, 전에 올려주신 소개덕분에 김옥경 선생님 강의도 잘 듣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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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카푸토 vs 헤글룬드도 다뤄주시길! 논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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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20세기 철학의 흐름 사이에 발생한 인물이라 그런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종종 니체나 들뢰즈 등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철학속 반복되는 엄격한 논증, 정당화가 형이상학과 같은, 부정신학 같은 철학으로서의 실수를 반복하고 그것이 해체주의에 대한 학문화 과정속에서도 있다고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니체가 이성을, 합리적인 학문의 토대를 비판하면서 "백번이고 거듭 말하리라! 언제나 말을 조심해라"(어디서 이 말을 했는지 아무리 찾아도 기억밖에 안나네요.)라고 말했던 것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포리아적인 정당화를 들춰내는 작업, 해체가 존재하지도 비존재도 아니지만 모순의 공간속 논리적으로 속한다는 해체의 눈띄는 존재에 대한 탐구가 이후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제가 제대로 읽은게 맞는건지 모르겠네요. 학문과 욕망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네요.
암튼 그라마톨로지는 읽기 난잡하다가 제 결론이지만 논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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