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후설 비판과 수용에 관한 연구 문헌

아도르노 관련 책들을 읽고 있는데, "수학화(또한 환원주의, 과학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틀에서뿐만 아니라, 뭔가 묘하게 후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아도르노가 후설을 많이 비판하긴 했지만요.) 후설에 대한 아도르노의 수용 및 비판을 다루는 문헌이 따로 있을까요? (아니면, 그 정도로 다뤄질 문제까지는 아닌가요?)
(독일어는 아직 기초부터 공부하는 중이라 독어 문헌을 읽기는 힘들긴 한데,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이라면 독어문헌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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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적으로만 이야기하면, 아도르노는 후설의 현상학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남인 교수님의 『현상학과 해석학』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후썰의 현상학은 본래 실천적 함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은 후썰의 현상학을 실천적 함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하게 이론적이기만 한 철학으로 간주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는 다름 아닌 실천의 문제를 철학의 핵심주제로 간주하면서 참다운 철학이란 본성상 실천철학일 수밖에 없다고 갈파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 제1세대에 속하는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h. W. Adorno)이다.

호르크하이머는 비판이론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이라는 논문에서 현상학을 플라톤(Platon)과 데카르트(R. Descartes)의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전통이론의 전형적인 예로 간주한다. 그에 의하면 전통이론이란 "특정 사태의 발생과정 및 그 사태를 파악하는 개념체계의 실천적 적용, 그리고 실천에 있어서의 이론의 역할" 등을 이론에 대해 우연적이며 외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이론을 의미하며,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이론을 역사적이며 사회적 실천의 산물로 간주하고 이론이 지닌 실천적, 사회변혁적 함축을 강조하는 비판이론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

현상학이 실천철학이 될 수 없다는 견해는 아도르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썰의 현상학을 주제로 하여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아도르노가 후썰의 현상학을 비판하면서 그를 떠나 비판이론을 전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현상학이 실천철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남인, 『현상학과 해석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4, 27-28쪽.)

그렇지만, 이미 이 글 속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이러한 비판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현상학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특별히, 아도르노는 후설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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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아도르노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는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논의거리입니다.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아도르노의 평가는 「자연사의 이념」이나 『부정변증법』의 곳곳에 등장하지만, 후설에 대한 아도르노 자신의 본격적인 비판적 평가는 『인식론 메타비판』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저작에 대해서는 연구가 상대적으로 진척되지 않은 편입니다. 아도르노 철학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후설 현상학에도 정통하기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그래도 피상적인 수준에서나마 후설에 대한 아도르노의 입장을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아도르노는 자연주의 혹은 과학주의적인 학문 경향에 대한 후설의 비판적 문제설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후설이 그러한 단조로운 틀에 미처 파악되지 않는 비동일자에 온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다만 아도르노는 후설이 옳은 문제의식을 가지고도 의식철학적인 관념론에 빠져버림으로써 문제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합니다. 즉 아도르노에 의하면 후설의 현상학은 특수하고 비동일적인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주체 중심적, 보편적인 것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역사적 입장에 따르면, 철학은 헤겔이 원래 전통과 일치하여 무관심을 표명했던 곳에 그 참된 관심을 갖는다. 무개념적인 것, 개별자 그리고 특수자에 말이다. [...] 철학적 현대의 담지자인 베르그손과 후설은 이 점을 자극했으나 그 앞에서 전통 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갔다. (ND, 19-20)

논리학자 후설은 본질을 깨닫는 양상[방식]을 일반화하는 추상에 날카롭게 대립시켜 부각했다. 후설에게는 특정한 정신적 경험이 떠올랐는데, 이 정신적 경험은 특수한 것으로부터 본질을 끌어내 직관할 수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본질은 통용되는 보편개념들로부터 전혀 구별되지 않았다. [...] [베르그손과 후설의] 관념론으로부터의 두 탈출시도는 성사되지 못했다. 베르그손은 그의 실증주의적 숙적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지향했으며, 비슷하게 후설도 의식 흐름의 현상들을 지향했다. 전자나 후자나 주체의 내재성의 주변에 머무른다. 이들에 반해서는 이들에게 헛되이 떠올랐던 것을 견지해야 할 터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반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 말이다. (ND, 21)

저도 상세한 연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고, Roger Foster의 Adorno: The Recovery of Experience (New York: SUNY Press, 2007)의 4장에서 후설에 대한 아도르노의 논의를 간략히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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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하여 찾아보고 읽은 논문 중에 원승룡(1997), 아도르노의 후설 현상학 비판, 범한철학 14, 233-262 가 있어서 추천하고 싶네요. 이 논문은, 위에서 언급되었듯, 아도르노 <인식론 메타비판>의 독서를 중심으로 아도르노의 후설 이해와 후설 현상학과의 비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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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네요? 아도르노 스터디 모임이 있어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아도르노와 후설' 또는 '아도르노와 현상학'이라는 주제는 외국에서도 연구가 거의 안 된 분야입니다.

  • 국내 논문으로는 윗분이 알려주신 원승룡 교수의 「아도르노의 후설 현상학 비판」(1997)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 영어권 논문으로는 조안나 호지(Joanna Hodge) 교수의 "Adorno and Phenomenology: Between Hegel and Husserl"(2019)이 있네요.

  • 독어권에는 『아도르노 핸드북 Adorno-Handbuch』(2019)에 수록된 페트라 게링(Petra Gehring) 교수의 "Metakritik der Erkenntnistheorie: Husserl"이라는 아티클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게링은 아도르노의 『인식론 메타비판』의 주요 논의를 정리한 후, 아도르노의 이 책이 그리 명료하지 않고 "어둡다"고 평합니다.

『인식론 메타비판』(1956)은 아도르노가 30년 넘게 매달렸던 자신의 후설 연구를 총결산한 책인데, 아도르노 생전에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사후에도 전혀 주목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후설 비판이 부정 변증법 기획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누군가 해야할 작업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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