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롭 에른스트 슐체- 이성비판의 월권에 대한 회의주의의 변호 (2)

두번 째 파트를 올려봅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슐체의 칸트 비판이 전개되고,
이후 마지막 파트에서 이제 유명한 범주의 물자체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다뤄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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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진진하네요~! 혹시 슐체의 이 글에 대한 당대의 비판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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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연재를 기다리고 있네요...! 좋은 자료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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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둘러서 나머지 부분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Pompoko님께서 하신 질문에 간략하게 답변드리자면, 물론 이 책의 영향력은 아주 컸고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아에네시데무스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이 책의 주 비판 대상이었던 라인홀트 학파였습니다. 라인홀트 본인도 2년 후 슐체가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밝히며, 슐체의 비판을 재반박합니다.
칸트의 친구인 Jacob Sigismund Beck 역시 마찬가지로 슐체의 비판을 논박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와 칸트의 서신교환에서 칸트 역시 아에네시데무스를 언급하고 있는 걸 보면, 칸트도 이미 아에네시데무스를 알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칸트 본인이 아에네시데무스를 상세히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슐체와 함께 독일 고전철학의 회의주의자로 유명한 살로몬 마이몬 역시 "필라레테스가 아에네시데무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아에네시데무스의 비판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다루면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피히테는 아에네시데무스를 가장 높게 평가한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는 이 저서를 "우리세기의 가장 주목해야만 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이 책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자신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렸고, 자신에게 칸트의 철학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인홀트의 체계를 떠나 피히테 본인의 체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다고도 피히테는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히테의 학문론은 슐체, 혹은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회의주의 르네상스에 대한 피히테의 반박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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