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에서 교수님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연세대학교에서 이승종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하여 처음으로 철학 레포트를 쓰고 있는데요, 다름아닌 이승종 교수님의 책을 주제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포트에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하네요. "이승종 교수는 p.42에서 이렇게 주장한다."라고 '건방지게' 써도 괜찮나요? 저의 원 전공에서는 이런 글을 쓸 일이 없었던지라 난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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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어요. 나아가 저는 교수라는 호칭도 문장에서 빼고, “이승종은 ~라고 주장한다. (p.42)“처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든 선생이든 직함따위는 글에서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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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이게 한국 학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좀 골치 아픈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라면

김철수 교수님께서는 (이하 '김철수')

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타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만약 조교가 채점하는 학부 수업이라면 아마도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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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호칭 없이 써요. 가령, 이런 식으로요.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 2장과 13장에는 의미의 문제와 진리의 문제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일련의 논쟁이 등장한다. 논쟁의 주인공들은 비트겐슈타인, 데이빗슨, 이승종, 이영철이다. 즉, 이승종은 의미의 문제와 진리의 문제 중 무엇이 더 선행하는지를 주제로 비트겐슈타인과 데이빗슨을 서로 대립시킨다. 이승종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의미의 문제를 진리의 문제보다 우선시하고, 데이빗슨은 진리의 문제를 의미의 문제보다 우선시한다. 그러나 이영철은 이승종이 제시한 의미의 문제와 진리의 문제 사이의 구별을 거부한다. 이영철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데이빗슨처럼 더 이상 정당화가 불가능한 진리가 언어게임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우선 비트겐슈타인과 데이빗슨의 차이에 대한 이승종의 입장을 소개할 것이다(Ⅰ). 다음으로, 이승종의 입장에 대한 이영철의 비판을 요약할 것이다(Ⅱ)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당화가 불가능한 진리를 상정하고자 하는 입장조차 결국 근본적 ‘확실성의 진리(truth of certainty)’와 개별적 ‘주장의 진리(truth of assertions)’를 구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의 문제와 진리의 문제 사이에는 간과될 수 없는 철학적 간극이 놓여 있다고 논증할 것이다(Ⅲ).

적어도, 이승종 교수님은 호칭 문제로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이 아니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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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그런가요? 저는 이게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교수님들도 그러려니 하실 줄 알았는데...

사실 제가 지레 겁을 먹고 위와 같은 말씀을 드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일단 다양한 사례를 접하기는 했는데요. 다른 두 분께서 말씀해주신 것도 그렇고, 어떻게 호칭을 하는지가 실제로 어떤 반응을 낳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또다른 한가지 주의점은 그냥 해당 인물이 지나가면서 인용되는건지, 아니면 해당 인물이 논문의 직접적인 반박 대상이 되는지 차이 여부인 것 같습니다. 전자라면 딱히 신경이 안 쓰일 것 같습니다만

... 에 대해서는 Smith (1998), 김철수 (2003), 이영희(2005)를 참조하라.

후자의 경우에는 은근히 신경이 쓰일 것 같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김철수의 XO 논변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반례를 제시하겠다.

덧. 사실 유럽어권에서도 20세기 전반까지는 논문에서도 Mr., Ms. 같은 호칭을 은근히 붙이기도 했죠 ... (예. Prichard, H. A. “Mr. Bertrand Russell’s Outline of Philosophy.” Mind 37, no. 147 (1928): 265–82. http://www.jstor.org/stable/224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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