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함: 왜 일부 철학자에게는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가?

논문이나 책도 아니고, 저자 스스로가 밝히듯이 순수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서 글의 짜임새가 탁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용이 흥미로워서 번역했습니다. 원문도 문단을 나누어 두기는 했으나, 문단 별로 핵심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는게 읽기 편하여 임의로 제목을 추가했습니다.


0. 개요: 관대함에 대한 철학적 작업은 왜 감소했는가?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면 최근 몇 세기동안의 도덕 철학자들은 관대함에 관한 글을 별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도덕철학자들은 보통 그것을 중요한 주제로서 다뤘다. 비록 플라톤은 그렇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대함에 상당한 챕터를 할애했다. 아퀴나스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니코마코스 윤리학 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대함의 하위종으로 여겨질 수 있는 다른 두 덕을 알아보았다. 엘레우테리아(자유)와 메갈로프레페이아(통이큼 혹은 호방함)가 그것이다. (1119b-1222a) 데카르트는 『정념론』에서 관대함을 "모든 덕들의 열쇠이자 정념의 모든 무질서를 위한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여겼다. (Art. 161) 스피노자는 『에티카 Ⅳ』에서 아주 긴 분량을 정념에 대해 할애했는데, 그는 관대함을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여겼다. (Propositions 37; 50-73) 그 후 니체가 등장하기까지 철학자들은 관대함의 개념에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많은 철학적 문제에 있어서 격세유전격인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 그가 "베푸는 덕"이라고 부른 것을 예찬했다. (Za 1, 22) 니체의 베푸는 덕과 스피노자의 관대함은 초월적 덕(super-virtue)으로, 일종의 영혼의 관대함으로 -우리가 통상 관대함이라고 부르는 특성을 결과로 하는- 이해되곤 한다.

​1. 쇠퇴의 첫 번째 원인: 좋은 인간에서 옳은 행위로의 윤리학의 관심사의 이동

관대함에 대한 관심의 쇠퇴 원인 중 하나는 꽤나 명백하다. 서양의 전근대 윤리학에서 일반적으로 value ethics가 관심 갖는 것은 덕 -개별 인간 내부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어떤 것- 이었다. 덕은 보통 - 용기, 절제, 또는 관대함 같은- 특수한 특성들로 구성된 것으로 여겨졌다. 공리주의와 칸트적 의무론과 같은 근대의 일반적인 윤리 이론들은 기본적으로 옳은 행위를 선별하는 규칙들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결정하는 것과 어떤 종류의 인간이 좋은 인간인지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꽤나 다른 일이다. 최근 수십년간 "덕 윤리"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크게 부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덕 윤리학은 보통 칸트주의와 공리주의가 하는 것에 관한 대안적 방법으로 여겨졌을 뿐, 관대함과 같은 특정한 특성들을 분석하는 관심의 상당한 부활을 가져오진 못했다.

2. 쇠퇴의 두 번째 원인: 귀족/고귀함과 관대함의 긴밀한 상관관계와 귀족 사회의 특성

근대 이전에는 왜 관대함이 그렇게나 자주 다뤄졌는지를 파악할만한 또 다른 가능한 이유를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관대함에 높은 가치를 두는 도덕률이나 윤리적 이상들은 귀족주의적 사회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엘레우테리아(명사 엘레우테리오테스에서 파생된)와 같은 형용사 관대한은 "귀족의/고귀한(noble)"을 의미했고, "귀족/고귀함(nobility)"은 본래 출생이나 "가문의 세대(generation)"(generous, generare, genus는 같은 곳에서 유래했다) 를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관대함은 본성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생산적 활동들을 귀족이 업신여겼다는 점이 그들이 관대함을 높게 평가한 이유 중 일부라는 것은 분명하다. 귀족에게 있어서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giving wealth away)은 농지나 자본재에 재산을 생산적으로 투자하는 것보다 더 적합한 일로 여겨졌다. 더욱이, 소비할 재산이 아니라 나누어 줄 재산이 있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높은 지위의 증거이기도 하다.


3. 관대함과 다른 other-regarding virtue는 어떻게 다른가?: 관대함과 정의 및 자비의 차이

관대함은 혜택이나 손해를 타인에게 수여하는 것(conferring benefits or detriments)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다른 미덕(때때로 "other-regarding virtues"로 불리는)과는 잠재적으로 중요한 방식으로 다르다. 또한 그러한 차이들은 문화적·윤리적 시스템이 관대함을 중요한 더 혹은 덜 중요한 덕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문제를 보여준다. 정의와 자비의 예를 들어보자. 정의는 관대함과 뚜렷히 다르다. 상대방에게 공정하거나 약속을 지키거나 학생에게 마땅한 성적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합당한(just) 행위들은 정의의 숙고(consideration of justice)를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관대함은 필요조건으로 행위를 정의의 숙고에 따라 수행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의무가 아니라 좋은 마음씨에서 비롯하여 준다. 물론 마음을 자극하는 것들은 자선 기부 또한 넘어서 있다. 일반적으로는 수여된 혜택이 자선적인 경우, 기부자가 수취인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혜택을 수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비는 관대함과 유사하다. 하지만 관대함과 자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최소한 근대 영어에서 사용되는 "자비"는 가난이나 병과 같은 결함들을 바로잡기 위한 시도를 지시한다. 반면에 관대함은 긍정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관대함은 보통 빈민을 위한 구호금이 아니라, 선물을 베푸는 형태(not alms, but gifts)를 취한다. 관대함이 선을 행하는 기회들에 대응하는 것이라면, 반면 자비는 악에 대응하는 것이다.


4.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최고의 덕: 정의와 자비가 정말로 최고의 덕인가? 그 특성에 기반하여

정의가 가장 중요한 other-regarding 덕이라는 생각은 일부 세계관에서 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의에 좀 더 잘 맞는 종류의 세계관은 가장 칭찬할만한 삶을 -"의무"와 "책임"과 같은 준사법적인 개념들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특정한 행위를 해야만 함(agent's being bound to do a particular act)을 수반하는 다른 개념들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경우처럼- 관련된 요구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삶으로 여길 것이다. 만약 우리가 평등주의의 강력한 요소를 추가한다면, 이러한 세계관은 정의를 고평가하는 것에 더욱 적합해진다. 평등주의적 사고는 우리가 평등주의자가 아니라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많은 요소들을 부적절한 것으로 보게 만들어준다. 예를들어, 어떤이는 다른이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갖는다. 평등주의적 세계관은 현대 서유럽과 영어권 세계의 특징인 평등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현대적이고 규제되고 관료화된 복지 국가에서 시민이 되는 것에 꽤 편안한 사람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반면에 자비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인간의 죄악과 연약함을 강조하고, (신의 은총과 같은) 강력한 도움 없이 궁극적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을 강조하는 정통 기독교에 명백히 잘 부합한다.


5-1.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최고의 덕 2: 관대함은 언제 최고의 덕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 그것이 함축하는 바는?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로, 관대함은 현대 복지 국가 리버럴리즘과 기독교 세계관에 저항하는 사람에게 큰 주목을 끌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Hunt와 Machan이 관대함에 관한 작업에 동기를 부여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인물의 other-regarding한 특성들은 우리를 동료 인간들과 이어주고, 바로 그렇기에 우리 삶의 의미와 질에 영향을 미친다. 높이 평가된 자비의 덕은 타인의 고통과 그들 자신을 보살필 수 없는 무능력을 통해 그들과 관계 맺게한다.


5-2.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최고의 덕 2: 관대함은 언제 최고의 덕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 그것이 함축하는 바는?

이는 한 사람의 삶 속 아주 중요한 부분에 대해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대함은 우리를 타인의 긍정적인 웰빙(positive well-being)을 증진시키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과 관계 맺는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덕으로서의 관대함은 인간을 가치를 창조하며 그들의 삶을 형성해내는 행위자로 여기고, 기본적으로 약하거나 상위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죄악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 세계관에서 근본적인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만약 정의가 매우 부풀려진 것이라면, 그것은 타인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선이 완전히 규정되어 있고, 선을 위해 요구되지 않는 모든 것은 금지된 사회 세계 -일종의 고도로 규제된 영혼의 경제 체제- 를 구성한다. 반면에 관대한 행위는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다. 관대함을 중요한 other-regarding 덕으로 여기는 정도에 따라, 한 사람이 타인과 맺는 윤리적 관계들은 도덕적 자유의 영역이 된다.


-레퍼런스-

Aquinas, Thomas 1948 [ca. 1273]. Summa theologica, trans. Fathers of the Dominican Province. New York: Benziger Bros. (Esp. 1a 2ae: Question 117.)

Aristotle 1985. The Nicomachean Ethics, trans. Terence Irwin. Indianapolis: Hackett. (Esp. Book IV, Ch. 1 = 1119b–1122a.)

Descartes, René 1989 [1649]. The Passions of the Soul, trans. Stephen H. Voss. Indianapolis: Hackett. (Esp. Articles 156, 159, 161.)

Nietzsche, Friedrich 2006 [1883–5]. Thus Spoke Zarathustra, ed. Robert Pippin, trans. Adrian del Caro.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sp. Part I, Ch. 22: “On the Gift-Giving Virtue.”)

Spinoza, Baruch/Benedictus de 2005 [1677]. Ethics, trans. Edwin Curley. London: Penguin Books. (Esp. Part IV, Propositions 37 and 50–73.)

Further Readings

Hunt, Lester H. 1975. “Generosity,”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vol. 12, pp. 235–44.

Hunt, Lester H. 1997. “The Unity and Diversity of the Virtues: Generosity and Related Matters,” in Lester H. Hunt, Character and Culture. Lanham, MD: Rowman & Littlefield, pp. 55–87.

Kupfer, Joseph 1998. “Generosity of Spirit,” The Journal of Value Inquiry, pp. 357-367.

Machan, Tibor R. 1998. Generosity: Virtue in Civil Society. Washington, DC: The Cato Institute.

Schrift, Alan, ed. 1997. The Logic of the Gift. New York: Routledge.

Wallace, James 1978. Virtues and Vic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Esp. Ch. 5: “Benevolence.”)

White, Richard 2016. “Nietzsche on Generosity and the Gift-Giving Virtu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pp. 348-364.


출처: http://lesterhhunt.blogspot.com/2018/07/generosity-why-is-it-much-more.html


Generosity: Why Is It Much More Important to Some Philosophers that to Others?
This is an article I wrote for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Ethics . I think its interest goes beyond the purely academic, so I'm p...
lesterhhunt.blogspot.com


PS. Other-regarding virtues는 '타자와 관계된 덕' 혹은 '타인을 고려하는 덕' 등으로 번역됩니다. 전통적으로 Other-regarding virtues는 Self-regarding virtues의 대립항으로 여겨집니다. 글쓴이가 어떤 텍스트를 읽고 위의 텍스트를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가 읽어본 논문 중에선 다음의 논문들이 위의 논의의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Taylor, G., & Wolfram, S. (1968). The self-regarding and other-regarding virtues. The Philosophical Quarterly (1950-), 18(72), 238-248.

Slote, M. (2005). Self-regarding and other-regarding virtues. In Virtue ethics and moral education (pp. 95-105). Taylor and Fran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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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대략 5-1까지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네요.

그런데 저자가 "현대 복지 국가 리버럴리즘과 기독교 세계관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상이 어떤건지 궁금하네요. 특히나 만약 저자가 이러한 관대함에 기반한 윤리관이 실제로 우리 현대 사회에 적합하며,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요.

이게 우려가 되는 점은, 저자가 문단 2에서 직접 언급한 것처럼 관대함이 최고의 덕으로 기능하는 사회는 서구 전통 귀족주의 사회 말고는 잘 상상이 안 가기 때문입니다. 저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전근대의 귀족주의적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니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그래 옳지!'했겠습니다만) 과연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어떤 함축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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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글 이외에는 저자인 Lester hunt가 쓴 관대함 혹은 덕윤리 관련 글을 안읽어보아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저자가 니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다보니, 그가 말하는 관대함 개념은 니체의 "베푸는 덕"과 매우 흡사하거나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에서 소개하자면, 니체적 의미에서 관대함(=베푸는 덕)은 "베푸는 이기심", "베푸는 사랑"과 동의어입니다. 그것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스스로 제물이 되고 증여물이 되고자하는 갈망.
  • 만족을 모른 채 끝없이 베풀려 하기 때문에 만족을 모른 채 끝없이 보물과 보석을 갈구한다.
  • 사랑의 선물로 삼아 자신의 샘에서 흘러나가게 하기 위해 모든 가치를 강탈해내거나 일체의 사물을 강제하여 자신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 보다 높은 종을 향함.

이것의 반대항으로 제시되는게 "병든자들의 이기심" (동의어로는 "가난하여 굶주린 이기심", "질병", "퇴화", 도둑같은 탐욕")입니다. 이들의 특성으로는 다음이 있습니다.

  • 단지 훔치려고만 덤벼드는 이기심.
  • 도둑의 눈을 하여 광채를 내는 모든 것을 눈여겨 보며, 허기를 면할 욕심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히 갖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헤아려본다.
  • 베푸는 자의 식탁 주변을 어슬렁댄다.
  • "모든 것은 나를 위해"라고 말하는 구차한 소견

저같은 경우엔 니체가 찬양하며 말하는 '관대함'이 (개인주의로 알려진) 니체 철학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영합하지 않는 철학으로 만들어주고, 그를 공동체 철학으로 정립해주는 중요한 단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베푸는 이기심"이 등장하는 구절에 한하여 본다면, 그것이 현실 계급 구분을 수반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도 wildbunny님 말씀처럼 이것이 "복지 국가 리버럴리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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