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입장들 사이에서 고민한다. 각각의 윤리학적 입장에 따라 정의는 '응분의 몫(desert)'을 받는 문제라고 설명되기도, 양도할 수 없는 '인권(human right)'의 문제라고 설명되기도,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의 문제라고 설명되기도, '공리(utility)'의 문제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들은 많은 경우 서로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들 사이에서 어느 입장이 다른 입장에 비해 더 따를 만한지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충성심(allegiance)을 설명하기 위해 경쟁하는, 정의에 대한 대립하며 양립 불가능한 주장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가?"(MacIntyre, 1988: 2)
2. 합리성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
무엇이 '정의(justice)'인지를 평가하는 문제는 무엇이 '합리성(rationality)'인지를 평가하는 문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우리는 정의에 대한 각각의 입장이 지닌 정당성이 합리적으로 해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 정의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어떠한 합리성이 실천 속에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MacIntyre, 1988: 2) 다만, 합리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만큼 해결하기가 어렵다. ""[……] 이러한 것[합리성]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즉시 합리성 일반의 본성과 실천적 합리성에 대한 논쟁이 정의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다면적이고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부딪힌다."(MacIntyre, 1988: 2)
3. 우리를 지배하는 두 가지 입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의와 합리성에 대해 지닌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번째 관점은 근대의 학문적 철학을 통해 주어진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우리가 지닌 모든 당파성, 편애, 편파성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주어진 사안을 평가하는 능력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가치중립을 표방한 채 실제로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liberal individualism)'가 제시하는 합리성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전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두 관점이 근본적 불일치를 지닌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 관점은 믿음을 공유하거나 정치적 연대를 맺고 있는 조직화된 공동체를 통해 주어진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집단에 의존하는 개념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입장은 합리적 논증에 대해 애초에 냉소주의적 태도를 취할 뿐만 아니라, 소위 '합리적 논증'이라고 불리는 활동이 특정한 집단이 지닌 권력에 호소하는 수사적 기술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4. 계몽주의와 그 이후의 역사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그 후계자들은 합리적 정당성을 평가하기 위한 의심할 수 없는 원리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일치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계몽주의는 합리적 정당성을 개별적 사회와 문화의 개별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한 나머지 '전통(tradition)'이라는 개념이 지닌 중요성을 망각하고 말았다. "나는, 계몽이 우리로 하여금 거의 보지 못하게 만든 것, 그래서 우리가 이제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전통에 내재된 합리적 탐구의 개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곧 합리적 정당성의 기준들이 그 자체로 역사로부터 출현하며 그 역사의 부분이라는 개념 말이다. 이러한 역사에서 그 기준들은, 동일한 전통의 역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전 모델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고 그 결함에 대해 치유책을 제공함으로써 입증된다."(MacIntyre, 1988: 7)
5. 합리성과 전통
우리는 합리적 정당성을 전통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합리적 정당성에 대한 탐구는 다음의 네 가지 사안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 합리적 정당성은 역사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특정한 이론이 자신의 전통 속에서 이전 이론에 비해 우위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이야기(narrate)하는 방식으로 합리적 정당성을 해명해야 한다. 전통을 벗어나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받아들여지는 합리적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허구적이다.
(2) 교의, 논제, 논증 역시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계몽주의는 진리와 합리적 정당성을 역사와 상관 없는 무시간적(timeless) 사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특정한 사유가 어떠한 상황에서 제시되었는지, 어떠한 과정에서 발전하였는지, 어떠한 입장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배경이 해명되지 않고서는 그 사유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
(3) 하나의 '합리성'이 아니라 다양한 '합리성들'이 존재하고,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갈등의 해결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전통 사이의 갈등은 전통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합리적 탐구의 전통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다양성의 문제가 혁파되지는 않지만, 그 문제는 해결되기 쉬운 방식으로 변형된다."(MacIntyre, 1988: 10)
(4) 전통으로 구성되고 전통을 구성하는(tradition-constituted and tradition-constitutive) 합리적 탐구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역사에서 등장한 실제 사유의 흐름을 통해 합리적 탐구를 다루어야 한다.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 계몽주의, 자유주의는 오늘날 우리 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구성하였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대립/동맹/결합하였으며, 여전히 매우 상이한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