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입문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과 <계몽의 변증법> 에 관한 내용에 흥미를 느껴서 아도르노를 입문하려고 합니다.

아마 <계몽의 변증법>, <미니마 모랄리아>, <부정변증법> 정도를 읽게 될 것 같은데, (1) 이차 문헌을 먼저 읽어야만 할까요? 원저를 바로 읽는 것이 더 잘 되는 사람이긴 한데(이차 문헌에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네요...) 아도르노의 경우 어떤가요? 이차 문헌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가요?
(2) 위의 세 책 중에서 어떤 책부터 읽는 게 좋은가요?

개인적으로는 <계몽의 변증법>부터 읽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것의 <서문>과 <계몽의 개념>이 아도르노 사상 전체를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어렵지만서도 요약본에선 느낄 수 없는 원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읽어본 참고서로는 "이성(조상식)",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한상원)", "비판이론의 예술 이해(김문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사회 비판 대안)", "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이순예)", "독일미학전통(신혜경), "예술과 사회 이론(정우진)" 가 있습니다. 아도르노에만 집중해 볼것이라면 한상원, 이순예의 것이 낫겠고, 하나의 흐름 속에서 아도르노를 볼것이라면 조상식, 사회비판대안이 좋겠고, 미학과 관련해서 볼것이라면 김문환, 신혜경, 정우진이 좋겠습니다. 다들 괜찮은 책인데 분야별로 굳이 하나씩만 꼽자면 한상원, 조상식, 김문환의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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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차문헌을 먼저 읽으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아도르노 철학은 유독 철학적 배경지식을 많이 요구하는 철학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칸트, 헤겔 등의 고전 독일철학, 마르크스, 루카치 등으로 이어지는 비판적 사회철학, 후설, 하이데거, 셸러 등의 현상학, 니체나 프로이트에 베버, 뒤르켐 같은 사회학 이론까지 광범위한 저서들을 원용하는데다가, 아도르노 자신이 이런 이론들에 관한 별다른 설명을 하지도 않아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다가 막혀서 이해를 못하거나 완전히 오독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물론 이런 배경들을 모조리 공부하다가는 아도르노를 못 읽기 때문에, 아도르노를 공부하다가 낯선 개념이 나오거나 할 때 해당 부분에서 아도르노가 전제하고 있는 철학적 배경들을 공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차문헌은 sophisten님께서 잘 말씀해주셔서, 다음의 두 권만 덧붙입니다.

이순예,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문병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읽기』

(2) 난이도의 측면에서는 단적으로 『미니마 모랄리아』가 다른 두 책보다 쉽습니다. (악명이 높은 『계몽의 변증법』과 『부정변증법』에 비해 『미니마 모랄리아』는 '독일 국민의 철학책'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입니다.) 다만 이 책이 아도르노 철학의 전모를 살펴보기 위해 좋은 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니마 모랄리아』는 단상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저작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단연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아도르노 저작 전반에 나타나는 철학적 주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저작의 독해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책의 첫 챕터인 「계몽의 개념」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쓰기 스타일로 보나 배경지식의 요구도로 보나 굉장히 어렵습니다만, 그 글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부정변증법』 같은 다른 저작들로의 접근이 가능해집니다. 혹 『부정변증법』을 읽고 싶으시다면, 「계몽의 개념」에 더해 하이데거, 칸트, 헤겔에 관한 지식을 기초적으로나마 익히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실은 이차문헌보다도 강의를 찾아 듣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으나, 대학이나 대학 밖 아카데미들 중 『계몽의 변증법』을 강독하는 수업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안으로 앞서 추천드린 문병호 선생님의 『계몽의 변증법』 해설서를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서문」과 「계몽의 개념」을 정리해둔 글도 올빼미에 있는데, 이건 그냥 적당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Ps. 참, 『부정변증법』 관련해서 아도르노 자신의 강의록인 『부정변증법 강의』가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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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헤겔님 댓글 읽다가 생각났는데, 한상원쌤이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발간할 때 특강한게 유튜브에 남아있긴합니다. 강독이나 강의는 아닌데 관심을 돋구기에는 충분다고 생각합니다. 책 제목 검색하시면 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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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게 있었군요! 덕분에 새로운 자료를 얻어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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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하고 논문을 빼먹었는데, 문성훈의 <현대성의 자기 분열-개별적 자아의 해방과 보편적 이성의 실현>이랑 정진범의 <자기보존의 역설과 그 사상적 기원>이 참 좋은 논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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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주요 저작들 (<계몽의 변증법>, <미니마 모랄리아>, <부정변증법>, <미학이론>) 국역본들의 번역 수준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독일어 원전을 대조할 수 없으면 영역본이라도 대조해서 읽어야 합니다.

<계몽의 변증법>은 국역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Edmund Jephcott 가 번역한 두 번째 영역본과 Robert Hullot-Kentor 가 '부연 설명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만 영역한 것을 추천합니다. 후자는 New German Critique, No. 56, Special Issue on Theodor W. Adorno (Spring - Summer, 1992), pp. 109-141 에 실려있습니다. Edmund Jephcott 가 영역본 끝에 단 'The Position of "Dialectic of Enlightenment" in the Development of Critical Theory' 라는 제목의 Editor's afterword 도 추천합니다.

<미니마 모랄리아>는 국역본이 두 개인데, 김유동 번역이 더 낫습니다. 영역본은 Edmund Jephcott 가 번역한 공식 영역본과 Dennis Redmond 가 번역한 비공식 영역본이 있습니다. 둘 모두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공식 영역본은 웹검색하면 나옵니다.

<부정변증법>은 국역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역본은 E. B. Ashton 이 번역한 공식 영역본과 Dennis Redmond 가 번역한 비공식 영역본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호합니다. 비공식 영역본은 웹검색하면 나옵니다.

<미학이론>은 홍승용이 번역한 풀 국역본과 방대원이 번역한 부분 국역본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홍승용 국역본은 완전 풀 국역본이 아닙니다. 독일어 원전과 영역본에는 포함되어 있는 다음 세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대원 부분 국역본에는 'Ästhetische Theorie - Frühe Einleitung'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Paralipomena'
'Theorien über den Ursprung der Kunst'
'Ästhetische Theorie - Frühe Einleitung'

<미학이론> 영역본은 두 개인데, Robert Hullot-Kentor 가 번역한 두 번째 영역본이 상당히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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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강의 노트들 국역본의 번역 수준은 아도르노의 주요 저작들 국역본의 번역 수준보다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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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아도르노에 입문할 것을 권합니다.

  1. 독일어 원전 아니면 영역본이라도 반드시 참조해 <계몽의 변증법>의 '계몽의 개념'과 '부연 설명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에 도전합니다.

  2.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서 아도르노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분들의 아도르노 관련 한글 논문들을 찾아 읽습니다. 독일어 실력도 훌륭하고고 독일 유학도 다녀왔지만 아도르노나 철학을 전공한 것은 아닌 분들과 전공이 무엇이었던 '아주 오래 전'에 독일 유학을 다녀온 분들의 아도르노 관련 논문들은 읽을 필요 없습니다.

  3. 최근에 개역 국역판이 나온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을 읽습니다. <계몽의 변증법>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같이 쓴 책이고 호르크하이머가 <도구적 이성 비판>을 쓴 시기는 두 사람이 <계몽의 변증법>을 쓴 시기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고 <도구적 이성 비판>의 구문은 평이한 편이니 <도구적 이성 비판>은 <계몽의 변증법>의 최상의 입문서일 수 있습니다.

  4. Andrew Bowie 의 Theodor W. Adorno: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2022) 를 읽습니다.

  5. 게르하르트 슈베펜호이저,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 (에디투스, 2020) 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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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cittaa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계몽의 변증법>>을 먼저 읽으시되, 가능한 한 영역본을 대조해서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외에 2차 문헌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지만 출간된 아도르노의 강의록을 읽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상대적으로 쉽고 재밌습니다.

논문으로는 한상원 선생님, 정진범 선생님의 논문들을 추천합니다. 제가 아는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서 아도르노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분들“이십니다. 정진범 선생님의 경우 강의록 <<도덕철학의 문제>>를 번역하셨으며 아도르노의 도덕철학에 관해 면밀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시는 연구자이시므로 그쪽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선생님의 논문을 찾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계몽의 변증법>>에서 도덕철학과 관련된 장은 칸트와 사드를 다루는 <부연설명 2>이므로, 여유가 되신다면 윗분들이 말씀해주신 핵심 부분과 함께 읽으시면 아도르노 도덕철학의 기본 기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cittaa님의 댓글로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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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글로 아도르노를 접할 경우 하버마스 자신의 비판적 입장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에 주의하며 읽어야 합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아도르노 철학이 "터무니없는 관념론"이라고 칭해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버마스가 보기에 아도르노 철학은 "의식철학 패러다임의 소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도르노 철학은 종래의 비판적 사회철학이 비판의 준거를 상실했다는 징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도르노에 이르러 비판의 대상은 사회나 이성의 일부분이 아니라 이성 전체 혹은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고, 그런 이유로 아도르노 자신이 비판의 기준으로 삼을 최소한의 이성적, 규범적 근거도 없어졌습니다. 그 귀결로 끝없는 부정의 정신(『부정변증법』)이나 예술에의 호소(『미학 이론』)만이 남았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입장입니다. 하버마스의 진단에 따르면, 이처럼 사회비판이 자기모순에 빠진 이유는 종래의 이성 개념이 이성을 인간 의식이나 주체(개별이건 집단이건)의 능력으로 보는 의식철학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사회비판의 새로운 토대는 의식철학에서부터 의사소통적 철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함으로써 마련됩니다.

하버마스 이론 내에서는 그럴듯한 해석이고, 하버마스가 조리있게 글을 잘 쓰다 보니 이해도 잘 되지만, 아도르노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하버마스의 아도르노 독해는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일단 아도르노 입장에서 어떤 준거를 비판의 토대로 삼지 않아도 이성의 자기비판이라는 작업이 성립된다는 반론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게다가 하버마스가 비판이론의 새로운 준거로 내세운 '의사소통행위'라는 개념도 비판적으로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개념입니다(대표적으로 로티가 제시했던 반론에서 비판점이 잘 드러납니다). 이 점에서 하버마스의 서술은 다소 주의하며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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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과 "의식철학" 사이에 날카로운 잣대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만 덧붙이겠습니다. 두 개념은 의미가 다릅니다. "의식철학"은 합리성 등을 의식-대상 관계를 바탕으로 설명하려는 패러다임이고, "관념론"은 (아주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사물들이 주체에 의존적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관념론 아닌 의식철학이 있을 수 있고(예컨대 로크), 의식철학 아닌 관념론(언어적 관념론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단어선택에 미스가 있으셨던 것이라면, 답글에 다신 대로 "관념론"을 "의식철학"으로 대체하시면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나머지 이야기에 관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부정했던 적도 없습니다. 하버마스의 해석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해석을 접할 때에 주의점을 환기했을 따름입니다. 제가 무엇을 오독하고 있다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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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신간나왔길래 댓글로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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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도 알게되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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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 교수님, 요즘 아도르노 일타 강사가 되신 것 같네요. 유튜브에 『부정 변증법』을 소개한 강연 동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시간 되면 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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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도교수가 같아서 한 선생님을 알게됐는데, 왕왕 진행하시는 대중 강연을 통해 알게 되신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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