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질문

공포중에 종속감에 대한 공포나 감정적 반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마치 오이디푸스처럼 되거나 자기가 단점이라고 암묵적이게 생각해뒀던 무언가가 가끔 올라와
극단적 상황까지 처해지거나 뭐 암튼 그럴때가 있을때가 도대체 어떤 현상인지 궁금합니다.
예? 설명해주세욜!
(물론 쇼펜하우어도 그랬지만 감정은 추상화, 이성적으로 인식될 수 없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하지만 적절한 연역적 설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오로지 현상중 하나가 아닌, 어떤 정신의 도야적인 면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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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오해는 안했습니다만 지금 한국 대학이 공부하는 철학 상황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걸 수도 있네요. 심리학자나 그런 곳은 신경증만 막으려하고 중용만 답이라고 생각하는 금욕주의자나 무슨 고대의 학파같아서 딱히 찾을 마음은 없습니다.
전 그냥 잡념같은 질문 하나 해본거고 철학이 이런 질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그 사람이 학과나 받은 학위만 철학이지 막상 한일은 문헌학자와 다를게 없을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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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철학원'이나 '인생 철학'에 들어가는 '철학'은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이 기원전 6세기가 아니니 개인적인 기분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궁금증은 심리상담사에게 문의하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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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아카데믹한 철학적 활동들을 문헌학과 구별할 생각이 없으시고 대학 밖에 '진정한 철학'이 있다고 믿으신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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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이게 생각해뒀던 무언가가 가끔 올라와 극단적 상황까지"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정신분석학적인 것 같습니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보게 된다면 가장 무해할 것 같았던 꿈의 내용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의식이 우리의 쾌락을 향해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즉, 꿈을 꿀 때 우리를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무의식은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가장 무해하게, 직설적이지 않게 돌리고 돌려서 표현한다고 볼 수 있겠죠.

프로이드의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는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기존의 쾌락 법칙은 우리의 무의식이 행복을 느끼기에 그것을 반복한다는 법칙 (Freud - Studies on Hysteria, Interpretation of Dreams등이 잘 말해줍니다) 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프로이드는 저 책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 우리에게 같은 것을 반복시킨다고 하죠. 그래서 저 책의 기준으로 Studies on Hysteria 혹은 도라로 유명한 케이스 스터디를 보게 된다면 (도라에 대한 연구는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전에 나왔습니다. 쾌락 법칙에 의거한 연구죠) 도라의 반응이 성적인 흥분을 위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다시 대비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만일 이 생각을 말씀하신 것에 대입하게 된다면, 우리가 트라우마로 여겼던 것들이 우리에게 올라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게 되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반복하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죠. 이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혹은 전통적인 철학의 해석) 것을 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리딩도 추천해드립니다:

들뢰즈 - 차이와 반복 (여기서 반복은 아모르 파티와 트라우마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젝 - Less than nothing (지젝이 크림 없는 커피와 그냥 커피가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이것이 어떻게 트라우마겠습니까? 크림을 잊지 못한 커피가 어떻게 커피와 다른지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전반적인 철학과 정신현상학의 연결점을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과 같은 책을 추천드립니다:

Lear - Freud
Gardner - Irrationality and Philosophy of Psychoanalysis (네, 그 칸트 가드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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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것이 꿈하고도 연관이 있군요, 정신분석하고는 어느정도의 관계가 있을 줄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데 철학도 나름의 해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죠. 철학은 개념을 만드는 일이라고 들뢰즈도 말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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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요즘 철학에서도 굉장히 핫한 이슈죠. 19세기 20세기에서 헤겔과 마르크스 등으로 우리는 자기 규정성, 즉 규정하는 것과 규정되는 것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정신분석학은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죠. 무의식이 우리를 규정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의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프로이드의 에세이 Negation 도 추천합니다. 굉장히 짧아서 금방 읽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규정짓는 것과 우리가 다르다고 계속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무의식의 규정을 반복하게 되죠 (니체의 아모르 파티,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연결된 이유겠죠). 인간의 본질이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와 다른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우리의 자기 규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꿈하고도 연관이 있죠. 이것에 대해 헤겔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면, 꿈은 무의식이 나타나는 곳인데, 무의식은 의식이 아닌 것이죠? 우리가 잘 때 의식이 꺼지기 때문에 무의식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무의식은 꿈에서만 나타남으로써 철저하게 숨겨진, 우리의 의식이 아닌 것으로써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또 재밌는 일이 일어납니다. 1917년 Mourning and Melancholia 라는 프로이드의 에세이를 보게 되시면, 우리가 깨있을 때도 무의식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 보이죠. 이것과 세계대전에서 트라우마를 보게 되면서 프로이드가 무의식을 단순히 "의식이 아닌 것," 즉 의식이 없을 때만 보이는 "무"의식이 아닌 이드와 자아 (ich 영어 번역이 ego로 돼서 한국어로도 자아로 됐지만, "나"에 가깝습니다. 칸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Longuenesse - Freud and Kant on I 도 좋습니다.) 의 차이로 끌고가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여기서 이드는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며, 자아는 규정당하는 것, 즉 단순히 의식 대 무의식이 아닌 우리를 규정하는 것과 우리의 차이로 나눠지며 본격적인 자기 규정에 대한 카운터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변화와 헤겔에 대한 접점이 보고 싶으시다면 ,Green - The Work of the Negative 추천드립니다. 현재 핫한 헤겔/정신분석학의 포문을 연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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