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전통적인 철학사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들뢰즈이기에 더 흥미롭게 읽히는 인터뷰이기도 하네요.
이건 @TheNewHegel 님께서 말씀해주신 해설과는 어느 정도 독립적이긴 하지만, 사실 '철학사를 공부한다'는 표현은 좀더 깊게 헤아려봐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교양 과정 이후의 '철학사' 훈련이란 곧 '원전에 대한 개선된 해석 및 주석을 제시'하는 훈련, 즉 '이 원전의 진의는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주희가 4서에 대한 체계적인 집주를 내놓고, 들뢰즈 자신이 여러 철학자들에 대한 독창적인 주석을 제시한 것처럼요. 그리고 이런 과정은 '기존 학계에서 이해한 바 원전의 내용을 학습'하는 것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활동 같습니다.
들뢰즈의 '색을 다루기'라는 비유는 꽤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라는 잘 알려진 비유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구요.
그런데 이때 의문은 '색을 다룰 자격'을 얻기 위해선 '기존 원전 해석에 대한 충실한 학습'만으로도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원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제시'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여부인 것 같습니다. 만약 전자가 옳다면 '철학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타 분야에서의 '선행 연구 숙지'와 크게 맥락이 다르지 않겠지만, 후자가 옳다면 그 양상은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이는 그저 고담준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의 커리큘럼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정답은 양 극단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저 또한 나름의 소견은 있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