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까지의 현상학저서 참고

안녕하세요. 요즈음 현상학을 독학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서강올빼미에 와서 많은 것을 가지고 가서 매우 기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언제나 감사드리고 오늘도 역시 현상학질문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 1927년에 출판됬는데 그 이전까지 발표된 후설의 저서는 논리연구,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내적시간의식의 현상학강의, 이 정도가 있는데 이들이 하이데거의 존재의 현상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느정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6권을 읽으려는데 -논리연구는 읽는 중-어떤 식으로 읽어 나 갈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전공자분들께 어떤 독해가 올바른지 여쭙고 싶습니다. 2차서적은 현상학과 해석학이나 여타 다른 저서를 어느정도는 읽었습니다. 다만 원전을 오독하지 않기 위한 조언이나 경험 부탁드립니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 읽는 부분중 하나를 사진으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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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설의 텍스트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위한 사유의 씨앗들을 곧바로 발견하기는 어려우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a) 하이데거가 직접 후설의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분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하이데거는 「현상학에 이르는 나의 길」이라는 말년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논리연구』의 제6연구에 등장하는 '범주적 직관' 개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매우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있어서, 하이데거가 어떤 맥락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전유하였는지를 하이데거의 텍스트만으로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b) 후설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극렬히 비판하였다는 점도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한때 후설은 자신과 하이데거의 작업만이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하게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정도로 하이데거를 아꼈습니다. 그렇지만 후설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항목을 하이데거와 공동으로 작성하면서 그와 크게 갈등하게 되고, 『존재와 시간』이 출간되고 나서는 하이데거의 사유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게 됩니다. 하이데거가 현상학을 단지 '인간학'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할 정도로 말입니다.

(c)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자신이 결코 후설의 현상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는 심지어 『현상학의 근본 문제들』이라는 유명한 강의에서 자신의 '현상학적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 우리는 사태상으로가 아니라 순전히 낱말 발음상으로만 후설 현상학의 한 핵심 용어와 연결되는 것이다."(마르틴 하이데거, 『현상학의 근본 문제들』, 이기상 옮김, 까치, 1994: 45)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과연 같은 '현상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는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조차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텍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곧장 해명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말 그대로 철학사적 연구와 해석의 사안입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후설의 현상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철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연구자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후설의 현상학을 철저하게 계승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허버트 스피겔버그는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A Historical Introduction라는 대단히 권위 있는 현상학사 연구서에서 이렇게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현상학 운동의 역사 속에 어느 정도까지 정당하게 포함되는가? 이 질문은, 지금 하려는 작업을 위해서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보통은 제기되지도 않으며, 또한 쉽게 대답될 수조차 없다. 일반적인 이야기는, 특별히 외부인들에게는, 이렇다. 즉, 하이데거는, 후설 자신의 추천에 따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후설의 자리를 계승한 것으로 증명되듯이, 후설의 적법한 계승자이며,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의 정당한 발전을 대표하며, 현상학에 대한 옹호나 비판은 하이데거의 작품 속 논리적 결과를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결정될 수 있다. 하지만, 후설이 하이데거의 사유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였다는 추가적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는 아마도 현상학을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하이데거를 단지 ‘정통’ 현상학을 오염시킨 인물이라거나 배신한 인물로 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H.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A Historical Introduction ,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4. 339)

그래서 텍스트를 꼼꼼하게 살펴 보시되, 텍스트만으로 후설과 하이데거의 관계가 곧바로 해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철학사 연구가 그렇듯이, 이 주제에서도 하나의 답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연구자의 관심사나 배경이 무엇인지에 따라, 후설과 하이데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명될 수 있습니다. 텍스트를 '오독'하는 문제보다도 특정한 해석적 입장에 '경도'되는 문제에 주의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국내에서 유럽철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다른 연구서들은 싹 무시하고서 본인 혼자 '원전 독대'를 하다가 자신의 해석만이 전부인 것처럼 특정 해석에 '경도'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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