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라벤스크로프트, 『심리철학-초보자 안내서』 12장 “현상적 의식” 문제풀이

드디어 모든 장의 문제풀이를 끝냈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 박수~~~


  1. 두 종류인 지식 논증의 개요를 서술하시오.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이 있다. 메리는 천재 과학자이지만 흑백으로만 모든 사물이 보이는 방에서 양육됐다. 그녀는 색체 시각에 관련된 물리적 지식을 모조리 배웠다. 그런데 그녀는 흑백방에서 나가 붉은 토마토를 보게 되고, 이렇게 말한다. “와! 나는 이제 붉은 듯 보인다는 그것을 알게 됐다.”

이 사고실험에 기반에 다음과 같은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1) 메리는 색에 관한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안다.
(2) 그녀는 토마토를 보고 감각질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3) (1), (2)에 의해 감각질은 비물리적 속성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논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메리는 감각질에 대한 명제적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할 능력지를 얻었을 뿐이다. 따라서 감각질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고 물리적 사실과는 다른 새로운 명제지를 획득한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잭슨은 논증을 변형한다.

(`1) 메리는 방에서 나오기 전, 다른 사람에 관해서 알아야 할 모든 물리적 지식을 습득했다.

(`2) 메리는 방에서 나와 토마토를 보고 타인이 어떤 식으로 시각 경험을 갖는지를 알게 됐다.

(`3) 메리는 타인에 관해 알아야할 모든 것을 안 것은 아니다.

(`4) 물리적이지 않은 타인에 관한 진리가 있으므로, 물리주의는 틀렸다.

  1. 감각질에 관한 잭슨의 논증을 간단히 서술하시오.

잭슨은 지가 지식 논증으로 감각질을 부수현상이라고 해놓고 나중과서 자기 입장을 뒤집는다. 그 주된 논거는 “반론의 필요성” 반론이다. 간단히 말해 메리 이야기에서 우리는 (A) 감각질이 부수현상이거나 (B) 감각질이 물리적 속성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각질에 대한 부수현상론을 받아들일 경우 감각질이 다른 신념을 형성하거나 행위를 유발하지 못한다는 이상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B)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논증은 상당히 허접하다. 부수현상론자들은 애초에 지식 논증이 비물리적 속성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므로 설명력의 문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이고, 또 속성 이원주의자 중 부수현상론을 거부하는 입장에서는 잭슨이 설정한 구도가 거짓 구도라고 항변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증은 큰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1. 고통-좀비란 무엇인가? 이를 이용한 논증은 설명간격에 관한 주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우리는 우리와 동일한 뇌를 가지고 있고, 고통스러울만한 상황에 고통을 가진듯한 행위를 하면서도 고통 경험을 가지지 않는 고통-좀비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고통-좀비가 가능하다면, 고통을 담당하는 상태의 속성과 고통스러움을 동일시할 수 없다. 즉, 둘을 동일시함으로써 설명을 하려고 할 경우 오히려 고통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간극에 빠지게 된다.

  1. 현상적 속성을 두뇌 속성과 동일시하면 설명간격이 메워지는가?

교과서에 따르면 고통스러움이 두뇌 속성 P와 동일하다고 할 경우, 우리는 두뇌 속성 P가 왜 가려움 등 다른 경험이 아닌 고통스러움을 유발하는지, 어떤 면에서 두뇌 속성 P가 고통스러움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고통스러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문제제기가 별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뇌과학이 발전하면 c-섬유의 활성화 정도나 여러 다른 방식에 따라 고통스러움과 속성 P가 왜 법칙적으로 연결되는지, 다른 경험은 어떤 속성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구분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뇌과학자와 동일론자들의 책임이겠지만, 이것이 물리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보긴 어렵다.

  1. 결여된 감각질 사고실험과 전도된 감각질 사고실험을 서술하시오. 이런 사고실험이 기능주의에 어떻게 도전하는지 설명하시오.

기능주의에 따르면 심적 속성은 물리계 내에서 인과적 역할과 동일시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대로, 고통 역할을 하는 두뇌를 갖고 있지만 고통 경험을 하지 않는 고통-좀비가 가능할 경우 기능주의는 타격을 입는다. 이것이 바로 결여된 감각질 사고실험이다. 다른 한편 전도된 감각질 사고실험의 경우 상현은 피를 보고 “빨갛다”라고 하고 하늘을 보고 “파랗다”고 하지만 실은 붉음의 감각질이 하늘에 적용되고, 푸름의 감각질이 피에 적용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도된 감각질을 가진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색채 간의 관계 속에서 감각질이 전도된다면 다른 색과의 유사관계와 같은 문제들이 전부 바뀌기 때문에 색에 관한 기능도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고실험은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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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혼자서 라벤스크로프트의 책을 읽어서 그런지 물어볼 곳이 없어 애먹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개인적으로 심적 인과에 관한 논의(9장이었나요?)를 읽을 때부터
"이러한 탐구는 잘 설계된 실험을 통해 파악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thinking:
이런 논의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뇌과학-신경과학 등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eric님께서는 위와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이 없으셨는지 궁금하네요...!:raised_hands:t2:

요약정리 해 놓은 파일을 복습하면서 eric님의 답안이 내용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astonished::+1:t2:

(방학 때 한번 더 심리철학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책을 읽어볼까 하는데 무슨 책을 보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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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질문을 두가지로 이해했습니다. (1) 심적 인과에 대한 연구는 잘 설계된 과학작 실험을 통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2) 심리철학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공부를 위한 책이 무엇인가?

먼저 (1)에 관해서는 맥긴의 말을 빌리고 싶습니다. 맥긴은 자신의 책 <<신비적 불꽃>>에서 "우리는 과학을 통해 박쥐의 인식 방법에 대해 탐구할 수는 있지만, 박쥐의 사물 인식 경험을 과학으로 배울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의식이나 감각질 같은, 물질과는 그 본성이 매우 다르면서도 물질과 분리되지 않는 이 특이한 대상과 속성들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과학적 탐구가 아무리 발달해도 쉽게 해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2)에 관해서는, 제가 심리철학을 그렇게 많이 공부한건 아니기 때문에 심리철학의 일반적인 동향이나 경향에 대해 언급하기 보다는 제가 관심있는 주제와 그에 맞는 저서를 소개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심리철학에서 김재권의 강한 수반과 데이비슨의 약한 수반 사이의 논쟁에 관심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정신적 사건이 물리적 현상에 수반하는데 있어 법칙적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강한 수반의 지지자고, 법칙적 연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쪽이 약한 수반의 지지자인데, 저는 데이비슨의 약한 수반을 지지하며 이에 관한 저서들을 보고 있습니다.

난이도가 사실 꽤 높겠지만 관심 있으시면 김재권의 <<수반과 심리철학>>, 데이비슨의 <<행위와 사건>>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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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수박수!!

(2) 부수현상론에 대한 잭슨의 바뀐 견해를 요약해주신 것이 맞다는 가정 하에, 저는 이 논증이 허접하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부수현상론자들이 "부수현상적 감각질이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설명도 내어 놓지 못한다면 그게 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 혹은 의식을 해명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마음 혹은 의식과 행위의 관계를 포착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철학자들이 예전처럼 마음과 두뇌가 같은 것이냐 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묻는 심신 인과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구요.
그 점에서 잭슨이 부수현상적 감각질이 다른 신념을 형성하거나 행위를 유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은 적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색감이 부수현상적 감각질이라면 바로 그 감각질을 경험함으로써 취하는 행위(몸을 피한다던지, 운전 중인 차량을 정지하는 등)와 감각질 사이에 인과관계가 해명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3) @FunStudy 심리철학에 관해 여러 주제들과 논의를 아주 재밌게 엮어 놓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심야의 철학도서관』이라는 책인데 추천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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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님, 답변 감사드립니다.

(1) 질문 관련하여 말씀해주신 답변은 충분히 납득하였습니다. 역시 과학적 탐구가 발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다만 신경과학 관련된 배경지식이 심리철학 관련 논의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신기한게 많더라구요...!) 아무튼, 답변 감사드립니다!

(2) 좋은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유가 되는대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읽고 나면 꼭 요약-평가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1: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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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잭슨의 논의가 "허접"하다는 다소 강한 말을 쓴 이유는 잭슨이 본인이 상정하고 있는 구도에서 한발자국도 나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장이 심한 표현이긴하죠)

감각질, 경험 내용, 의식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속성이라고 일견 보기 어려운 현상들에 대해 (1) 물리적 속성이 아닌 것들은 물리계에 인과성을 전혀 지닐수없다. (2) (1)에 의해 정신 현상들은 부수현상이거나 물리적 속성이다. (3) 부수현상론은 물리주의보다 설명력이 떨어지므로 감각질은 물리적 속성이다. 라는 이 논의 과정에서 (1)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것을 문제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는 김재권ㅡ데이비슨 논쟁에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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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It Like to Be a Bat?"과 관련된 주요 논지는, 심리철학 전반이 아닌 이번 장에 다룬 "현상적 의식"과 관련해 기존의 과학적 탐구로 해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FunStudy 님 말마따나 심적 인과는 신경과학적 연구와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상통과 같은 사례가 아니었다면, 감각질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신경과학적 탐구로, 환상통과 같은 특이 사례가 어떻게 일반화될 수 있는지 실험화함으로써 어떤 조건 하에 심적 인과가 상식에서 벗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통적인 철학적 접근으로는 탐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석철학적 접근만 고려할 것이 아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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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심리철학은 이미 수많은 과학적 탐구들과 병행해서 가고 있고, 심리철학에 개념적 논의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 과장이듯 심리철학에서 과학적 탐구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도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심리철학 중에서도 심적인과, 그 중에서도 정신적 속성의 수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는 고민이긴합니다. 일종의 변형된 형이상학적 논의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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