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의 문제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기본적으로, 분석철학은 진리에 대한 방법의 승리/우월적 지위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분석철학이 진리와 전혀 관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며, '방법', '승리'란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각각의 경우에 위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그것이 바로 분석철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겠죠)

제가 이 질문의 이면에서 생각하고 있던 것은 진리탐구라는 철학의 근원적/시원적 목표에 대하여 (언어)분석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영미분석철학의 대척점으로 흔히 상정되는 대륙철학 역시 물론 한계가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다른 유형/방식의 한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 역시 완전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일단 넓은 의미로 철학사를 통해 철학자들이 추구해오던 작업의 궁극적인 대상 내지는 목표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질문에 문제 혹은 어떤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널리 가르침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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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속에 쓰신 질문이 먼저 떠올랐지만, 대략적인 의도를 유추해서 질문을 이해하자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들이 추구해오던 작업의 궁극적인 대상 내지는 목표"가 지시체를 갖는 표현인지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과연 철학자들은 공동의 작업을 해왔던 것일까요? 하나의 거대한 진리라는 것을 위해?

서로 다른 배경이 있어 각자의 작업의 큰 경향을 읽어내는 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몇 가지 말씀을 덧붙입니다. 철학이 진리의 추구, 즉 다른 일반적인 학문들과 같이 참인 명제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과연 21세기 분석철학자들 중에 언어 분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면, 적어도 제 생각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통상적으로 정해진 방식대로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화용론 연구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일상 언어의 올바른 용법" 이상으로 발화자의 의도나 맥락에 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것도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형식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부활은 이미 1970년대에 시작되었고 아직도 진행중이죠. 순수하게 언어분석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다 다룰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더이상 분석철학의 주류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철학이라는 분야에서 개념의 규정을 엄밀하게 하고 세세한 구분들을 하는 이유를 들어보자면 두 가지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역사로부터 배운바, 개념의 불분명함과 언어의 혼란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이 문제이긴 한 것인지 파악하는데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상식적인 이해와 이론적 이해 사이에 균형을 찾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대상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따져보고 그로부터 받아들일만한 이론(과 이론을 구성하는 개념들)을 구축해본 후에 그 이론의 논리적 함축과 우리의 다른 믿음들을 비교해보고 하는 지난한 작업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에 반영된 자연스러운 이해방식을 살펴볼 필요도 있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당연히 어떤 방식은 오해나 언어적 혼란에 기초한 것이고 어떤 이해는 자연스럽다고 볼 것인지에 대한 차이는 철학자마다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데이터에서 출발해서 서로 다른 균형점에 도달할 수도 있고, 그 균형점들 사이에 stand-off가 성립한다면 훌륭한 경쟁이론 두 가지를 우리는 갖게 되는 것이겠지요.

상기한 것은 그냥 제가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배운 바이긴 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참고가 되셨길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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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분석철학에서 철학적 '방법/수단'으로서의 언어적 분석 등이 오히려 '목적'에 비슷한 것으로 되어버린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려 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 않으면 애초에 달을 못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서 철학을 할 수밖에 없다면 언어를 엄밀히 사용해서 혼란을 없애고 문제에 정확히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언어적 구성물 자체와 그것이 원래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동일한 것은 아니겠죠. 때로 이 둘을 동일시하거나 성격을 역전시키는 경향도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언어적 구성물 이외에 다른 특별한 수단으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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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분석철학의 여러 다양한 조류나 세세한 관점들을 무시하고, 대신 '이러이러한 경향' 정도로 표현함으로써 어떤 일반화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일반화는 쉽게 논박되어 버리는 것이고, 엄밀한 논의에 해가 되는 것이기도 하죠. 또 저의 분석철학에 대한 인식에 오히려 어떤 선입견이나 부정확한 점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의 질문 자체가 엄밀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런 면도 잘 혜량해 주신 Raccoon 선생님의 친절한 답변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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