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코페르니쿠스

다음 주에 개강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기 시작했는데, 칸트가 자신의 프로젝트가 코페르니쿠스와 같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돼서 잠깐 써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했고 구멍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과 함께 메워가고 싶습니다.

칸트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코페르니쿠스의 그것과 같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비례식을 세울 수 있습니다.

지구가 중심이고 우주가 움직임 (천동설): 지구가 움직임 (지동설, 코페르니쿠스) = 직관이 물체에 맞춤 (intuition has to conform to the constitution of the objects) : 물체가 직관에 맞춰짐 (object conforms to the constitution of our faculty of intuition) (Bxvi - Bxvii)

언뜻 보면 오른쪽 항 두개가 반대여야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만히 있고 물체가 맞춰지는 것이 마치 지구가 중심인 것과 같기 때문이죠. 우리가 관측하는 것이 움직여서 우리의 관측에 들어오는 것이 지구가 중심인 것, 즉 코페르니쿠스의 전 세대와 칸트의 프로젝트와 같아보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잘못된 주장인 것 같습니다. 칸트의 이 비례식은 물체의 움직임이 아닌 우리의 관측의 상대성을 얘기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물체가 직관에 맞춰진다는 것을 말하면서 우리의 관측의 상대성을 얘기하는 것이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역시 우리 관측의 상대성에 대해 얘기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위치에 따라서 행성의 부분을 못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물자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 전세대와 칸트의 전세대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절대적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직관에 들어오는 물체들은 틀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그저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intuition has to conform to the constitution of the objects"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행성의 안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관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 ). 칸트의 이 비례식 (비례식을 쓴 건 저지만)은 물체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 아니고 관점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마지막에 "관점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 부분은 괄호 안에 뭘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discussion하면서 채워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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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시는 문제의식을 제가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SEP의 Immanuel Kant 항목에서 나온 해설 (링크)이 도움이 될까 싶어 퍼와봅니다.

This account is analogous to the heliocentric revolution of Copernicus in astronomy because both require contributions from the observer to be factored into explanations of phenomena, although neither reduces phenomena to the contributions of observers alone.[6] The way celestial phenomena appear to us on earth, according to Copernicus, is affected by both the motions of celestial bodies and the motion of the earth, which is not a stationary body around which everything else revolves. For Kant, analogously, the phenomena of human experience depend on both the sensory data that we receive passively through sensibility and the way our mind actively processes this data according to its own a priori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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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칸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칸트가 자신의 작업이 코페르니쿠스의 그것과 닮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에서 말씀하신 비례식으로서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칸트는 자신과 코페르니쿠스 모두 이전 세대가 말하던 것의 정 반대(주어와 목적어가 뒤바뀜)를 주장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작업과 코페르니쿠스의 작업이 닮아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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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고 거의 반절은 맞춘 거 같네요! 좋군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례식 오른쪽 두 항이 주어와 목적어가 다르니 비례식 오른쪽에 있는 두 항의 순서를 바꿔야한단 말씀이신가요?

아마 태형님 이야기는, 칸트가 코페르니쿠스를 끌고 들어온 요지는 순전히 관점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직관/대상의 관계를 관찰자/천체의 관계에 일일이 비례적으로 대응시키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말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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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bunny님께서 인용해주신 SEP에도 나와있듯 칸트는 대상에 대한 인식에 관찰자(지구/인식 주관)가 기여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유비의 요지는 무엇보다도 주관의 대상 구성적 성격을 지적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그 부분에서 칸트의 관심사는 학문에 걸맞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선험적인) 지식을 확보하는 데에 있지요. 지식의 선험성이 바로 그 주관의 대상 구성적 성격에 의해 보증되고요. 이런 이유에서 주관의 '상대성'과 물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전면에 나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칸트적인 입장에서 저 괄호 안을 채우자면, 저라면 이렇게 채울 것 같습니다.

만일 행성의 안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관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행성을 관찰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관점에서만 우리에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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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hyung @TheNewHegel

전 이 단락에서 칸트가 노골적으로 비례식을 세운 거라고 봤습니다:

Hence let us once try whether we do not get farther with the problems of metaphysics by assuming that the objects must conform to our cognition, which would agree better with the requested possibility of an a priori cognition of them, which is to establish something about objects before they are given to us. This would be just like the first thoughts of Copernicus, who, when he did not make good progress in the explanation of the celestial motions if he assumed that the entire celestial host revolves around the observer, tried to see if he might not have greater success if he made the observer revolve and left the starts at rest. Now in metaphysics we can try in a similar way regarding the intuition of objects.
CPR, Bxvi, my emphasis

또한 NewHegel 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것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어로 생각해보면 relative보다는 subjective라던가 object-oriented 등의 단어가 더 적절해보이는데, 아무래도 한국어를 못하다 보니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이런 차이가 한글로 글 쓸 때는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궁극적으로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이 구체적인 단락에서는 어떻게 칸트의 접근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비슷해보이는지에 대한 설명에 더 집중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위에서 단락을 첫문장부터 다 쓴 이유가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이 단락에서 칸트가 세웠던 비례식을 더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칸트의 전체적인 프로젝트에 이 비례식을 이해하는 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1차자료를 읽는다는 것 (close reading of primary texts) 이 이런 거니깐요 (paying close attention to details). 앞으로는 제가 보고 있는 단락을 explicit 하게 표시해놓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두 분 다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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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 bxvi 에서 칸트가 세운 거 같은 비례식을 인용해놨습니다. B371은 몰랐네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