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헤겔

북미에서 헤겔은 20세기에 큰 이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작은 찰스 테일러를 필두로 한 1세대 헤겔이었죠. 전 1세대 헤겔을 말로만 들어서 잘 모르지만, 헤겔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2세대 헤겔은 로버트 피핀의 Hegel's Idealism으로부터 나온 "비형이상학"적인 해석입니다. 이 역시 저는 잘 모르지만, 헤겔을 칸트식으로 봤다는 것만 압니다. 제가 좀 더 설명해보자 하는 것은 3세대 헤겔, 지금 북미에서 가장 유행하는 해석이며, 훌게이트, 윈필드, 메이커, 그리고 21세기 피핀 등이 있겠습니다.

작가마다 다르지만, 이들에게 주로 정신현상학은 철저하게 부정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신현상학을 읽음으로써 헤겔의 철학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현상학은 우리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 사실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정신현상학을 다 읽는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방식이 틀린 생각방식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을 읽지 않고 대논리학을 읽어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논리학은 뭘까요? 대논리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thought categories)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리학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보고 추상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방식들 자체를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이 아닌 것이 아님으로써의 자신인 것, 즉 "어떤 것" [Etwas/Something] 을 보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을 본 것이죠. 100불이 있는 계좌를 생각한다고 합시다. 이 100불이 있는 계좌는 100불이 없는 계좌가 아님으로써 100불이 있는 계좌가 될 수 있겠죠. 이 경우에는 우리가 생각한 생각방식을 통해서 물체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100불이 있는 계좌를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어떤 것" 자체를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생각할 때는 "어떤 것"이 다른 것을 통해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어떤 것"이 되게 할 수 있는 것, 즉 "다른 것"이 있어야 생각할 수 있죠 (여기서 "다른 것"은 100불이 없는 계좌의 생각방식이겠죠). 하지만, "다른 것"은 "어떤 것"으로부터 다름으로써 "다른 것"입니다. 즉, "어떤 것"과 "다른 것"은 서로로부터 다름으로써 자신이 될 수 있는데, 서로를 구분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서로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서로로부터 다름으로써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둘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되죠. 그러면서 "어떤 것"이면서 "다른 것"인 생각방식을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다음 생각방식, 즉 "유한"이 되게 됩니다. 이것이 헤겔이 생각방식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헤겔은 단순한 생각 방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헤겔은 본질론, 즉 2권에서 칸트의 사물자체 [thing in itself/Ding an sich] 와 스피노자의 substance 까지 이끌어내게 됩니다. 즉,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생각 방식이든 헤겔은 대논리학에서 보이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단순한 물체의 생각방식부터 우리가 철학을 할 수 있는 방식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생각방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번 글에서 제가 의존하고 있는 해석들에 대한 기본 설명이 없이 바로 설명을 시작하여 혼란이 생긴 것 같아, 이 글에서 간단하게나마 제가 이해하고 있는 헤겔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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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헤겔의 사유에서 '어떤 것(something)'은 '다른 것(other)'과의 관계하에서만 '어떤 것'이 될 수 있고, 이는 상호적이므로 양자는 '어떤 것-다른 것(the something-others)'이라는 하나의 사고를 형성하게 되죠. 그리고, 이 모두를 그 내용으로 아우르는 것이 대자존재(Being-for-itself ; Für-sich-sein)로서 이것은 '어떤 것-다른 것'을 넘어서는 개념으로서 '어떤 것-다른 것'을 보존하며 동시에 이들의 한계성와 유한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각을 오해없이 요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헤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덕분에 요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댓글작성에 SEP를 부분적으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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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제가 헤겔 전공은 아니지만, 몇 가지 개인적인 의견인데,

(1)

'2세대 헤겔'과 '3세대 헤겔'이라고 명명하신 두 입장을, 스탠포드 철학백과에서는 '후기 칸트적(비형이상학적) 관점'과 '수정된 형이상학적 관점'이라고도 부르죠. 저는 이 두 입장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후기 칸트적 관점을 대표하는 학자인 로버트 피핀부터가 '비형이상학적'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하거든요. 마찬가지로, 훌게이트 같은 학자들이라고 해서 헤겔이 '칸트적'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두 입장은 단지 강조점에서 다를 뿐, 정말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2)

피핀이 『대논리학』에 대해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피핀에게서 이 내용을 참고하신 건가요? 제가 헤겔 전공도 아니고, 『대논리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어서 조심스럽기 하지만, 저는 설령 '사유의 형식'과 '대상의 존재 방식'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피핀의) 헤겔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대논리학』에서 나오는 각각의 항들 사이의 변증법적 이행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러워요. 『대논리학』의 큰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해도, 『대논리학』을 이루고 있는 세부적인 항목들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너무나 이상하게 보이는 거죠. 제가 알기로, 영어권에서는 아직 『대논리학』을 집중적으로 해설한 논의가 거의 없는데, (오히려 『정신현상학』에 대한 연구가 훨씬 활발할 텐데,) 『대논리학』의 각 항들 사이의 이행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좋은 분석적 연구가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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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핀부터가 '비형이상학적'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다" 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피핀은 두 가지 피핀이 있습니다. 피핀이 첫번째로 출판한 Hegel's Idealism 같은 경우는 2세대 헤겔이며 두번째로 출판한 Hegel's Realm of Shadows 같은 경우는 3세대 헤겔이죠. 2세대에서 대논리학을 "비형이상학"적이라고 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은 후, Hegel's Realm of Shadows에서 부제목을 "형이상학으로써의 논리학"을 붙이며 비형이상학적 논리학이라고 불럿던 것에 대한 "사과"를 하는거죠. 즉, 2세대 헤겔에서 3세대 헤겔로 바뀌게 됩니다.

(2) 피핀이 그런 주장을 하긴 하지만, 언급한 훌게이트, 메이커, 윈필드 등도 그 주장을 하며, 저번에 잠깐 얘기를 나눴던 Nick Stang마저도 3세대 헤겔입니다 (실제로 Stang은 칸트 학자지만 칸트보다 헤겔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을 알기 위해 칸트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칸트 고인물이 된 재능충이죠). 더 추가를 하자면 엥 (정신현상학에 대한 이해가 좀 다르긴 하지만요), 스턴, 크라인스, 로렌티스 등도 3세대입니다. 대논리학을 집중적으로 해설한 논의가 거의 없다고 하셨는데, 다음 책들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Winfield - Hegel's Science of Logic
Maker - Philosophy without Foundations
Pippin - Hegel's Realm of Shadows
Houlgate - Hegel on Being
Ng - Hegel's Concept of Life

이 모두가 3세대 헤겔입니다. 이 다음은 3세대 헤겔로 알고 있고 좋다고 알려져있으나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입니다.

Kreines - Hegel in the World
Bowman - Hegel and the Metaphysics of Absolute Negativity
Stern - Hegelian Metaphysics

또한 변증법적 이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영어 드래프트가 있는데, 거기서 정반합이 어떻게 abstraction relation between thought categories를 entail하는지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얼추 완성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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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완벽하게 요약하신 것 같습니다. 더 덧붙이자면, 헤겔은 먼저 나온 생각방식이 뒤에 나온 생각방식의 추상화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생성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하기 위해 다른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생각방식으로써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음으로써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다른 것의 원천인 생각방식을 찾기 위해 어떤 것이며 다른 것을 생각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목차만을 보더라도 수많은 주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true infinite을 화살의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determinate being, something and other, true infinite이 나오기 때문에, 제논의 역설이 생각하는 게 완전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사실 principle of contradiction을 움직임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또한 스피노자의 절대적 개념이 칸트의 사물 자체 뒤에 오기 때문에 헤겔의 논리를 쓰게 되면 스피노자의 신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칸트의 물자체를 생각할 수 있고, 등등의 주장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영어로 작성 중인 게 하나 있습니다. 너무 길어서 여기에 올릴 거 같진 않지만, 완성되면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도 글 열심히 읽어주시고 좋은 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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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el's Idealism 이후의 피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가령,

In 1989 I published a book called Hegel’s Idealism: The Satisfactions of Self-Consciousness [Pippin 1989]. Because of this book, I became known for defending a ‘Kantian’ interpretation of Hegel’s idealism, and a ‘non-’or even ‘anti-metaphysical’ reading of Hegel’s basic position in his Phenomenology of Spirit and Science of Logic. These turned out to be quite misleading designations, as I will try to explain. (I bear, of course, some responsibility for the misleadingness.) (R. Pippin, "Reading Hegel", Australasian Philosophical Review, 2(4), 2018, 366)

이라고 말했을 때의 피핀이요. 헤겔 연구자들은 보통 피핀의 입장이 Hegel’s Idealism 이후로 아예 바뀌었다고 이해하나요? 제가 읽었을 때는 피핀의 입장 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비형이상학적'이라는 기존 수식어가 피핀 본인의 해석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후 논문들의 논조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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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확히 말하면 그게 맞습니다. 그냥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헤겔 전공자가 아니라고 하셔서 저렇게 말한 건데 저것까지 알고 계신다니... 역시 서강올빼미는 뭔가 다르군요.

제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사실 2세대 헤겔과 3세대 헤겔이 어떻게 다르고, 사실은 같고, 이런 논쟁들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헤겔이 대논리학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봐야지, 그것이 형이상학적인지 비형이상학적인지에 대한 semantic dispute을 하면서 시간낭비를 하면 안 된다 -- 이것이 제가 알기로 북미에서 만들고 있는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주옥같은 주장들이 너무 많은데, 2세대니 3세대니 사실은 같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보단, 그냥 2세대 헤겔은 잊어버리고 깔끔하게 3세대로 헤겔을 보는 것이 맞다라는 것이죠.

사실 그렇게 안 중요하고 오히려 신경을 쓰게 되면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날릴 수도 있는 언쟁이라는 것이 (제가 알기로) 최근 북미의 입장이고, 비전공자라고 하셔서 그냥 단호하게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 알고 계시니 말하는 의미가 없어졌지만요... 이미 피핀의 "2세대" 책과 3세대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 것 같아, 더 덧붙이는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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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인 것 같습니다. 저 '비형이상학적 헤겔' 독법을 제시한 최초의 학자 중 하르트만(Klaus Hartmann)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하르트만과 그 제자인 핀카드(Terry Pinkard) 역시 2세대로 분류되나요? 핀카드 같은 경우는 하르트만의 입장에서 피핀의 후기-칸트적 해석을 두고 처음부터 논쟁을 벌였던 걸로 아는데, 2/3세대라는 구분을 적용하면 어느 편에 속하는지 궁금하네요.

*아, 이후에 2세대-3세대 사이의 구별이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답글이 달려 있는 걸 못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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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아직 핑카트와 하르트만의 책들은 읽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2차자료를 너무 많이 읽는다고 혼나서 최근에는 최대한 헤겔 1차자료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충분해지면 언젠가는 다 섭렵하게 되겠죠. 그때 알게 되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재밌긴 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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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주인-노예 변증법에 집중하는 정치사회철학 전공자이다보니 정신현상학에 훨씬 익숙한데, "정신현상학을 읽음으로써 헤겔의 철학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정말 띠용하는 입장이거든요. 왜 정신현상학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지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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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것도 알게 되는 것이 없다는 뜻은 하나도 배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확실히 어느 정도는 김이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젝이 생각하는 21세기 최고 헤겔 책 세 권 중 하나인 코메이의 Mourning Sickness가 정신현상학에 관한 책인만큼, 정신현상학을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의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메이가 지젝과 같이 떠오르는 4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3세대의 해석을 따르지만 결국에는 헤겔이 실패한다는 것 같습니다).

헤겔 관련 전공을 하신다니, 조금 더 데크니컬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회의주의에 반대하고 싶어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왜 무언가를 왜곡돼서 생각할 수 밖에 없는지, 왜 우리의 이성에 대한 불신 (mistrust)을 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습니다. 헤겔은 이런 회의주의적 생각은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떨어져있는 무언가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여, 이 의식-진리의 전제를 깸으로써 불신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이죠 (It is hard to see why we should not turn round and mistrust this very mistrust 라고 합니다. Introduction 앞부분에 잘 나와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헤겔 기준에서 잘 나온 거니 명료하진 않고요). 결국 의식-전제에서 나올 수 있는 방식을 모두 생각하여 모든 방식이 실패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정신현상학이며, 그렇기 때문에 회의주의적인 걱정을 하지 않고 생각방식을 생각하면서 대논리학을 시작하는 것이죠. 더 이상 우리는 논리를 도구로 씀으로써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왜곡할 필요 없이, 그저 논리 자체를 논리로 봄으로써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죠.

전 이것을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Introduction에서 적어놨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들도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Houlgate - Thought and Being in Kant and Hegel
Winfield -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Ch1
Pippin - You can't get there from here

제가 정신현상학은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으로써는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네요. 빠른 시일 내에 헤겔의 의식 섹션에서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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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신현상학』은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 기획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정신현상학은 의식에 대한 변증법적 서술을 통해 일상적 관점에 파묻혀 있는 자연적 의식이 어떻게 참된 학문의 관점에 도달하게 되는가를 서술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의식이 거쳐가는 이러저러한 관점들이 다 부적절하고 모순된 관점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헤겔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듯 정신현상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을 이룬다기보다는 철학을 진정한 의미에서 시작하기 위한 학문 이전적인 작업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의 이 서술은 다만 현상적인 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이 자체만으로는 결코 스스로의 독자적 형태를 띠고 자유로이 전개돼 나가는 학이 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서술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참다운 지를 향해서 밀치고 나가는 자연적 의식의 길로 이해될 수 있겠다. (Hegel, G. W. F., 『정신현상학』, 제1권, 임석진 역, 지식산업사, 1988, 142-143)

다만 헤겔의 철학적 서술의 성격상 각 챕터에 등장하는 의식의 관점들은 송두리째 부정되는 대신에 부분적인 진리를 제공한 채 다음 장들에서도 보존되기 때문에, 정신현상학에서 거부되는 여러 가지 철학적 입장들로부터 헤겔의 입장을 부정적으로 추론해서 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헤겔이 의식의 감각소여를 비판하기 때문에 헤겔은 지식이 개념적으로 매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할 수 있고, 의식과 대상의 이분법을 비판하기 때문에 헤겔이 의식과 대상의 통일성을 지지한다고 할 수 있으며, 자기의식의 단순한 통일성을 비판하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끌어내기 때문에 헤겔은 지식이 상호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실천과 유리된 개인의 사유능력으로서의 이성을 비판하기 때문에 헤겔은 이성을 실천 혹은 노동을 통해 자기의 세계를 형성하는 능력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의 특정한 철학적 입장을 읽어내는 철학자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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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k9297 @TheNewHegel 두분 모두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헤겔에 관해서는 그의 주노변증법, 노동개념, 법철학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던지라 논리학은 외면하고 있었는데 시야가 조금 더 확장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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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0세대 헤겔리안으로 브래들리 성님이랑 맥타가르트 성님도 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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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타가르트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들은 대논리학 대학원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2차자료 추천/간단한 리뷰를 한 파일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네요: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맥타가르트의 책이 아직도 최고의 대논리학 저서라고 생각한다; 그의 Studies in the Hegelian Dialectic은 아주 읽을만 하다. 대논리학이 인식론이라는 것 (아니다) 과 경험에 관한 책이라는 (lol) 이상한 고집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 참고로 괄호 안에 말들은 제가 집어넣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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