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현상학>에서 이 부분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후설의 현상학> 단 자하비 지음, 한길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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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이 비록 의미함을 통해 지시 관계가 결정된다¹고 주장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의 이론이 오직 명확한 기술을 통해 보통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유형의 지시 관계, 즉 다시 말해 작용의 질료가 어떤 대상의 속성을 기술적으로 상세히 열거함으로써 대상을 규정하는 경우들을 다루는 것에만 맞추어져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후설은 이미 초기에 '이것'이 속성을 나타내는 식으로가 아니라 직접적 방식으로 대상을 지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지각이 지시적 구성요소를 포함한다는 것을 께닫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내가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나는 '바로' 이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지, 단지 유사한 속성들을 지닌 그 어떤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Hua 19/553~554. (48p)

이 부분에서 1. "오직 명확한 기술을 통해 보통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유형의 지시 관계" 가 무슨 의미인지(그리고 예를 들면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또, 2."후설은 이미 초기에 '이것'이 (...) 단지 유사한 속성들을 지닌 그 어떤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부분이 잘, 그리고 이 문단의 맥락과 연결해서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3. 왜 저자가 여기서 "[...]것에만 맞추어져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 언급하는지를 그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대상과 의미의 구별" 과 "보통의 경우 의미부여 작용이 의미가 아니라 대상을 향함" 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언어적 경우" 를 언급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 마지막으로, 왜 저자가 이 맥락에서 "가령 내가 (...) 아니다." 라는 후설의 말을 인용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구절은 이 문단 앞에 있는 "보통의 경우, 우리는 의미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다" 부분에 붙는 것이 맥락상 더 알맞은 것이 아닌가요?

¹ (질문자 주) 46~47p: [...]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무언가를 '의미함'으로써 그 대상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Hua 19/54, 24/53, 150. / [...] 의미 속에서 대상과의 관계가 구성된다. 의미를 가지고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표현을 통해 대상과 관계하는 것(대상을 표상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Hua 19/59) / [...] 의식에게 '대상으로의 향함' 이라는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의미다. [...] 우리는 대상을 그저 의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특정한 방식으로 의식한다. 즉 무언가에 지향적으로 향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무언가'로서' 지향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무언가'로서' 지향한다(지각한다, 판단한다, 상상한다). [...] 2 더하기 4의 합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5+1의 합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은 동일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기술, 개념, 관점은 상이하며, 작용의 질료는 상이하다. (발췌)

제가 지금 밖에 있다 보니 책의 앞뒤 맥락을 확인할 수가 없지만, 직접적 지시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가령, "이 사과는 빨갛다."라는 문장이 (a) 정말 나의 바깥에 있는 실재(reality)로서의 사과와 제대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b) 사과는 단지 우리에게만 그런 속성으로 기술될 뿐이고 소위 '사물 자체(thing-in-itself)'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후설은 (a)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 논쟁은, 영미권 언어철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a') "지시가 의미를 결정한다."라는 반기술주의의 입장과 (b') "의미가 지시를 결정한다."라는 기술주의의 입장 사이의 논쟁과도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설명이 덧붙여져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반기술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옹호하고, 기술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자들은 반형이상학적 성향을 보이거든요.) 그래서 자하비가 "후설이 비록 의미함을 통해 지시 관계가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을지라도"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후설은 얼핏 영미권 기술주의자들처럼 "의미가 지시를 결정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후설의 주장이 직접적 지시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주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게 자하비의 설명입니다. (즉, 제가 구분한 알파벳대로라면, (b')+(a)가 후설의 입장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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