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맥락이 이해가 되질 않아 질문합니다

지금 읽는 책은 기술철학 입문이란 책 입니다.
여기서

이와 마찬가지로 기술은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는데, 여기서 이 형식은 자연 홀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힘이 지레 작용을 통해 큰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은 처음에는 반자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오늘날 생태공학이라는 전문 연구 프로그램이 기술과정을 자연의 범례를 모방해 현실화하는 것을 보면, 이미 [현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기술 개념은 [더 이상] 자명한게 아니게 되었음을 증명한다.

라는 문단인데

자연의 범례를 모방한다는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으로 알고있는데
이를 현실화하는게 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 자명한게 아니라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보고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해결이 어렵네요. 『자연학』의

기예는 일반적으로 자연이 완성하지 못하는 것을 완성하거나, 자연을 모방한다. (Physica, 199a15-17. 번역: Aristotle, Physics, trans. C. D. C. Reeve,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2018.)

이러한 구절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이 자연의 완성 혹은 모방이라고 생각한 듯하고, 이런 이해에 반대되는 전거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저도 이 분야에 익숙하신 고대철학 전공자 분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을 질료에 [그 질료가 속한] 자연이 홀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을 완성하는 것으로 본 반면 저자는 자연의 범례를 모방해 현실화하하는 것으로 봅니다. 자연을 완성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불완전하며 인간이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채운다는 것이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은 자연에 자연 자체적으로는 완전히 실현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목적론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두 생각 사이에 과연 테크니컬한 차이가 있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자연과학을 통해 파악하는 자연의 범례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이상화된 것입니다(실제의 자연에서는 그 범례는 경향적이고 부분적이고 추세적이고 우발적으로만 현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그것을 모방해 현실화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일단 맥락이 너무 부족하네요. 생태공학의 프로그램이 자연을 모방하여 현실화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 개념과 상반된다는 말을 잘 이해하려면 일단 어떤 프로그램을 뜻하는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 개념을 저자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인지 등을 알아야할텐데요. 읽으시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인지도 명시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맥락이 필요할 것 같아요.

따라서 제 답변 역시 잠정적이고 추측에 의존한 것임을 먼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만일 저 생태공학 프로그램이 일종의 자연 현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컴터 프로그래밍으로 초기 값을 입력해주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자연현상을 확률적으로 구현해주는 그런 것을 뜻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발생, 변화와 달리 인공적(기술적) 운동이 그 운동의 원인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에 의해 구현된 시뮬레이션은 마치 자기 안에 운동과 변화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 개념이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2개의 좋아요

지금보고 있는 책은 기술철학 입문(저: 알프레드 노르트만/역: 조창오, 서광사) 입니다.

저 부분은 문단의 끝부분이라 나머지 앞 문단의 내용을 첨부합니다.

세번째 측면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기술은 우리가 오늘날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구별된다. 먼저 어떤 목표가 있고, 이것에 맞춰 질료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한다면 자연과 기술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집이라는 목적이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건축가가 집을 짓는 방식 구대로 자연은 집을 지을 것이다. 사실상 기술은 자연 속에 있긴하지만 자연 스스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완성하는 한에서만 자연을 넘어선다. 자연에서 기형아 출생은 질료에 일반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실패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생체공학은 자연을 넘어서는게 아니라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 개념이 자명하지 못한 것이라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