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은 스스로 자란다"의 출처를 아시는 분 있나요?

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은 스스로 자란다epidosis eis hauto"라고 언급한 부분이 어디에 나오는지를 아시는 분이 있나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기 인식의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이 아닌 다른 저자의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인용을 발견하여 해당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일단 '영혼에 관하여'에서 '이행epidosis'의 색인을 확인해보았는데 해당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서 언급된 해당 구절은 역사학파가 연속성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보았다는 부분에서 나옵니다.
연속성이 곧 역사의 본질이며 드로이젠이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은 스스로 자란다epidosis eis hauto"를 인용합니다. 이는 보존하면서 동시에 보존된 것을 넘어서는 이중의 과정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앎을 수반한다고 합니다.
저는 영혼이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앎을 수반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해당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처를 아는 분이 있으면 도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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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 나오는 내용인 것 같네요. Aristotle, On the Soul (De anima), ed. David Ross (Oxford: Clarendon Press, 1956), 2.5.417b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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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님이 언급하신 곳 맞아요. 의미에 대해서 좀 덧붙여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영혼이 스스로 자란다"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으로의 진전"을 뜻하거든요? eis allo(다른 것으로)가 아니란 점에서 alloiōtheis(질적인 변화)와 대비시켜서 이해하셔야 해요. 다른 자신의 본질과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능태를 현실적인 것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랑만 생활할 때는 영어 쓸 일이 없겠지만, 이 양반의 영어 지식이 미국가서 영어 쓸 때는 실현되지요. 이런 걸 두고 가능태로서의 지식이 현실태로서 실현된다고 하고, 이런 걸 "자기 자신으로의 진전"이라고 표현한 거죠.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지식이 현실에서 쓰이니까요.

이걸 '영혼은 스스로 자란다'고 멋있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본 배경을 알고 해야 실수가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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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가다머가 인용했다는데, 그 부분에 대한 인용처를 알 수 있을까요? 가다머 가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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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YOUN님! epidosis의 색인이 여기를 표시하고 있어서 확인을 했었는데 가다머의 저서처럼 표현되어 있지 않아서 다른 부분인줄 알았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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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최근 판본,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59-60에 있는 문단입니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능태가 현실태로 이행하는 것을 '영혼은 스스로 자란다'고 해석한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오지은 선생님의 '영혼에 관하여' 번역본에 나온 '자신에로의 이행'이 더 원문에 맞는 해석이 되겠군요?(자기 자신으로의 진전)

앎을 갖고 있는 자가 관조한다.. 등등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한 번 살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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