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무래도, 종교학에 관심이 많지만 종교학과의 수도 처참하고, 제대로 된 입문서도 없는 상황이라 몇 자 적습니다.
(1) 종교학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종교에 대한 학문입니다. 참여관찰을 하든 문헌 조사를 하든 설문해서 통계를 돌리든 종교에 관한 연구라면 다 '종교학'에 들어갑니다.
근데 종교학과 신학만큼은 엄밀히 구분됩니다. 그 이유는 종교학이 기본적으로 '비교'종교학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신학은 통상 한 사상 전통 내에서, 그 전통 안의 여러 주장에 대한 논의입니다. 반대로 종교학은 둘 이상의 전통에서, 종교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는 것에 대한 이론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종교'라는 범주 자체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종교일까요? 오늘날은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기독교, 불교 등의 세계 종교와 민속 종교라는 이야기는 100년 전에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땐 기독교와 미신이였죠. 심지어 오늘날에도 종교 범주에는 논쟁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가원에서 배우는 요가나 마음챙김 명상은 종교인가? UFO와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종교인가? 팬 문화는 종교인가?
이러다보니 종교학은 이 '종교'라는 범주를 비-종교와 어떻게 구분할지에 대한 자기정의의 역사입니다. 우선 종교 정의가 나오기 이전, 종교의 한 부분인 신화와 주술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I. 종교학의 전사
종교학은 종교라는 개념의 정의보다, 한 구성 요소들인 신화와 주술에 대한 학문으로 시작했습니다.
(a) 우선 신화학파가 있습니다. 막스 뮐러가 대표적으로, 인도유럽어족이 확립됨에 따라, 이들 지역에 내려오는 여러 신화들을 분석해, 일종의 '근원''본성'에 대한 담론을 전개합니다.
오늘날 이들의 연구는 학계에서 거의 안 다루어집니다. 첫째, 다수가 나치와 우생학에 관련된 문제가 있습니다. 게르만을 포함한 인도유럽인들의 우월한 본질과 유대인들의 열등한 본질에 대한 담론으로 오염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인종주의 외에도, 각 민족의 원형과 본질을 탐구한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계획으로 오늘날 인식됩니다.
둘째는 각 신화가 만들어진 맥락에서 벗어나, 신화만을 놓고 비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입니다. 더 이상, 신화의 본질을 논의하지 않는 이상 신화만을 연구하는건 무의미해보입니다.
(b) 그리고 초창기 인류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현장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락의자 인류학자로 불립니다. 이들의 목적은 근대화된 서양과 구분되는 과거 - 비서양의 특징을 정의하는 거였고, 그 과정에서 주술에 대한 이론이 심화됩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에드워드 타일러와 제임스 프레이져가 있습니다.
이들은 주술이 1) 과학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는 시도이지만 2) 이성이 아닌 유비의 방법을 사용해 불완전하고 열등한 과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과 관련된 종교를 뭉뚱그려 애니미즘이라고 정의를 하였고요.
이들 이론은 종교진화론적 요소를 명백히 고민하고 사용되어야합니다. 이들은 고대 서양인 - 그 외의 문명 - 근대 서양에 남은 미신을 모두 동일선상에 놓고 분석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동일시는 오늘날에는 적절한 근거없이는 모두 욕먹습니다(..)
II. 성스러움의 등장
이제 이들의 뒤이어 본격적인 종교 정의가 등장합니다. 이들 후속 세대는 종교와 비종교의 구분을 성스러움(the Sacred)과 속됨으로 구분합니다. 다만 학자들마다 무엇이 성인지 그 내용은 다릅니다.
(a) 독일 학파. 이들은 성스러움이란 "어떠한 체험"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체험이란 말을 넘어서있고, 압도적인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이쪽 계열의 학자로는 루돌프 오토가 있습니다.
또 심리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월리엄 제임스와 에로티시즘/축제 등의 다른 모든 극단적 체험도 성스러움이라고 주장하는 조르주 바타이유/로제 카이유와 등이 있습니다.
(b) 프랑스 사회학파. 한편 이들은 성스러움이란 "어떠한 시공간적 구분"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컨대, 미사 시간이 일상과 구분되고, 성당이 일반적인 집과 구분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쪽 계열 학자로는 에밀 뒤르켐과 마르셀 모스가 있습니다. 또 이들의 개념을 발전시킨 메리 더글라스 등의 학자가 있습니다.
(c) 머치아 엘리아데. 이제 대학자 엘리아데가 나타납니다. 엘리아데는 이 두 성스러움의 개념을 합쳐버립니다. 엘리아데에서 성스러움이란 1) 어떠한 초월적 체험이며 2) 그 체험은 특별히 구분되는 시공간에서 일어나고 3) 그 내용은 어떠한 원초적인 상징 구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아비 바르부르크 - 파노프스키의 미술사학과 칼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의 영향입니다.)
III. 포스트 엘리아데
엘리아데의 이론은 세 측면에서 모두 공격받습니다. 우선 3)에 대해선 오늘날 학자들이 모두 일종의 '낭만주의'이자 소설로 취급합니다. 영원회귀와 세상의 중심 등 엘리아데가 보편 상징으로 제시한 것들은, 주어진 자료에 지나치게 자신의 사상을 투영했다는 것이죠.
그래도 이쪽은 다른 예술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지프 캠벨이 대표적이죠.
1)에 측면에서는 성스러움이 어떠한 체험이라면, 무슨 체험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단순히 극단적인 체험이라면 마약이나 에로티시즘도 일종의 종교로 인정해야할겁니다. (인정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한 일상적 종교인들이 항상 이런 체험을 하는지의 문제다 있습니다. 매번 성당에 가서 극단적인 체험을 한다면, 그 성당 성수에 마약이 들어가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그래도 이 종교적 체험이 종교의 핵심이며, 이걸 회복하는게 근대의 문제를 해결할거라는 주장은 여전히 종종 보이는 편입니다. (웬디 도니거나 오히려 현상학자 중에 휴 드레이퍼스 등이 주장하는 내용이죠. 아니면 마음챙김이나 비교신비주의쪽에서 서있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