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제 3절 번역 질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번역을 비교하던 중에 궁금한 점이 있어 글 올립니다. <차라투스트라> 제 1부 머리말의 제 3절의 한 대목입니다. 총 세 번역본(백승영 역 2022, 정동호 역 2000, 장희창 역 2004)을 비교해보았는데, 장희창 역을 제외하면 모두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출간된 백승영 교수님의 역본은 질문의 중심인 "Mensch"의 번역이 같아 따로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어 원문으로는 Mensch인데, 장희창 선생님 번역에서는 "인간"으로, 정동호 선생님 번역에서는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느 번역이 더 원문 의도(뜻)에 가까운 번역인가요?

Ich lehre euch den Übermenschen.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Was habt ihr gethan, ihn zu überwinden?

그대들에게 초인(Übermensch)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장희창 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2004)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Übermensch)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정동호 역, 책세상 (니체전집 13), 2000)

'Übermensch'를 둘러싸고는 '초인'으로 번역할 것인지 '위버멘쉬'로 음차할 것인지 번역의 문제가 있는데, 'Mensch' 같은 것은 인간으로 옮기든 사람으로 옮기든 별 중요성은 없다고 보입니다.

인간 내지 사람을 가리키는 또 다른 독일어가 있고 그걸 니체가 'Mensch'와 구별했다면 또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 니체가 그런 구별을 한 적은 없습니다.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과 '초인'(Übermensch)의 구별이라면 모를까요.

요리책을 번역할 때 "egg"의 번역어로 '계란'을 택할지 '달걀'을 택할지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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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신경써야 할 것은 원저자의 의도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라고 할 때 우리말에서 "사람을 극복한다"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지 "인간을 극복한다"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원어민 화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는 "인간"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원문에서 "Was habt ihr gethan, ihn zu uberwinden?"에서 "ihn"은 "Der Mensch"를 받는 거 같은데 민음사 역에서는 왜 "그대 자신"이라고 옮겼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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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TheNewHegel 님의 댓글과 같은 입장이구요. 영어권에서는 보통 people이라고 번역됩니다.
그 구절에서 다음의 정도만 염두에 두시면 뭐라고 번역해도 문제 없어 보입니다.
(1) 여기서 말해지는 '사람' 혹은 '인간'은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종(種, 인간종)으로서의 인간/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여기서 말해지는 '사람' 혹은 '인간'은 가르침의 대상인, 앞 문장의 Volk(군중 혹은 대중)과 깊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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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한테도 den Menschen überwinden이란 말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극복되어야 할 무언가”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말에 어색하듯 현대 독일인들도, 100년 전 독일인들도 어색하게 느낄 수 있는 표현이기에 저는 그냥 그대로 번역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색하지만 동시에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하고 간지나는 그 기분을 독일사람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다 느낄 수 있잖아요.

니체가 이 작 중에서 인간der Mensch을 짐승das Tier과 초인Übermensch 사이를 잇는 밧줄Seil이라고 말하듯, 인간을 극복한다는 건 이 밧줄을 타고 넘어서 초인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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