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연습하기

학부생 시절 처음으로 영어로 된 철학서를 강독하는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기전부터 (모국어로도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을 외국어로 듣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이 수업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당시 선생님께 배웠던 번역하는 연습은 지금까지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부꿀팁"이라는 카테고리에 맞게
제가 번역을 연습했던 과정을 "서강올빼미" 회원님들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 번역을 연습해 볼 구절은 비비안나 체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에서 인식과 행위Erkennen und Handeln in der Theorie des Tragischen bei Aristoteles" 라는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1. Der Konflikt entsteht erst, wenn ein auf Grund der unmittelbaren und unterscheidenden Wahrnehmung, die selbst einen Erkenntnisakt darstellt, entstandenes Streben das als für den Handelnden angenehm und deshalb als gut Erfaßte auch verfolgt. 2) Dieses Streben setzt die andere δόξα außer Kraft, die ein leeres Wort bleibt, wie im Beispiel der Kinder, die gerade angefangen haben, etwas zu lernen. 3) Von der allgemeinen δόξα besitzt der Unbeherrschte nur ein abstraktes Wissen. 4) Es ist aber die von der Wahrnehmung bedingte und durch sie aktualisierte Erkenntnis, die die Handlung auslöst. 5) Der ἀκρατής bleibt auf diese Erkenntnis fixiert und verfügt nicht über genug Phantasie, um sich unter dem Begriff des Guten etwas anderes als das gegenwärtig Angenehme vorzustellen. 6) Deshalb beachtet der Handelnde jenes Wissen nicht, das von einer vernunftgeleiteten φαντασία hätte aktualisiert werden können, wenn er das wahrhaft Gute als etwas Gegenwärtiges empfunden, gleichsam "geschmeckt" hätte.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힙니다만, 침착하게 문장을 끊어봅시다. 인용문에 있는 1) - 6)의 숫자는 제가 문장 구분을 위해 적어 놓은 것입니다. 차근차근 1)번 문장부터 주어와 동사를 찾아 줍니다.

  1. Der Konflikt entsteht erst, wenn ein (auf Grund der unmittelbaren und unterscheidenden Wahrnehmung, die selbst einen Erkenntnisakt darstellt,) entstandenes Streben das [als für den Handelnden angenehm] und deshalb als gut Erfaßte auch verfolgt.

문장의 주어는 "Der Konflikt" (충돌), 동사는 "entstehen" (발생하다) 입니다. 이것에서부터 번역을 시작해 봅시다:
충돌이 발생한다, 언제? (Wenn 이하, 이 문장의 주어는 "ein Streben", 동사는 "verfolgen" 입니다. -> 하나의 생성된 욕구가 그것 (보기에만 좋은 것)을 행위자에게 좋은 것으로 여기고 좋게 파악된 것을 추구할 때.

그리고 ()안에 들어간 부분은 "Wenn절"의 주어인 Streben을 꾸며줍니다.

생성된 욕구란, -> 직접적이고 구별하는 지각 때문에 나타나는 욕구이며 (auf Grund der unmittelbaren und unterscheidenden Wahrnehmung)

지각 (Wahrnehmung)은 자체의 인식활동을 나타내는 지각이다 (die selbst einen Erkenntnisakt darstellt,)

전부를 종합해 봅시다 => 자체의 인식활동을 나타내는 직접적이고 구별하는 지각에 의해 나타난 생성된 욕구가 보기에만 좋은 것을 행위자에게 좋은 것으로 여기고, 좋게 파악된 것 (사실은 보기에만 좋은)을 추구할 때 충돌이 일어난다.

그리고 뒤의 문장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차근차근 분석해 줍니다.

  1. Dieses Streben setzt die andere δόξα außer Kraft, (die ein leeres Wort bleibt), (wie im Beispiel der Kinder), (die gerade angefangen haben, etwas zu lernen.)

: 이러한 욕구는 다른 판단들을 무력화한다,

어떤 판단? -> 공허한 단어로만 머물러 있는 (실천적이지 않고)

어떻게 머물러 있나? -> 마치 아이의 예처럼

어떤 아이? -> 무언가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 이러한 욕구는 무언가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예에서 처럼 실천하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는 다른 판단들을 무력화시킨다.

  1. [Von der allgemeinen δόξα] besitzt der Unbeherrschte nur ein abstraktes Wissen.

: 무절제한 자는 [보편적 판단 중에서] 오직 추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

  1. Es ist aber die (von der Wahrnehmung bedingte und durch sie aktualisierte) Erkenntnis, ( die die Handlung auslöst.)

:이것은 (추상적인 지식) 그러나 인식이다.

무슨 인식? -> 행위를 유발하는 인식

무슨인식? -> 지각에 의존적인 그리고 지각을 통해 현실화되는

=> 추상적인 지식은 그러나 지각에 의존적이고 지각을 통해 현실화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인식이다.

  1. Der ἀκρατής bleibt (auf diese Erkenntnis) fixiert und verfügt nicht über genug Phantasie, [um sich (unter dem Begriff des Guten) (etwas anderes als das gegenwärtig Angenehme) vorzustellen.]

:아크라테스 (무절제한 사람)는 고정되어 있다, 어디에? -> 이러한 인식에

그리고 아크라테스는 소유하지 못했다, 무엇을? -> 충분한 상상력을

어떤 상상력? -> 좋음의 개념과 관련하여 // 현재 즐거운 것과 다른 어떤 것을 표상하기 위한 상상력.

=> 아크라테스는 이러한 추상적 지식에 고정되어 있으며 진정으로 좋은 것 (bzw. 현재 즐거움을 주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을 표상하기 위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 Deshalb beachtet der Handelnde [jenes Wissen] nicht, (das von einer vernunftgeleiteten φαντασία hätte aktualisiert werden können), wenn er [das wahrhaft Gute] (als etwas Gegenwärtiges) empfunden, gleichsam "geschmeckt" hätte.

: 그러므로 행위자는 그러한 지식을 무시한다

어떤 지식? 이성에 의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화시킬 수도 있었던,

어떠한 경우? -> 그가 맛을 보았다면,

무엇을? -> 진정한 좋음을 어떤 현재의 것으로 느꼈다면

-> 그러므로 행위자가 진정한 좋음을 어떤 현재의 것으로 느꼈다면, 그러니까 맛보았더라면

=> 그러므로 행위자가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좋음을 행위하는 순간에 좋은 것으로 느꼈다면 (그러니까 진정으로 좋은 것을 "맛보았다면"), 이성에 의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화시킬 수도 있었던 지식을 무절제한 자는 무시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1) 부터 6)의 문장들을 종합하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다듬어 줍니다.

<종합>

자체의 인식활동을 나타내는 직접적이고 구별하는 지각에 의해 나타난 생성된 욕구가 보기에만 좋은 것을 행위자에게 좋은 것으로 여기고, 좋게 파악된 것 (사실은 보기에만 좋은)을 추구할 때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욕구는 무언가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의 예에서 처럼 실천하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는 다른 판단들을 무력화시킨다. 무절제한 자는 [보편적 판단 중에서] 오직 추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 추상적인 지식은 그러나 지각에 의존적이고 지각을 통해 현실화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인식이다. 아크라테스는 이러한 추상적 지식에 고정되어 있으며 진정으로 좋은 것 (bzw. 현재 즐거움을 주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을 표상하기 위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좋음을 행위하는 순간에 좋은 것으로 느꼈다면 (그러니까 진정으로 좋은 것을 "맛보았다면"), 이성에 의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화시킬 수도 있었던 지식을 무절제한 자는 무시한다.


"공부꿀팁"이라고 생각해고 적어보았는데 딱히 팁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
저는 개인적으로, 학부생 때 어떠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인지 몰라 막막할 때
이런 식으로 예시를 들어서 알려주는게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나서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논문의 한 구절을 번역해보는 것을 예로 들어보았습니다.
결국 철학공부에 왕도가 없고 그냥 뭐든 '꾸준하게'하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꾸준하게가 가장 어렵죠...).

흥미로운 사이트를 알게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번역팁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light_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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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올빼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slight_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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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하나의 인식 행위를 나타내는, 직접적이며 분별하는 지각 때문에 생겨나는 어떤 열망이 행위자에게 편안하고 그래서 좋은 것으로 파악된 것을 좇을 때에 비로소 갈등이 발생한다. 이 열망은 막 무언갈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경우에서처럼 텅 빈 말로 남아있는 다른 의견(doxa)를 무력하게 한다. 일반적 의견(doxa)에 대해서 자제력없는 자는 단지 추상적인 앎만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지각에 조건지어지고 지각을 통해 활성화되는 앎이 (바로) 행위를 일으키는 앎이다. 무절제한 자(akratês)는 이 앎에 고착된 채 머물러 있으며 좋음의 개념에 지금 편안한 것 말고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릴만큼 충분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행위자는 저 앎을, 참으로 좋은 것을 어떤 현전하는 것으로 느꼈다면, 말하자면 “맛보았었다”면, 이성이 이끄는 상상력(phantasia)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었을 그런 앎을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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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팁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글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해설해주셔서 굉장히 이해가 잘 됐습니다. 석사 시절 아도르노나 맥도웰의 글들을 연습 삼아 번역하면서 이런 유의 고민을 많이 했어서 공감도 많이 되네요.

-특히 예시로 드신 독일어 문헌 같은 경우 간혹 7~8줄이 넘는 어질어질한 문장이 대거 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말씀대로 문장을 침착하게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읽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주문장(Hauptsatz)과 부문장(Nebensatz)을 구별하고 주어와 동사(들의 Satzklammer)를 찾는 데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독해를 해나가는 능력이 제일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독일어 선생님께서도 고급 독해로 갈수록 이런 기본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긴 문장을 이해할 때 문장을 보다 작은 구절들로 나눠서 이해하듯이, 번역 테크닉의 측면에서도 문장을 끊어서 옮겨주면 가독성을 높이는 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계대명사(특히 전치사를 포함한)로 절이 이어지거나, 안 그래도 복잡한 문장 가운데에 삽입절 같은 게 나타날 경우 문장을 한 번 마쳐주고, 필요하다면 동사를 반복해주거나 하면 번역된 문장이 한결 깔끔해지더라고요.

Die Frage, die sich stellt, ist die nach dem Verhältnis dieser Natur zu dem, was wir unter Geschichte verstehen, wobei Geschichte besagt jene Verhaltensweise der Menschen, jene tradierte Verhaltensweise, die charakterisiert wird vor allem dadurch, daß in ihr qualitativ Neues erscheint, daß sie eine Bewegung ist, die sich nicht abspielt in purer Identität, purer Reproduktion von solchem, was schon immer da war, sondern in der Neues vorkommt und die ihren wahren Charakter durch das in ihr als Neues Erscheinende gewinnt.
(Adorno, Th. W., "Die Idee der Naturgeschichte", Gesammelte Schriften, Bd. 1, Frankfurt: Suhrkamp, 1973, 345-365, 347.)

원문 텍스트 기준으로 9줄이 넘어가는 전형적인 끔찍한 독일어 문장 중 하나인데, 이런 문장을 그대로 한 문장으로 옮겼다가는 괴상한 문장이 되기가 십상입니다.

일단 wobei 앞에서 문장을 한 번 끊어주고, 그 뒤에 문장을 새로 시작해줍니다.

Die Frage, die sich stellt, ist die nach dem Verhältnis dieser Natur zu dem, was wir unter Geschichte verstehen,
설정되는 물음이란 이 자연이 우리가 역사라는 말로 일컫는 바와 맺는 관계에 대한 물음입니다.

wobei Geschichte besagt jene Verhaltensweise der Menschen, jene tradierte Verhaltensweise,
여기서 역사란 인간의 저 행동방식, 전승되어 온 행동방식을 이릅니다.

그리고 "die[Geschichte] chrarakterisiert wird ..." 앞에서 한 번 더 끊어줍니다.

die charakterisiert wird vor allem dadurch, daß in ihr qualitativ Neues erscheint,
이 행동방식이란 무엇보다도 역사 속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현상한다는 점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계속해서 관계사절이 나타납니다. 보통 사람들이 영어나 독일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 관계사절을 받는 명사에 절 전체를 수식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das Auto ist nun so gut wie neu, das ich reparieren lassen habe.

같은 문장을

내가 수리 맡겼던 차가 이제는 완전 새 것 같아.

로 옮기듯이요. 바로 위 예시처럼 관계사절이 짧으면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저게 너무 길어지면 저 "차"를 수식하는 문장이 무한정 늘어나서 주체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문장을 한 번 완성시켜주고, 관계사절은 그 다음에 이어줍니다.

또 dadurch를 받는 dass 접속사 절이 두 개가 병렬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한 번에 옮기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 번 끊어줍니다.

daß sie eine Bewegung ist, die sich nicht abspielt in purer Identität, purer Reproduktion von solchem, was schon immer da war, sondern in der Neues vorkommt und die ihren wahren Charakter durch das in ihr als Neues Erscheinende gewinnt.
[즉] 이것은 이미 항상 현존해왔던 그런 것의 순수한 동일성, 순수한 재생산 속에서 벌어지기보다는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며 역사 속에서 새로운 것으로 현상하는 것을 통해 그 참된 성격을 획득하는 운동이라는 점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입니다.]

원문에 없는 단어들을 추가하는 게 꺼림칙하다면, 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단어들을 대괄호 '[ ]' 표시해주면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위에서 끊어 번역했던 문장들을 모두 모아주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설정되는 물음이란 이 자연이 우리가 역사라는 말로 일컫는 바와 맺는 관계에 대한 물음입니다. 여기서 역사란 인간의 저 행동방식, 전승되어 온 행동방식을 이르는데, 이 행동방식이란 무엇보다도 역사 속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현상한다는 점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즉] 이것은 이미 항상 현존해왔던 그런 것의 순수한 동일성, 순수한 재생산 속에서 벌어지기보다는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며 역사 속에서 새로운 것으로 현상하는 것을 통해 그 참된 성격을 획득하는 운동이라는 점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입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올빼미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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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에도 뉘앙스를 참 전하기 어려운 구문들이 있지요. 연습하기 좋은 문장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독일어 번역에 있어 너낌!만을 가지고 번역하지 않은 채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은 참 아쉽습니다.

  1. 예를 들면 첫 번째 문장 조건절에 있는 auch지요. 이 auch 때문에 행위자를 기분 좋게하고 그래서 좋은 것으로 파악된 것일지라도 와 같은 뉘앙스가 있는데 이 구문이 하필이면 erst wenn절로 묶여서 같이 번역해내기가 힘드네요. erst는 그러나 의미상 중요하니 빼먹어선 안 될 것 같아 얘는 넣고 쟤는 뺐네요.
  2. Wissen von etwas라서 von allgemeiner doxa가 온 것이라, 앎의 대상으로 번역해주는 게 좋습니다. Genitivus Objectivus를 전치사 von으로 대신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3. Es ist die Erkenntnis, die die Handlung auslöst. 이 구문도 뉘앙스가 있는데.. 강조를 때리긴 하는데 우리 말로 매끄럽게 번역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이 앎이 행위를 낳는다'로 번역하기 보다는 '이 앎이 행위를 낳는 앎이다' '낳는 것이다' 식으로 말을 늘여서 강조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저는 (바로)라고 ㅋㅋㅋㅋ 넣어버렸습니다.
  4. 그리고 마지막 문장들은 오역이시니 제 번역을 보시고 다시 읽어보시면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5. 개인적으로 철학적으로 중요치 않은 경우 수동문을 능동문으로 해석하는 게 더 매끄럽다고 느낍니다. 마지막 문장의 경우에 능동으로 바꾸는 게 더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저도 수동으로 번역하긴 했습니다.
  6. 지금 26시간째 깨어있어 제 번역에 저도 자신없습니다. ㅋㅋㅋㅋㅋ Discla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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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oxa 번역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doxa의 번역어로 의견을 하든, 판단을 하든 확신을 하든 그것은 맥락에 따라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자도 doxa의 의미를 특정 번역어가 담기 어렵거나 혹은 정확히 그러한 희랍 단어 doxa의 애매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희랍어로 썼으리라 봅니다. 이 경우 번역자도 그냥 doxa로 두고 주석으로 달아놓는 것도 괜찮겠지요.

  2. 오역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과한 의역을 한 것이라 말씀드리는 게 더 낫겠네요. 오역이라는 말이 민감할 수 있는데 제가 좀 둔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읽기에 어색했던 부분들은 첫째,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라는 원문에 없는 의역, 둘째, "행위하는 순간에"와 같은 한정구가 원문에 없다는 것, 셋째, "이성에 의한 상상력"이라는 번역이 불충분하다는 점 등입니다. 일단 독일어 원문에 없는 것들을 이해를 돕고자 차입하신 것 같은데, 오히려 한국말 어문법에 맞지 않기에 이해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3. 물론 자기 공부를 위해 번역하는 경우라면 이런 번역도 좋다고 봅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놓은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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