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잭슨의 「보편자에 관한 진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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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은 크게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유명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로, 유명론은 “빨강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을 개별자에 관한 진술로 번역할 수 없다. 둘째로, 유명론은 “빨강은 파랑보다 분홍과 유사하다.”라는 진술을 개별자에 관한 진술로 번역할 수 없다. 잭슨의 논문은 두 예시에 대해 유명론의 입장에서 제시될 수 있는 번역과 보편자 실재론의 입장에서 제시될 수 있는 반박을 서로 대결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빨강은 색깔이다.”

(1) 일반적으로 유명론은 “빨강은 색깔이다.”를 “빨간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두 진술은 서로 동일한 의미일 수 없다. 가령, 세상의 모든 빨간 것들이 지닌 위치를 ‘L’이라고 할 경우, “L-위치된 모든 것(빨간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는 진술은 참인 반면, “L-위치함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은 거짓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빨간 것이 삼각형인 것이라고 할 경우, “삼각형인 모든 것(빨간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는 진술은 참인 반면, “삼각형임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은 거짓이다.

(2) 유명론자는 “빨강은 색깔이다.”를 “필연적으로, 빨간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자에 대한 진술에 “필연적으로”라는 부사를 추가한 번역도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필연적으로, 빨간 모든 것은 형태화되어 있고 연장되어 있다.”와 “빨강은 형태이고 연장이다.”는 서로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참인 반면, 후자는 거짓이다.

(3) “빨간 모든 것이 유색이라는 것은 분석적이다.”라는 유명론적 번역 역시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유색이다.”라는 술어를 대체하기 위해 “노랗거나 빨갛거나…….”와 같은 모든 가능한 색깔에 대한 무한한 목록을 만들 수가 없다. 해당 목록에서 생략된 부분을 “기타 등등 모든 색깔에 대하여”라고 대체하려는 시도도 다시 “모든 색깔”을 유명론적으로 번역해야 하는 문제에 빠진다.

(3′) 애초에 “빨강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은 언어적 존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우리 언어에서 성립하는 동의어 관계 등을 통해 “빨강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이 진술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2. “빨강은 파랑보다 분홍과 유사하다.”

(1) 유명론자는 “빨강은 파랑보다 분홍과 유사하다,”를 “빨간 임의의 것은 파란 임의의 것보다 분홍인 임의의 것과 유사하다.”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전자가 참이더라도 후자가 거짓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가령 빨간 공, 분홍 코끼리, 파란 공 사이의 관계에서는 “빨간 임의의 것(공인 것)은 파란 임의의 것(공인 것)보다 분홍인 임의의 것(코끼리인 것)과 유사하다.”라는 진술이 참이 아니다.

(2) “빨강은 파랑보다 분홍과 유사하다.”를 “빨간 임의의 것은 파란 임의의 것보다 분홍인 임의의 것과 색깔-유사하다.”라고 번역하려는 시도 역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a) 실재론의 표준적 비판에 따르면, 유명론의 번역은 사실 존재론적으로 보편자에 개입하는 진술인 “빨간 임의의 것과 분홍인 임의의 것이 색깔에 있어 유사하다.”를 숨기고 있다. 물론, 이러한 표준적 비판은 이미 보편자 실재론을 전제하고서 “색깔-유사하다.”라는 술어를 단지 거부하고 있을 뿐이라는 재비판을 받기도 한다. (b) 그러나 “색깔-유사하다.”라는 술어를 통한 번역의 한계를 드러내는 다른 비판도 존재한다. 가령, ‘빨간’과 ‘삼각형인’이, ‘분홍인’과 ‘달콤한’이, ‘파란’과 ‘사각형인’이 동외연적인 세계의 경우, “삼각형인 것(빨간 것)이 사각형인 것(파란 것)보다 달콤한 것(분홍인 것)과 색깔-유사하다.”라는 진술은 “삼각형임이 사각형임보다 달콤함과 유사하다.”라는 진술에 대한 번역이 될 수 없다. 전자는 참인 반면, 후자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2′) 유명론자는 “F인 임의의 것이 H인 임의의 것보다 G인 임의의 것과 Φ-유사하다.”가 오직 F, G, H가 모두 Φ일 때만 “F가 H보다 G와 유사하다.”와 같은 의미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F, G, H가 모두 Φ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보편자 실재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빨강, 분홍, 파랑이 모두 색깔이라는 입장은 이미 보편자 실재론에 개입하고 있다.

(3) “필연적으로, 빨간 임의의 것은 파란 임의의 것보다 분홍인 임의의 것과 색깔-유사하다.”처럼 “필연적으로”라는 부사를 통해 유명론적 번역을 제시하려는 시도도 만족스럽지 않다. 가령, “익은 토마토의 색깔(빨강)은 남자 아기와 연관된 색깔(파랑)보다 여자 아기와 연관된 색깔(분홍)과 유사하다.”라는 진술은 참인 반면, “필연적으로, 익은 토마토의 색깔을 지닌 임의의 것(빨간 것)은 남자 아기와 연관된 색깔을 지닌 임의의 것(파란 것)보다 여자 아기와 연관된 색깔을 지닌 임의의 것(분홍인 것)과 색깔-유사하다.”라는 진술은 거짓이다. 전자는 단지 토마토와 아기의 색깔에 대한 우연적 관점을 담고 있는 진술인 반면, 후자는 개체들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진술이다.

(3′) 마찬가지로,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색깔이다.”라는 진술 역시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을 지닌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는 방식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이 빨강이라는 사실은 우연적으로만 참이다. 가령, 빨강이 아니라 냄새가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일 경우,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익은 토마토의 냄새)을 지닌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는 진술은 참일 수 있는 반면,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익은 토마토의 냄새)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은 거짓이다.

(3″)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을 “필연적으로,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을 지닌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고 번역하려는 시도 역시 성공할 수 없다.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이 반드시 빨강이어야 하는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빨강이 아니라 냄새가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일 경우, “필연적으로,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익은 토마토의 냄새)을 지닌 모든 것은 유색이다.”라는 진술은 거짓이다. 익은 토마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익은 토마토의 냄새)을 지닌 것은 투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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