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요?

  1. 가다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파인만 테크닉을 쓰고 있는데,
    정말 한 발치만 가고 막혔습니다.
    "지평"이란 용어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어서였는데요,
    철학을 모르는 12살 아이가 있다 했을 때, "지평"이란 용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2. 지평을 어느 정도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향적 체험을 할 때 그 배경이 되는 비반성적인 체험의 영역" 같이 말이죠.
    하지만 이게 정말 맞는 방법일까요? 이렇다면 지향성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데, 대체 지향성은 뭔가요?
    아니 지향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현상학에서의 의식이 가지는 근본적 성질"이라, 잘 모르지만,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러면 좀 문제인 것 아닌가요?
    예전 분석철학계에서 현상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생각하면 말입니다.
    한번 아이가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나 조던 피터슨에 좀 심취한 20대 친구라고 합시다.
    그 사람이 "지향성에 기초한 현상학은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적으로 지평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라 하거나, "현상학은 상대주의이고 상대주의는 잘못되었다. 상대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평을 알려달라" 라고 하면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지향성이나 지평이란 개념을, 어떻게 해야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3. 워낙에 이것이 어려워서 저는 가다머의 지평 대신 좀 더 친과학적인 비트겐슈타인의 "세계의 한계" 개념을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둘이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일단 윤리적인 것, 즉 "세계의 한계"가 왜 있는지부터 이 가상의 친구에게 설명하자고 생각했는데요.
    보니까 세계의 한계를 다루는 부분이 가장 형이상학적이라고 보여지는 5.6..부분의 유아론이더라고요.
    물론 5.61과 같은 어떤 뒷받침 논변들이 있으나, 이 문구 또한 그 친구에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5.61에서 세계의 한계는 또한 논리의 한계들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논리의 한계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5.61에서의 논리는 세계의 한계를 넘어갈 수 없다는 문장을 제시할 것이고, 거기서도 세계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5.552와 5.5521을 들어서 논리에 있어서 어떤 것이 있다는 존재라는 경험 아닌 "경험"이 있어야 하며 존재 즉 "무엇이"에는 앞서지 않는다고 하며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지라도 논리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논리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도 우리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이 문제와 별 관련이 없으며 논리 자체가 그저 brute하게 있을 수 있지 않냐고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역시 이것 또한 다른 문구로 뒷받침할 수 있겠지만, 저는 여기서 이것은 다른 문구로 되기보단 그저 말하자면 하나의 "공리"와 가까운 것이 아닐까 마음을 바꿨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라는 개념이 그의 공리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가다머의 지평 개념도 공리나 다를 바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지평개념이 12살 아이에게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인지 회의적이고, 또 왜 그래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결정적으로 그럴 실력도 없기에 1번 질문에 관해서는 답변하기 힘드네요. 다만 질문 속의 문제에 대해 좀 짚고자 합니다.

  1. 글쓴이님은 ‘철학을 모르는 12살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설명은 ‘맞는 방법’이 아니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지평개념, 더 넓게는 철학적 전문 용어 혹은 개념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에 더해, 분명히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두루뭉술하게 말하기’와 ‘철학을 모르는 12살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함’이 같은것도 아닙니다. 질문의 표현을 정제하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2. ‘20대 친구’ 가 말한 것중에서, ‘지향성에 기초한 현상학이 과학적이지 않다’ 라거나 ‘현상학은 상대주의이고 상대주의는 잘못되었다’라는 말도 문제삼을만 합니다.
    즉 ‘지향성에 기초한 현상학’이 왜 ‘과학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주장의 근거가 필요합니다(12살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주장한다면, 앞서 제기한 문제로 돌아갑니다.)
    또한 ‘현상학이 상대주의이고 상대주의는 잘못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상상 속 친구가 질문을 제기하더라도, 그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기에 애초에 잘못된 질문과 잘못된 예시입니다.

  3. 이어서, 가다머의 개념보다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이 왜 더 친과학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다머는 현상학에 기초하여 주장대로 과학적이지 않고, 비트겐슈타인은 영미철학계열이라 과학적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개념간에 비슷한 면이 있다고하여, 한 개념의 성격 혹은 정의 등을 다른 유사한 개념에 대입하는 것은 잘못된 철학적 연구방법입니다. 설명을 위해 다른 철학자의 다른 개념을 대입하는 식으로 들여오면 100퍼센트 오류가 발생하기에, 이러한 설명 방식은 되도록 기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개의 좋아요

A. 님의 1번에 대해서는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현상학적인 개념들을 말한다면, 설령 "두루뭉술"한들 그것은 12살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설명이 "두루뭉술"하다고 한 것은 이후에 말해줄 "과학적" 문제 때문입니다.

B. 님의 2번에 대해서 왜 제가 현상학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20대 친구를 꺼냈냐면, 실제로 분석철학자들이 현상학을 폄하하는(이제는 했던?) 그런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AI 비판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당시의 영미철학자들은 그의 AI 비판에 대해 비판보다는 그저 현상학적이란 그 비판의 기반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투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Hubert Dreyfus's views on artificial intelligence - Wikipedia 이곳에서 Ignored 파트를 보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님이 그것을 잘못된 질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때 그들에게 "이게 왜 무시받아야 하는지 주장의 근거를 대라"라고 맞받아치는 것과 같을 텐데, 만일 정말 그렇게 대응한다면 그 사람들은 "이것은 과학적이지 않다"라고 할 께 뻔해 보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C. 3번에서 말한 것에 제 잘못이 분명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분명 슈펭글러를 좋아하던 아주 반과학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꺼낸 이유는, 제가 위에서 말한 그런 "과학적인 사람"들이, 비트겐슈타인만큼은 제대로 된 철학자라고 인정해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튜링 그리고 컴퓨터의 발전은 괴델에게 아주 큰 영향을 받았는데, 괴델은 적어도 1920년대에 논고를 읽었다는 것처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과 친구들도 저에게 비트겐슈타인을 물어본 적 있습니다. 현상학은 한 번도 없었지만요.)
그래서, 지평과 비슷한 개념인 세계의 한계를 들어서, 그 "친구"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설명을 할 때 꼭 둘이 다른 면이 있다는 말을 하겠습니다.

D. 님의 말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지평개념이 12살 아이에게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인지 회의적이다"라는 것입니다. 파인만에 따르면, 그렇다면 님은 지평과 가다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봤고요. 파인만 테크닉 파인만 테크닉 The Feynman Technique 으로 학습하기 을 참고해 주세요.

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개념에 관해서 왜 과학적 설명이 요구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이지 않다"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당연하다. 철학은 과학이 아니니까"

3개의 좋아요

하지만 말이예요,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그것을 과학자가 풀어야 할 영역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수정) 죄송합니다. 정확히 뜻도 모르고 쓴 것 같네요. 제가 말하는 것은 "과학적 설명"이라기보다 "논리적 설명"을 요구한다는 말이 훨씬 가깝습니다. 위에서 말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사적 언어를 위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것을 "과학적"으로 풀어야 한다 생각하고 과학자들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사적 언어 논변으로 따짐으로서 일반인이 생각하는 과학자가 풀어야 할 영역이란 생각 대신 철학자의 생각이라는 판단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여기서 나온 논변 또한 "논리적(과학적)"이죠. 이것이 2번에서 원하던 것입니다.
3번은 여기서 더 나갑니다. 이 사적 언어를 3번처럼 하나씩 계속 의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뇌과학자면 비트겐슈타인을 과학적이지 않다고 보고 계속 따지려 들겠조. 그런 계속된 의문을 한다면, 결국엔 사적 언어 논변이라는 것도 그저 "공리"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후기라면 그 문체 때문에 특히 더)... 라 생각해 본거고요

제가 잘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습니만,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현상학이나 비트겐슈타인의 그런 논변들이 반드시 옹호되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끼어든 듯 보입니다.
의문이나 반론이 제기되었다면 그 의문이나 반론이 정당한지 얼마나 설득력있는지 따져봐야 할텐데,
그러지 못할때 만약 저라면 상대방에게 "잘모르겠다"고 할겁니다.

1개의 좋아요

Oj Simpson GIF

Sophisten님과 Russell님이 지적하시는 부분은 질문 글의 두 가지 주장 같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띠는 한 가지 주장이 더 있습니다.

(1) 어떤 전문적인 개념이든, 그 개념을 아무것도 모르는 12살 아이에게 설명해줄 수 없다면,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 가다머의 지평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의 개념보다 덜 과학적이고 덜 논리적이며 덜 엄밀하다. (예전 분석철학자들이 현상학을 무시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예증한다.)
+(3) 가다머의 지평 개념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 개념도 공리(?)이다.

저 역시 이 세 가지 주장 중 그 어느 것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첫째, 하나의 전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도입되어야 하는 전제와 배경은 수많은 시간을 바쳐 공부해야 할 정도로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개념을 아이도 쉽게 이해할 만한 일상어 몇 마디로 설명하라는 요구는 "전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많은 배경을 모두 없애버린 채 그 개념을 이해시켜라"라는 요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런 요구에 부응하려고 하면 (2)에서 요구하시는 논리성, 과학적 엄밀성을 희생해야 되는데, 그럼 (1)과 (2)를 동시에 주장하시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둘째, 지평 개념의 논리성과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호합니다. 철학 개념은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도록 정의되는 것이지, 수학적 문제나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도록 정의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얘기하신 '조던 피터슨에 좀 심취한 20대 친구'나 답글에서 상정하신 '이과 친구들'이 그런 식의 요구를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들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거부하면 될 일입니다.) 오히려 잘 쓰이던 개념을 일부러 끼워맞추는 것이야말로 철학적 엄밀성을 떨어뜨리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칸트가 '선험적'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유전자나 두뇌 신경 전달물질 같은 생물학 개념에 끼워 맞춰서 이해하려 했다면 칸트 철학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을 것입니다.)

셋째,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고, 본문에서 말씀하셨듯이 『논고』에 나와 있는 다른 문장들을 '뒷받침'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공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주장에 대한 근거를 끝없이 제시할 수 없으니 공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공리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른 명제로부터 증명되는 명제는 공리가 아닙니다.


끝으로, 지평 개념에 관한 해설이 필요하셨다면 그저 "가다머의 지평 개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이 개념을 잘 풀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시는 분이 있다면 설명해달라" 정도로 쓰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원활하게 소통이 돼서 필요하신 답을 얻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개의 좋아요

아마 제 주장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제가 이해한 글쓴이 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댓글로 말씀드린 것처럼 원문의 주장이 깔끔하지 않아보여 다음의 요약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12살 아이가 알아듣는 설명' =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 '맞는 (설명) 방법', '파인만 테크닉식의 (설명 방법)
'12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 =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 '맞는 (설명) 방법이 아니한것', '문제가 있는 (설명)'
이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댓글 남겼구요.
'12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 =/=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 '맞는 (설명) 방법이 아니한것', '문제가 있는 (설명)'

물론 파인만에 따르면, 저는 '지평과 가다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이것은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인만 테크닉식의 설명 방법에 의해 그러하다고 하여 저의 주장 '지평개념이 12살 아이에게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인지 회의적이다' 자체가 이해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만약 파인만 테크닉식의 설명 방법이 유일하게 옳은 설명 방법이라면 이해불가능한 주장이고 틀린 주장이겠지요?

어쨋든 무엇보다 저는 '12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 이 곧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 이고 '맞는 (설명) 방법이 아니한것'인 이유 혹은 '큰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의 반대급부이자 '12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 인 '현상학'적 설명 방법이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구요.
저의 주장을 '이게 왜 무시받아야 하는지 주장의 근거를 대라'라고 요약하신 것 같고, 그에 대해 '그 사람들은 "이것은 과학적이지 않다"라고 할 께 뻔해 보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은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현상학적 설명 방법이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인 이유를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그것이 과학적이지 않아 그러하다고 하시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링크해주신 Ignored 파트를 보아도, 제가 제기한 의문이 해소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Dreyfus와 AI Researcher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후자가 전자의 설명 방법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여겨 거부했다는 사실로부터, 전자의 설명 방법이 과학적이지 않다거나 옳지 않다고 까지 얘기가능한것인지요?

제 생각엔 결국 제 첫댓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글쓴이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이 글의 주요 키워드인 '논리적이고 과학적' 특히, '과학적'인 설명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정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왜 '현상학은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설명인가?'와 같은 질문이 해결될 것 같고, 지평 개념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 방법에 의거해 설명될 수 있는지 여부도 판단 가능하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설명되겠지요.

2개의 좋아요

일단 다른 것을 말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인"이라는 말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과학적인 것이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맨 처음 질문에서도 그랬듯 저는 과학적인 설명보다 "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적 설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 대해서 굉장히 넓게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단어들도 그런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과학적인", "명시적인",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잘 드러나는"...

저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곳에서 죄다 "과학적", "논리적"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고, 예전에는 님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고, 이번에도 "지평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라" 따위의 그런 일이 똑같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서 이렇게 질문했던 것입니다.

실제 예로, 저는 제 친구가 "낙태 합법화는 XX이다. 과학을 아예 모른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 자비스 톰슨의 바이올리니스트 논변을 꺼내서 친구를 설득시키려 했고, 감탄한 친구가 "역시 이과라 문과들보다 더 논리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예시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과학적"이라는 말이 이 수준으로 쓰이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한번 "과학"이라는 나무만 보지 말고 "설명"이라는 숲을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때문에 현상학이나 비트겐슈타인의 그런 논변들이 반드시 옹호되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끼어든 듯 보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수학에 대해서 캐묻는 사람이면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ZFC 공리계 때문이다..." 라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뮌하우젠의 트릴레마 같은 것도 이런 것에서 비롯되는 거 같고요. 지금 예시와는 좀 다르지만, 정말 심각한 사람 앞에서는 모든 진리에 대해 "왠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할 수 없지 않나요?

(1)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사용되는 '지평'(horizon)'이라는 개념이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맥락(context)'이나 '한계(limit)'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즉,

(a)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똑같은 "넌 참 잘났구나."라는 말도 맥락에 따라 칭찬이 될 수도 있고 비아냥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요.

(b) 그런데 '맥락'은 수없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은 대상에 대한 이해도 수없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시야의 지평도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이해의 맥락이라는 것도 문화나 시대마다 계속 달라지는 거죠.

(c) 따라서 우리는 결코 모든 맥락을 포괄하는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이해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시된 (a), (b), (c)의 내용이 '지평'이라는 하나의 은유 안에 포괄적으로 담기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지평에 대한 내용과는 별개로, 질문하신 내용 중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점들이 있습니다.

(a) 파인만조차 파인만 테크닉을 항상 따르지는 못했다?!

저는 파인만이 강조하였듯이 무엇인가를 '쉽게' 설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파인만과 관련된 아래 일화의 교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n 1965, Feynman was asked in a TV news show to explain in a few words what he had won the Nobel prize for. In a taxi afterwards, a cab driver sympathized, "I'da said, 'If I could explain it in three minutes it wouldn't be worth the Nobel prize!" (Lindy Reads and Reviews: Feynman by Jim Ottaviani and Leland Myrick)

(b) 분석철학이나 인지과학 등에서 '지향성' 개념을 무시한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지향성'이야 말로 현상학을 통해 오늘날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전반에까지 아주 폭넓게 확산된 가장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지향성'이라는 의식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양할 뿐이지, 이 개념 자체를 비과학적이라거나 비논리적이라고 거부하는 학자는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c) 과학적? 논리적?

다른 분들이 이미 많이 지적하셨지만,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라는 (혹은 '설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는 방식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대단히 모호한 개념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두고서 '과학철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논리적'이라는 말은 그보다는 좀 더 범위가 좁지만 훨씬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개념입니다. 비판하시고자 하는 입장의 타당성(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필연적으로 참인지)과 건전성(전제가 실제로 참인지)을 제대로 평가하시지 않은 이상, 단순히 특정 입장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판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향성에 기초한 현상학은 과학적이지 않다(논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너는 과학이나 논리가 뭔지를 모른 상태에서 비판을 하고 있구나.”라고 답하시면 됩니다.

6개의 좋아요

솔직히, 어디서부터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2번도 3번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비트겐슈타인을 오직 예시로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이 질문이 아무리 봐도 이상한 길로 흐를 거 같아서 그랬던 것이었고요. 저는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What computers still can't do를 아예 사서 집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현상학과 해석학이 덜 엄밀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지적은 정말 재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첫째 지적에 대해서는 너무 이상한 것 같은데요, 님의 지적은 파인만 테크닉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것을 받아들이시나요? 그렇다면, 파인만 테크닉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 것이죠?

둘째 지적은 다시 말했다시피, 저는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현상학은 그들에게는 확실히 엄밀하게 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GOFAI 시절 AI researcher들은 그것에 대해 굉장히 적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 researcher들도 알 수 있게끔 지평과 지향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제가 더 이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만일 친구가 이야기하다가, 그래서 지향성이 뭐냐, 설명해라, 라는 말을 듣게 될 때, 님의 말처럼 "그 요구는 그저 부당하다"라고 한다면, 친구에게 돌아오는 말이라곤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쉽게 말해야지, 지향성 지평 같은 어려운 글을 쓰는데 그 개념을 설명 못하겠다고 하면 너는 유시민이 말한 대로 사기 치려는 사람이다"라는 조롱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대체 왜 이렇게나 공격적인 댓글들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사적인 내용까지 밝혀야겠습니다. 그러면 좀 이해가 갈 지도 모릅니다.
저한테 철학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철학 이야기는 듣고 싶어도 철학책을 읽기는 싫어합니다 ㅠㅠ. 그리고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자꾸 캐내서 자기가 알 때까지 물어봅니다. 그에게 가다머 - 언어의 단일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 YouTube 이 영상을 보내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평"이라고 말은 했는데 지평이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지평이 대체 명확하게 뭔지를 알고 싶어서 철학사상연구소 논문도 둘러보고, 네이버 사전에 쳐보기도 했는데, 안 나오거나 도저히 일반인이 알 만한 정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후설 책들을 찾아서 지향성을 써서 어느 정도 정의를 했는데, 이러면 친구는 무조건 지향성이 뭐냐고 물어볼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지향성은, 아무리 봐도, 그냥 후설의 가장 기초적인 베이스 같은 겁니다. 친구(씹이과입니다)는 무조건 그게 과학으로 보여지냐 따위로 말할 것인데 도저히 그거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거예요.
이제 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나요? ㅠㅠ

아 그리고, 파인만 테크닉이 그렇다면, 그것과 굉장히 비슷한 주장을 한 게 있습니다.

혹시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꽤나 상처를 받으셨나본데, 제 자신을 포함해 댓글을 달아준 어느 누구도 글쓴이님께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댓글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이 본문에 해당하는 원글과 이하의 답글와 댓글에서 나온 얘기에 대해 계속하여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어보여서 그만하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저는 이 커뮤니티의 목적을 철학적 주제에 관련한 주장 혹은 논증을 정확하게 말하고 동시에 그것에 대해 토론해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개념부터 주장까지 비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비판해야 합니다. 즉, 댓글들이 글쓴이님의 글에 대해 트집잡으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여타 커뮤니티처럼 한가하게 그런짓 하는 것 아니니까 기분푸시고요, 나중에 다시 한번 자신의 질문과 댓글의 의견들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유시민과 파인만이 말하는 '취지'에 대해 저는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도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겠지요. 예를들어 전문 학술인들 사이에서 학술적 얘기를 하는데, 일반인은 알아듣기 힘들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을 쓰는것에 대해 사기꾼이라고 하거나 나쁜 설명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한 단어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계속 풀어 설명하려고 한다면, 물론 상황에 따라 이러한 행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만, 바람직하다고 보이진 않네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말하고 싶을때, 일반인들에게는 풀어서 설명하겠지만 학술적 공간에서 그것을 풀어쓰고있으면 다들 하품할겁니다.

2개의 좋아요

질문자님께서는 진심으로 '지향성'이나 '지평'이 무엇인지 아시고 싶어서 글을 올리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질문 속에 여러 가지 잘못된 전제들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그게 소통에 방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단, 질문해주신 '지향성'과 '지평'에 대해서부터 다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지향성이란 무엇인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지향성'이란,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의식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상에 관해 내용(content)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스탠포드 철학백과 '지향성' 항목에서는 첫 부분에 지향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In philosophy, intentionality is the power of minds and mental states to be about, to represent, or to stand for, things, properties and states of affairs. To say of an individual’s mental states that they have intentionality is to say that they are mental representations or that they have contents

철학에서, 지향성이란 사물, 속성, 사태를 향하고(be about), 표상하고(represent), 나타내는(stand for) 마음과 심적 상태의 힘이다. 개인의 심적 상태가 지향성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그 심적 상태가 심적 표상이라거나 그 심적 상태가 내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권 현상학과 영미권 심리철학에서 '지향성'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는, 의미나 강조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1.1. 현상학에서 지향성이란 무엇인가?

본래 현상학의 맥락에서 '지향성'이란, 의식이 지니는 태도에 따라 대상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입니다. 가령, 똑같은 나무를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a) 예술가가 미적 태도를 가지고서 그 나무를 바라볼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내용과 (b) 생물학과 대학원생이 생물학적 태도를 가지고서 그 나무를 바라볼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a) 예술가는 '저 나무는 삼각형 구도를 가지고 있고, 줄기 색은 다크 브라운이고, 햇빛이 오른쪽에서 비치기 때문에 왼쪽에 그림자를 지니고 있고…'라는 내용을 떠올리겠죠.

(b) 그러나 생물학과 대학원생은 '저 나무는 참나무속에 속하는 상수리 나무이고, 높이는 15-20미터이고, 꽃은 4-5월 무렵에 피고…'라는 내용을 떠올리겠죠.

이렇듯, 같은 대상(나무)를 보더라도,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식에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한쪽은 나무가 '미적 대상'으로 주어지고, 다른 쪽은 '생물학적 대상'으로 주어지는 거죠. 바로 이렇게 의식의 태도가 대상의 의미(내용)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현상학에서는 "의식과 대상이 지향적 관계를 맺고 있다." 혹은 "의식이 대상에 대해 지향성을 지닌다."라고 말합니다.

1.2. 영미권 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에서 지향성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이런 현상학의 지향성 개념은 영미권으로 확산되면서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변화합니다. 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에서는 종종 사물과는 달리 의식이 지니고 있는 특징 일반을 포괄하는 의미로 '지향성'이라는 개념을 쓰기도 하죠. 그렇지만, 이때의 '지향성'이라는 말도 현상학에서 쓰이던 원래 의미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사물과 구별되는 의식만의 특징이란 바로 '내용'을 가질 수 있다는 거거든요. 즉, "~에 대해(of)", "~에 관해(about)", "~라고(that)"와 같은 언어적 표현으로 기술될 수 있는 모든 상태들은 '지향적 상태'라고 불립니다. 가령,

(a) 철수는 아이스크림을 욕망한다.
(b) 민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c) 영수는 지향성 개념을 이해한다.
(d) 준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길 의도한다.

여기서 나온 "욕망한다(desire)", "믿는다(believe)", "이해한다(understand)", "의도한다(intend)"와 같은 언어에 대응하는 모든 상태가 바로 '지향적 상태'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무엇인가 내용을 가지는 상태가 바로 '지향적 상태'입니다. 이런 지향적 상태는 (사물과 구별되는) 의식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라는 점에서, '지향적 상태'라는 말은 종종 '심적 상태'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심리철학자와 인지심리학자는 우리가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이 아니라 '모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다만, 이 '지향성'이라는 상태를 우리의 뇌과학적, 진화론적, 심리철학적, 컴퓨터공학적 논의들에 비추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릴 뿐입니다.

2. 지평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에서는 지평에 대한 논의도 나오는 것입니다. 1.1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a) 똑같은 대상도 어떤 태도로 보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의미'라는 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항상 맥락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b) 그 '맥락'은 (앞서 댓글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시대나 문화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무한히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따라서 (c) 우리는 결코 모든 맥락을 '완전히' 포괄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의 이해는 항상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바로 이런 (a), (b), (c)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 '지평(horizon)'입니다. 우리 이해가 지평을 전제한다는 말은, 우리의 이해가 항상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8개의 좋아요

(2)를 지지하지 않으신다면

이라는 말씀은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이고, 또 (3)을 지지하지 않으신다면

라는 말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하네요. 이런 구절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질문자가 (2)와 (3)처럼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님께서 솔직하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친구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셨으면 아무도 오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댓글들의 내용을 보면, 저만 원 질문 글을 그렇게 이해한 게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철학 개념을 가능한 한 명료하고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대로 된 철학 텍스트라면 그런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하고, 제대로 된 철학 연구자라면 개념들을 그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전공자 또는 초심자에게 전문 개념을 설명하는 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해당 개념이 사용되는 맥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개념을 어떻게든 이해하도록 하려면, 관련 배경지식을 충분한 정도까지 설명하든가, 정확성과 엄밀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자는 대개 사람들이 "짧고 쉽게" 설명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실상 파기되는 선택지죠. 그리하여 이른바 "초심자도 단번에 이해하는 쉽고 간편한 설명"은 거의 모두가 정확성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집니다. 더구나 12살 아이한테 설명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죠.

혹시 저의 이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헨리 앨리슨 같은 칸트 연구자들이 수백 쪽의 연구서를 써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온 칸트의 자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전 설명도 없이 정확성과 엄밀성을 한 톨도 훼손하지 않은 채 몇 마디 문장만 가지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설명하는 사람이 개념을 이해 못한 채 허풍 치는 사기꾼이라고 보시나요? 그렇게 보신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파인만이 그렇게 말할 것 같지는 않네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친구분을 나쁘게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 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친구분의 태도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과라 문과들보다 더 논리적이다", "이게 과학으로 보이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친구분은 cottoncandy님에게 철학 개념들을 이른바 "과학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데(그리고 추정컨대 그분은 어떤 개념이든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헛소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는 친구분이 cottoncandy님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철학 개념은 과학 개념이 아닌데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나요. 그 시절 AI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링크 거신 위키를 들어가보니 한 AI 연구자가 이런 말을 했네요.

"What does he offer us? Phenomenology! That ball of fluff. That cotton candy!"

AI 연구자들이 이런 식으로 현상학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채 드레이퍼스에게 "지향성이 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라"라고 요구했다면, 그건 백이면 백 AI 연구자들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 개념을 비전공자도 알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일은 질문하는 사람에게도 설명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기회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철학 개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라' 같은 요구는 '맥스웰 방정식을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적 관점에서 설명해라' 같은 요구랑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친구분의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자께서도 따로 찾아 공부를 하시면서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 주시되, 무리한 요구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못박아두시는 게 질문자님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좋지 않나 싶네요.

밤이 깊어졌네요. 좋은 밤 되세요.

3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