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글의 '삶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논평

참고 텍스트 : Thomas Nagel. 1986. “Birth, Death, and the Meaning of Life.” Chapter 11 of The View from Nowhe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p. 208-232.

네이글(1986)은 인간의 삶이 부조리하고, 그 부조리는 인간의 내적(주관적) 관점과 외적(객관적) 관점의 충돌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우리는 우리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온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상충되는 관점들이 한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기에 삶의 부조리는 결코 온전히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 네이글의 주장이다.

네이글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거칠게 요약된 논증으로 표현해볼 수 있다.

(1) 주관적 관점 내지는 주관적 관점으로부터 주어진 사실들이 대부분 참이다.

(2) 객관적 관점 내지는 객관적 관점으로부터 주어진 사실들이 대부분 참이다.

(3)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으로부터 도출된 사실들은 양립 불가능하다.

(4) 양립 불가능한 사실들을 대부분 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삶은 부조리하다.

나는 (3)의 건전성에 대해 의심한다. 인간에게 주관성과 객관성 양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이것을 해석하기에 따라 인간 삶의 부조리 내지는 인간의 모순성을 드러내준다는 식의 주장이라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네이글은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이것이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에 대한 가장 신실한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크다. 주관적 관점과 객관점 관점을 가능한 극단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상정한 관점이 그 둘에 대한 가장 적합한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을 조화시키는 해석적 틀을 만드는데 있어 이런 극단적인 갈등, 부조리에 대해서도 설명력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우주의 거대함 앞에서 작아지는 우리 자신을,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주관성으로부터 오는 실존적 불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해석이론이 더 유용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이전에 선배 Y랑 트롤리 딜레마가 거짓문제인지 논쟁할 때 나와 Y 둘 다 합의했던 지점이 있다. 그것은 트롤리 상황이 개인에게 있어 매우 부조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부조리한 상황을 '정당화'하라는 요구에 대해 Y는 이 요구가 불합리한 요구이고, 이것을 요구하는 문제가 거짓문제라고 주장을 했고 나는 이 요구가 다소 편파적일지언정 거짓문제일 수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내가 여기서 이전의 트롤리 논쟁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네이글의 '삶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분명 인간의 삶에는 화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내적 갈등의 요소, 해석의 요소가 들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거나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다. 애초에 갈등의 요소, 갈등상황으로의 해석의 요소도 결국 해석의 영역이기에 이것을 어떤 '실재'나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능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해석을 요구하고 그런 해석이 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나는 선배 Y가 특정한 선택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약하고 무능하다'는 실존적 고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을 때 그 주장 자체를 비판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응답이 결국 두 선택지 모두 스스로에게 비도덕적인 선택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접근이 더 유용하고 많은걸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트롤리 상황을 공리주의나 도덕적 의무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잘못된 시도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입장들은 그저 이 상황이 인간 개인에게 있어 넘어서기 어려운 부조리를 함축하고 있다는 해석적 사실을 채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네이글은 현대 분석철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 거의 유일하게 삶의 부조리를 강조하는 학자라고 한다. 네이글의 부조리론은 일종의 해석을 절대적 해석 내지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논증한다는 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에서 공존해왔던 삶의 부조리, 실존적 문제를 분석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이 문제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네이글의 주장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우리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사실 부조리는 그저 해석의 영역일 뿐이고 다른 방식으로 이 사태를 해석해보라고 조언하는 것보다는 당신이 겪고 있는 실존적 부조리, 실존적 상황에 대해 보다 신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해석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전자의 조언이 틀린 조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적합한 해석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후자가 더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예상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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